[Today_Pub: 호모레퍼런스] 인류를 잇는 ‘참조의 네트워크’, 문명의 DNA를 찾아서

[인터뷰] 분야를 넘나든 김문식 교수의 인류사 재해석 아들에게 건네는 삶의 철학, 책으로 확장하다 문명 발전의 숨은 동력 ‘참조’의 힘을 밝히다 집단 지성과 협력이 만든 인류의 미래를 묻다

2025-08-24     윤서진 기자
<호모레퍼런스> 저자 김문식 교수.  [사진제공=미다스북스]

【투데이신문 윤서진 기자】“인류의 역사는 독창이 아니라 참조의 역사다.” 김문식 한양대학교 국제관광대학원 겸임교수이자 <호모레퍼런스>의 저자는, 인류 문명의 흐름을 하나의 실로 꿰듯 ‘참조’라는 키워드로 풀어낸다. 최초의 석기에서 오늘날의 인공지능까지, 서로를 바라보고 배우며 변형하고 발전시켜 온 과정을 집대성했다.

김 교수는 생화학과 관광학이라는 전혀 다른 두 분야를 모두 거친 학문 여정 속에서, 역사에 접근하는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 실험실에서 미시 세계를 탐구하고, 세계 각지의 현장에서 문명의 흔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경험은 기존 역사서의 틀을 넘어서는 통찰을 가능하게 했다. “세계사를 유럽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전 지구적 흐름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이 책의 출발점이 됐다.

집필의 동기는 매우 개인적이었다. “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다른 사람을 돕는 삶, 그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는 점이죠.” 그러나 그는 이 메시지를 한 사람에게만 전하는 대신, 더 많은 사람과 나누기로 했다. 그것이 <호모레퍼런스>로 이어졌다.

책 속에서 ‘호모레퍼런스’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DNA를 해석하는 새로운 이름이다. 참조의 힘은 과거 문명을 발전시킨 동력이었고, 지금 우리의 사회와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김 교수는 “하늘에서 떨어진 혁신은 없다”라며, 인류의 진보가 서로의 경험과 지식을 참조하는 데서 시작됐음을 강조한다.

프로필을 보니 정말 독특한 학문적 여정을 걸어오셨네요. 생화학을 전공하신 후 관광학 박사를 받으시고, 그러다가 인류사 연구까지 하게 되셨는데, 어떻게 이런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게 되신 건가요.

참 특이한 경로를 걸어왔죠. 한양대학교에서 생화학을 전공한 후 관광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현재는 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면서 동시에 피앤에프시스템즈 대표로 35년간 실무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사실 이런 다양한 경험이 오히려 큰 자산이 됐어요. 관광학자로서 문화를 가르치면서 깨달은 것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인류사 전반에 대한 폭넓은 통찰이 필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서양 중심적 시각의 한계를 느끼면서 다양한 문화권의 시각을 반영한 균형 잡힌 세계사를 써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됐죠.

특히 생화학과 관광학이라는 전혀 다른 두 분야를 전공한 것이 오히려 기존 역사학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현장을 직접 보고 느끼는 관광학자로서의 정체성이 책상 위의 텍스트가 아닌, 살아 숨 쉬는 문명의 흔적을 포착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말씀을 들어보니 연구 과정에서 ‘참조의 네트워크’라는 흥미로운 개념을 발견하셨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기원전 문화에 대한 오랜 연구를 통해 전 세계가 ‘참조의 네트워크’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이러한 관점으로 인류사를 바라보니 복잡했던 역사가 명쾌하게 이해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순간의 깨달음이 바로 <호모레퍼런스>의 출발점이었죠.

그런데 이렇게 방대한 인류사를 다루는 <호모레퍼런스>라는 책을 쓰게 되신 계기가 매우 개인적이고 특별하다고 들었어요. 아버지로서 아드님에게 전하고 싶으셨던 메시지가 있으셨다면서요?

집필 계기는 사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박한 동기에서 시작됐습니다. 제 아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아버지의 답변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죠. 저는 아들에게 늘 이런 말을 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신만을 위해 돈을 벌고 아등바등 살면 무슨 삶의 의미가 있겠는가. 반드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바란다.”

