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땀구생활⑥] 가정을 지키는 ‘엄마’라는 이름의 노동

여섯 번째 땀구: 가정을 돌보는 ‘가사 노동자’ 관절 통증 호소…손목 건초염 진단받아 치료도 매일 반복되는 일상·육아에 산후우울증도 겪어 “여자가 집안일 전담해야” 인식 아직도 잔재해 “소중한 존재 ‘가족’…자극·부정적 미디어 줄여야”

2025-09-05     박효령 기자

여성 노동의 가치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허리를 숙여 청소하고 퉁퉁 부은 다리를 몰래 주무르며 목소리로 감정을 조절해 현장을 지탱하는 여성 노동자들. 그러나 이들의 몸은 그만큼 상하고 여전히 소외돼 있다.

여성 노동은 단지 저임금이나 비정규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반복적이고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몸에 맞지 않는 보호장비를 착용해야 하고 감정노동과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면서도 ‘쉬운 일’로 치부되는 왜곡된 인식이 여전히 잔존한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여성땀구생활] 기획을 통해 ‘일하는 몸’을 거울 삼아 여성 노동의 특수성과 구조적 불평등을 드러내고자 한다. 밝은 미소 속에 감춰진 거칠고 버거운 노동의 시간을 따라가며 여성들의 하루하루가 어떻게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지를 기록하려 한다.

최유지씨가 둘째 아이와 함께 본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본 기사는 가사(육아) 노동자의 경험을 중심으로 구성됐으며 취재원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노동이 시작된다. 아이들을 챙기고 돌보는 일은 숨 돌릴 틈조차 없이 이어진다. 그 와중에도 빨래와 청소, 요리 같은 집안일을 틈틈이 해내야 한다. 대가 없는 가사노동을 이어가는 나는 최유지(30). 2021년 결혼해 2022년에 첫째를, 지난해 둘째를 낳아 지금은 두 아들을 키우고 있다. 남편이 주에 이틀간 재택근무를 한다 해도 가사노동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엄마’라는 이름을 들으며 힘을 낸다. 두 아이를 따뜻한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지켜내기 위해 다시 굳세게 마음을 다잡는다.

땀의 기록 1. 반복, 또 반복되는 일상 

아침은 보통 오전 7시 30분쯤 시작된다. 첫째가 제일 먼저 눈을 뜨고는 “엄마, 일어나” 하고 내 곁에 온다. 아이의 손길에 이끌리듯 눈을 뜨면 하루가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일어나자마자 첫째와 둘째를 데리고 잠시 놀아주다가 8시 무렵 아침을 준비한다. 아이들의 밥을 먹이고 나면 어느새 9시. 첫째의 옷을 다시 갈아입히고 어린이집 가방을 챙겨주면 9시 20분쯤 둘째를 안은 채 첫째를 등원시킨다. 다시 집에 돌아오면 대략 9시 30분이다.

집에 돌아오면 둘째와 온전히 시간을 보낸다. 몸을 부대끼며 놀아주기도 하고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그렇게 흘러가던 시간이 10시 30분에서 11시쯤이 되면 둘째가 낮잠에 빠져든다. 그 짧은 틈은 나만의 귀한 시간이다. 밀린 집안일을 처리하거나 잠시 숨을 고르곤 한다. 노트북을 켜 영상 편집을 하기도 한다. 낮잠은 금세 끝난다. 12시 반쯤 둘째가 눈을 뜨면 다시 점심을 먹이고 놀아주며 오후를 맞는다.

오후 4시 무렵 첫째가 하원한다. 그때부터는 두 아이가 함께하는 시간이다. 웃음과 울음, 요구와 투정이 뒤섞이며 시간은 가속이 붙은 듯 빠르게 흘러간다. 지칠 무렵인 6시, 드디어 남편이 퇴근한다. 기다려온 순간이다. 온 가족이 비로소 모여 날씨가 좋을 때는 함께 놀이터에 나가기도 하고 집으로 친구들을 불러와 시끌벅적하게 놀기도 한다.

