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청구서③] ‘슈퍼재난’ 시대 도래…보험의 한계와 도전

한반도 기후재난 현실로…폭염·산불·폭우로 일상 마비 보험 사각지대와 한계…시험대 오른 기후위기 대응력 “지속 가능한 대응 위해 보험과 정책 상호 협력 필요”

2025-08-16     김효인 기자

산불과 폭우, 폭염이 한 계절 안에 연쇄적으로 몰아치는 ‘기후채찍질’은 더 이상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반도 곳곳에서 기후위기의 대가, 즉 ‘기후청구서’가 혹독하게 청구되고 있다.

10여 년 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보고서는 이미 이러한 복합재난의 위험을 구체적으로 경고했다. 폭염과 가뭄, 국지성 폭우가 짧은 주기로 반복되며 산불·홍수·산사태로 이어질 수 있고,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 사이 정책과 인프라 대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실제 피해는 매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특히 농촌과 지방 지역은 반복되는 재난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돼 있다. 재난 피해를 신속히 복구하고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는 데 핵심적인 보험 시스템조차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농작물재해보험과 풍수해보험 등 일부 안전망이 존재하지만, 가입률과 보장 범위는 제한적이며 취약계층 지원도 여전히 미흡하다.

이에 본 시리즈는 복합재난의 현장 피해 실태와 정책 대응의 한계, 그리고 해외 사례를 통해 보험을 포함한 통합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응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심층적으로 조명하며, 기후채찍질 시대에 우리 사회가 반드시 갖춰야 할 생존 전략을 모색한다. 

지난달 21일 오전 기록적인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충남 당진시 전통시장 현장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2025년, 한반도는 유례없는 기후재난에 휩싸였다. 남부 지방에는 기록적 폭우가 쏟아졌고, 강원·경북에는 사상 최대 산불이 이어졌다. 수도권은 열흘 이상 폭염 경보가 이어져 일부 지하철이 폐쇄되고 일상이 마비됐다. 농민 창고는 침수되고, 소상공인 점포는 매출 절벽에 직면했다. 피해 복구는 곳곳에서 지연되며, 경제적 손실과 불안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번 재난은 단순한 기상 이변이 아니라 기후위기의 현실화다. 지난 50년간 한반도 평균기온은 1.6℃ 상승했고, 폭염일수는 4배 이상 늘었다. 겨울 한파일수는 절반 이하로 줄며, 이상기후가 연례적 재난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보험은 피해 복구와 경제적 손실을 막는 최후의 보루지만, 현재 보험산업은 시험대에 올랐다. 피해자가 체감할 보상 체계가 작동하는지, 보험사가 기후위기 속에서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 커지며, 단순 보상을 넘어 보험산업 구조 재설계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보험연구원·행정안전부·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국내 자연재해로 140명이 사망했지만 실제 보험금 지급을 받은 피해자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경제적 피해액은 약 9,582억원에 달했으나, 풍수해보험 가입률은 23.5%, 농작물재해보험은 40%에 불과해 피해 농가 5곳 중 1곳은 보상조차 받지 못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보험 사각지대와 기후위기, 모순적 현실

보험 산업의 기후재난 대응 한계는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손해보험사의 연간 지급액은 2019년 2,847억원에서 2023년 5,123억원으로 80% 증가했지만, 보험료 인상과 까다로운 인수 조건으로 가입을 포기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또한 자동차·주택·농작물 피해가 ‘보험 제외’ 처리되는 사례가 늘면서, 피해자의 경제적 파탄이 사회적 불안으로 연결되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실시한 기후 스트레스테스트에 따르면, 현재 추세가 이어지면 2100년경 손해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RBC)이 평균 43.9%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돼, 산업 전체의 재무 안정성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됐다.

근본적 문제는 보험사가 여전히 과거 통계를 기반으로 리스크를 계산한다는 점이다. 폭염·산불·홍수 등 ‘슈퍼재난’의 빈도와 규모가 급증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서, 기존 데이터만으로는 보험료와 준비금 책정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은 동시다발적·광범위하며 피해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기존 보험 구조는 전통적으로 ‘대수의 법칙’과 ‘위험 분산’에 기반했지만, 폭염·홍수·산불이 동시에 발생하는 사례가 늘면서 안정적 관리가 어렵다.

보험은 위험 분산의 최후 보루로 여겨져 왔지만, 적립 준비금만으로는 감당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역선택’ 문제도 심화돼 위험지역 주민은 가입을 늘리고 안전지역 주민은 꺼리면서 보험 풀(pool)의 안정성이 흔들리게 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보험료 상승과 가입 포기로 이어진다.