기성세대의 끝자락에 서서 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어떤 일로 더 공익적인 봉사를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공부하고 경험한 내용을 강의실 밖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이 책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셨다가, 결국 책으로 내기까지 결심하신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책이라는 매체는 시공간을 넘어 동시에 훨씬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효과적인 공익적 봉사라고 생각했거든요. 처음에는 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인류 전체의 역사를 다뤘어요. 물론 출간 과정에서 440페이지로 줄였지만요. 제가 유명인도 아니어서 출판사에서도 그렇게까지 모험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책 제목이 정말 독창적입니다. ‘호모레퍼런스’라는 말 자체가 교수님이 만드신 신조어인 것 같은데, 이 개념에 어떤 의미를 담으셨는지 궁금해요.

‘호모레퍼런스(Homo Reference)’는 ‘참조하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기존의 호모 사피엔스(지혜로운 인간)라는 개념을 넘어서서, 인류의 본질적 특성을 새롭게 정의한 개념이죠. 인류 발전의 핵심은 바로 ‘참조’에 있다는 것이 제 연구의 결론입니다. 한 개인이 혁신을 이루어내면,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모방하고 참조해서 더 나은 것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 인류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흥미롭네요. 그런데 실제 역사 속에서 이런 ‘참조’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예를 들어 기원전 어느 날 누군가가 최초로 도구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혁신이 주변 집단들에게 전파되면서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변화하고 발전해서 오늘날 우리가 휴대폰, 인공지능까지 발달한 것이죠.

아나톨리아 지방의 기원전 만년 전 유적인 괴베클리 테페의 T자형 석주들을 보면, 이후 4000년 뒤 수메르 문명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지역의 혁신이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각각의 문화적 특성과 결합해 새로운 형태로 발전한 것이죠.

그런데 ‘참조’라는 개념을 들으니 좀 복잡한 생각이 들어요.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참조와 표절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서 논란이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참조’와 ‘창조’는 어떤 관계에 있는 건지, 그리고 단순한 ‘표절’과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참조와 창조는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입니다. 제가 발견한 것은 인류 역사상 진정한 창조는 기존의 것을 참조하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례는 거의 없어요. 대신 기존의 것을 보고, 배우고, 응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바로 인류 문명의 발전 과정이었습니다.

참조와 표절의 차이는 명확합니다. 표절은 단순한 복사, 도용이지만 참조는 창조적 학습입니다. 참조는 기존의 것을 이해하고 분석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입니다. 이는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창조적 참조, 능동적 학습의 과정이었어요.

말씀을 들어보니 결국 개인의 능력보다는 집단의 힘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같이 들립니다.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으셨던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관점이 인류의 미래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책의 핵심 개념은 ‘연결과 협력을 통한 집단 지성의 발현’입니다. 인류는 개별적 천재성보다는 집단적 학습 능력을 통해 발전해 왔다는 것이 제 연구의 결론입니다.

기원전 약 1만1000년 영거 드라이아스(Younger Dryas) 시기의 혹독한 환경에서 인류가 보여준 대응 방식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개별 집단으로는 생존이 어려운 상황에서 여러 혈연집단이 모여 사회적 집단을 형성했고, 이 과정에서 복잡한 의식 체계와 리더십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런 관점이 어떤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특히 AI 시대라고 하는 지금, 이런 ‘협력과 참조’의 관점이 왜 더 중요해지는 건지 궁금해요.

이 개념이 현재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매우 큽니다. 개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협력적 학습 능력입니다. AI 시대를 맞아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개별적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통한 집단 지성의 발현이에요. 인류의 미래도 결국 어떻게 연결되고 협력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모레퍼런스> 저자 김문식 교수.  [사진제공=미다스북스]

이 책이 어떤 분들에게 특히 도움이 될까요.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은 독자층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우선 세계사를 이해하고 싶지만 기존의 방식으로는 어렵다고 느끼시는 모든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자녀를 둔 부모님들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어요. 인류의 뿌리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자녀에게 전해주고 싶으신 분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직장인들에게도 의미가 클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조직 문화, 리더십, 협력의 문제들이 사실은 1만년 전부터 인류가 고민해온 문제들이거든요. 청소년들에게는 입시 위주의 암기식 역사 교육에 지친 학생들에게 역사가 얼마나 흥미롭고 현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을 거예요.