남편이 돌아오면 나는 서둘러 저녁을 준비한다. 7시쯤 아이들이 먼저 식사를 하고, 그 후에야 남편과 내가 간단히 저녁을 나눈다. 식사 후에는 또 다른 전쟁, 씻기는 시간이 시작된다. 남편이 아이들을 욕실로 데려가 씻기면 나는 옆에서 기다리다 로션을 발라주고 옷을 입혀준다. 하루의 마지막 의식을 치르는 듯 차례차례 정리된다.

8시가 되면 빠지지 않는 루틴이 있다. 멀리 사시는 시부모님과의 영상통화. 하루 중 가장 따뜻하면서도 빠질 수 없는 시간이다. 반가운 얼굴을 보여드리며 30분 남짓 통화를 나누다 보면 8시 30분에서 9시가 되는데 이때 보통 아이들이 잠자리에 든다. 가벼운 인사를 건네며 두 아이를 재우고 나면 집 안이 고요해진다.

그러나 그 고요는 곧 또 다른 노동의 신호다. 아이들이 어지른 집 안을 정리하고, 빨래를 개고, 다시 노트북을 열어 운영 중인 SNS 채널 업로드를 위해 영상 편집을 한다. 비로소 나만의 시간이 시작됐지만 사실은 쉼이라 부르기 어렵다. 그렇게 분주히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자정. 그렇게 내 하루도 끝나게 된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이다. 이미 루틴이 돼버려 줄줄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하루가 이어진다.

최유지씨가 자녀와 놀아주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본인]

땀의 기록 2. 통증으로 가득한 손목 

매일 이어지는 육아는 체력과 몸 곳곳을 갉아먹는다. 하루에도 수십 번 아이를 안아 들고 옮기다 보면 손목은 뻣뻣하게 굳고 무릎은 바닥을 짚을 때마다 시큰거린다. 어깨는 늘 무거운 돌덩이를 얹은 듯 결리고 관절마다 뻐근한 통증이 끊임없이 자리한다. 특히 손목과 엄지손가락 관절은 늘 타는 듯이 욱신댄다. 아이의 체중이 늘수록 그 무게는 고스란히 내 몸에 흡수된다.

그렇다고 특별히 꾸준히 관리하는 치료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때 안마기를 붙들고 버텨본 적도 있었지만 그 효과는 미약했다. 다음 날이면 다시 똑같이 아이를 안고, 업고, 달래야 하기에 잠깐의 위안은 금세 무너진다. 오늘도 애쓴 관절을 스스로 주무르며 “괜찮다”고 되뇌이는 게 전부다.

결국 손목은 버티지 못하고 육과 뼈를 연결하는 건을 둘러싼 막인 건초에 염증이 생겨 건초염 진단을 받았다. 통증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주사 치료까지 이어졌다. 의사는 일주일에 한두 번 꾸준히 재활치료를 받으라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치료를 받으려면 아이들을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사실상 없다. 몇 차례 치료로 통증이 조금 줄어들면 ‘굳이 계속 다녀야 하나’ 하는 생각이 앞서기도 한다. 게다가 병원에서조차 완치가 아닌 지속적인 관리 밖에 답이 없다는 말을 하니 더욱 동기가 생기지 않았다. 

피로도 쌓인다. 하루 일과를 마친 뒤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면 입에서는 절로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새어 나온다. 그 모습이 익숙해진 탓인지, 첫째 아이가 장난스럽게 “아이고 허리야”를 따라 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미안하면서도 씁쓸한 웃음이 지어진다.

밤이 오면 가장 간절한 바람은 단 하나다. 온전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 혹은 따뜻한 손길에 맡겨 잠시라도 안마를 받는 것.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쌓인 집안일을 하고 영상 편집에 몰두하다 보면 쉬고 싶다는 욕망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렇게 쌓이는 피로는 몸을 서서히 지치게 한다.

땀의 기록 3. 몸도 마음도 지쳐간다 

사실 가사·육아는 경제적인 보상을 주지도, 사회적인 인정을 받지도 않는 노동이다. 오히려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여겨지다 보니 섣불리 힘들다거나 지쳤다고 호소하기조차 어려운 분위기 속에 놓인다.