실제 국내 주요 손해보험사의 화석연료 관련 보험 인수액은 2024년 상반기 182.7조원으로 6개월 만에 43조원 증가했지만, 재생에너지 관련 보험은 24.8조원(전체 13.6%)에 불과하다.

보험금 지급을 늘리려면 보험료 인상 외에는 방법이 없어 소비자 부담과 가입 포기자를 양산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결과적으로 보험은 예방보다는 사후 보상 중심의 시스템에 갇히고, 기후위기 대응 기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난달 21일 오전 기록적인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충남 당진시 전통시장 현장 ⓒ투데이신문

보험, 보상 넘어 사회적 책임으로…기후위기 대응 촉구

이에 지난 13일 국회에서는 ‘일상화된 재해, 보험 산업의 기후위험과 책임’ 토론회가 열렸다. 정치권, 시민사회, 학계, 보험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보험의 사회적 역할과 기후위기 대응 전략을 논의했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험사는 단순한 피해 보상자를 넘어 기후위기에 책임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반복 재난에도 안정적 보장이 가능하도록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도 “기후재난은 인간이 초래한 사회적 재난이다. 보험약관에서 천재지변 정의를 재정립하고, 기후재난 특별담보를 즉시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토론회에서는 현행 보험약관의 ‘천재지변’ 조항도 문제로 지적됐다. 태풍, 홍수, 지진 등 재난이 인간 활동에 의해 강화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보상에서 제외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상품 혁신과 데이터 기반 언더라이팅, 공공-민간 협업 등 구조적 개선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보험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해 네 가지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첫째, AI·빅데이터 활용과 지수형 보험, 친환경 특약 등 상품 혁신을 통해 기후위험 예측과 신속한 보상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국가재보험·대재해채권 도입과 보험 약관 표준화 등 정부와 공공의 컨트롤타워 역할이 필요하다. 셋째, 금융배출량 공시와 환경책임 경영을 기반으로 한 인센티브 확대가 중요하다. 넷째, 위험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재정 지원과 민관 협력형 재보험 제도 도입이 요구된다.

토론회가 제시한 핵심 화두는 명확했다. 보험은 단순한 보상 수단을 넘어, 사회의 회복력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핵심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21일 오전 기록적인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충남 당진시 전통시장 현장 ⓒ투데이신문

해외는 이미 시행 중…국내 보험업계 과제 ‘산적’ 

해외에서는 이미 기후위기 대응형 보험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독일은 태양광·풍력 발전소 전용 보험과 기후적응형 건축물 보장을, 네덜란드는 수상주택 보험을, 미국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주는 산불·허리케인 전용 공제조합과 주정부 직접 운영 보험을 도입했다. 아시아에서도 일본, 싱가포르, 중국이 기후보험과 농업보험 혁신을 추진 중이다.

글로벌 보험사 40여 곳은 고탄소 사업 언더라이팅을 거부하며, 재생에너지와 기후적응형 장기보험 개발, 민관 재보험 협업, 투명 지표와 표준 룰 구축을 병행하고 있다. 프랑스는 폭염 대응 냉방시설 설치에 보험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미국 FEMA는 민간보험사와 협력해 홍수보험을 운영한다.

국내에서는 전기차 전용보험, 친환경 특약, 지수형 보험 등 혁신 상품이 등장했지만, 화석연료 중심 투자, 신상품 실효성 부족, 언더라이팅 기준 부재 등 근본적 한계가 남아 있다. 현대해상은 전기차 보험과 친환경 특약, 재생에너지 사업자를 위한 정책성 보험, 지수형 보험을 도입했고, 지자체 단위 기후보험 실험도 확대되고 있다.

반면 현장에서는 데이터 접근성·신뢰성 문제, Scope 3 금융배출량 추정 한계, 지수형 보험과 실손 원칙 충돌 등 제도적·구조적 장벽이 존재한다. 

이에 보험업계 전문가들은 기후위험 대응은 보험사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정책·제도적 기반이 병행돼야 사회 전체의 회복력과 지속가능성이 확보된다고 지적한다.

한 보험학과 교수는 “국내 보험사가 기후위기를 핵심 경영과제로 인식하지 않고, 제도적·정책적 지원과 함께 전방위 전환에 나서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가 감당해야 할 재난 청구서는 누구도 메울 수 없다”며 “보험은 단순한 보상 장치를 넘어 사회복원력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핵심 플랫폼으로 재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보험 연구 전문가도 “지수형 보험, 정책성 재보험, 환경정보 공시 통합 등 다각도의 노력이 함께 이루어질 때 산업 전체의 회복력과 지속가능성이 확보된다”며, “선제적 대응과 정책적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