교수님의 궁극적인 바람이 있으실 텐데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어떤 마음가짐이나 생각의 변화를 가졌으면 하는지 궁금합니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가져주었으면 하는 변화는 명확합니다. 첫째, 인류사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인류애가 생겨나기를 바랍니다. 둘째, 세계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관점을 갖기를 희망합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로부터 이 사회가 조금이라도 건강해지는 생각이 움터나왔으면 합니다. 각자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조금이라도 변한다면, 사회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아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다른 사람을 돕는 삶”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렇게 방대한 작업을 하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집필 과정에서 가장 힘드셨던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또 반대로 가장 보람되고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들려주세요.

가장 힘들었던 점은 처음에 제 자신이 가진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었습니다. 생화학과 관광학을 전공한 제가 기원전 문화를 다룬다는 것은 정말 엄두도 나지 않는 일이었거든요. ‘내가 과연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과 싸우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실제 집필 과정에서는 방대한 고증 자료와 논문들을 검토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현장을 찾아가 직접 확인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는데, 이란의 페르세폴리스나 파키스탄의 모헨조다로, 하라파 같은 곳은 정치적 상황 때문에 가보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현장에 가서 참조의 흔적을 발견할 때의 짜릿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특히 터키 아나톨리아 지방의 괴베클리 테페나 카라한 테페에서 1만 년 전 인류의 흔적을 직접 마주했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무엇보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인류사가 암기 과목이 아닌 이해의 층위로 넘어오는 경험을 한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최초 인류부터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과정, 문명 형성 과정이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연결되는 순간의 깨달음은 정말 잊을 수 없어요.

<호모레퍼런스>가 나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다음 작업도 계획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후속 연구나 집필 계획이 있으시다면 살짝 귀띔해 주실 수 있을까요.

네, 이미 후속작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빵 굽는 철학자- 퍼블릭 사피엔스>라는 제목으로 편집하고 있어요. <호모레퍼런스>를 쓰면서 분량 때문에 잘라놓은 부분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그 내용들을 다시 보니 한 권의 독립된 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후속편에서는 인류가 언제부터 빵과 술을 먹기 시작했는지, 최초의 정치 지도자는 누가 됐고, 철학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인류가 언제 인간다운 이성이 깨어나고 급격한 문화 발전을 이룬 시점을 특정했는데, 이 시기를 특정했을 때의 기쁨은 실로 엄청났어요. 학문적인 희열을 느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인류의 의식 체계 전환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왜 어떤 문명은 지속되고 어떤 문명은 멸망하는지, 그리고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과 기원전 문명들이 겪었던 위기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더 체계적으로 분석해 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를 하나 더 들려주세요. 이 책의 수익금을 한국순교복자수녀회에 기부하신다고 들었는데, 26년이나 봉사해 오신 특별한 인연이 있으시다면서요.

10년 동안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자 무슨 생각이었는지 봉사 활동이 회사를 그만둔 이유를 더욱 분명히 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중계동에 있는 성모자애드림힐이라는 아이들을 돌보는 시설에서 봉사를 시작했어요.

그곳과 인연을 맺고 세월이 지나다 보니 어느덧 26년이 됐고, 지금은 그곳의 운영위원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한국순교복자수녀회에서 운영하는 곳이었어요.

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한국 천주교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수녀회로, 우리나라 초기 천주교 전파 과정에서 순교한 분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설립됐습니다. 현재는 500분이 넘는 수녀님들로 구성돼 사회 봉사와 교육 사업에 헌신하고 계십니다.

이분들은 바로 제가 지금 쓴 책이나 앞으로 쓸 책의 주제가 되는 ‘가장 공익적인 삶’을 실천하고 계시는 분들입니다. 개인의 이익을 넘어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삶, 그것이야말로 제가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삶의 모습이고, 수녀님들은 그런 삶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 인세를 기부하신다는 게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교수님의 삶의 철학과 연결돼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기부에 담긴 특별한 의미가 있으실까요.

현재 한국순교복자수녀회의 총원 건물이 너무 낡아 건축 공사를 하고 있으나 여전히 기금이 많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이 책 한 권의 인세는 얼마 되지 않더라도 이 작은 일이 큰 기적을 가져오는 밑거름이 었으면 하는 것이 소망입니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 큰 변화를 만든다는 것, 그것이 바로 제가 책에서 말하고 있는 ‘참조와 협력’의 힘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