그런 시선 속에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 그리고 오롯이 육아에만 전념해야 하는 하루하루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갉아먹었다. 둘째를 출산한 뒤 예고 없이 산후우울증이 찾아왔다. 지금은 약을 복용하며 마음의 요동을 다스리고 있지만 약을 먹기 전의 나는 늘 스스로에게 물었다. “난 왜 아무 인정도 못 받으면서 집 안에 틀어박혀 아이만 보고 있어야 하지?”하고 말이다.

그 질문은 곧 불만과 자책으로 번졌다. 우울감은 불현듯 그러나 자주 찾아와 나를 삼켜버렸다. 하루가 반복되는 것이 지겹고 동시에 버거웠다.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챈 건 남편이었다. 첫째 육아 때와 달리 짜증이 늘어나고, 아이를 대할 때도 감정적으로 툭툭 내뱉는 모습이 이어지자 남편은 이상함을 느꼈다. 평소의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몸도 함께 무너졌다. 마음이 가라앉으니 손끝 하나 까딱하기조차 귀찮아졌다. 장난감은 거실 가득 널브러져도 치울 의지가 없었고 설거지는 쌓여만 갔다. 집 안은 난장판이 돼갔지만 정작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았다. 우울감이 더 컸다. 결국 나는 잠으로 도망쳤다. 깊은 잠이 아니라도 눈을 감고 있으면 잠시라도 이 답답하고 무거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상태가 5~6개월 이어지자 결국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진단명은 산후우울증이었다.

첫째 아이 육아 때는 ‘육아 동지’라 부르며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자주 어울렸다. 짧은 수다와 웃음이 큰 힘이 됐고 그 시간 속에서 웃으며 활기를 찾았다. 그러나 둘째 아이 출산 이후에는 그마저도 끊겼다. 첫째가 어린이집을 다니며 자주 감기를 옮겨오다 보니 가족이 번갈아 아프기 일쑤였다. 이에 아픈 아이를 안고 다른 엄마들을 만날 수 없었다. 원래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외향적인 나에게 이런 교류의 단절은 극단적인 외로움으로 다가왔다. 남편과 대화를 많이 나누어도 친구들과 나누는 웃음과 위로가 줄 수 있는 감정의 결은 달랐다. 그렇게 내 마음은 서서히 멍들어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친구를 만날 시간이 주어져도 약속을 잡지 않았다. 대화를 원하면서도 막상 약속이 잡히면 발걸음이 무겁고 귀찮았다. 점점 울적한 감정이 쌓이다 보니 나는 더 외출을 꺼리게 됐고 집 안에서 우울감만 키워갔다.

지금은 다행히 약을 꾸준히 복용하며 조금씩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마음이 이전처럼 크게 요동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육아와 일상의 무게는 변함없이 나를 찾아오고 있다. 마음 한켠에 남은 불안함은 쉽사리 떠나질 않는다.

아이들 장난감으로 가득한 최유지씨의 집 거실 일부.ⓒ투데이신문

땀의 기록 4. 편견은 아직도 잔존한다 

몇 달 전 모처럼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집을 나설 기회가 있었다. 전 직장의 선배를 만나러 간 자리였는데, 이야기가 길어져 늦은 밤 귀가길에 올랐다. 택시에 올라 기사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내가 결혼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말하자 기사님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애 엄마가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니면 안 되지. 집에서 집안일 해야하는데, 남편이 뭐라고 생각하겠어”라고.

그 말이 가볍게 흘러간 듯했지만 내 마음 한구석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매일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에 매달려온 나였는데, 잠시 바람 쐬듯 나온 외출조차 ‘지적’으로 돌아온 것이다. 정말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그러나 굳이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냥 흘려보내자’며 마음을 다잡았다.

전업주부라는 이름의 노동은 경제적 보상도, 눈에 띄는 사회적 인정도 따르지 않는다. 다만 가족이 건네는 작은 말 한마디, 손길 하나에서 위안을 얻는다. 첫째가 “엄마 최고야, 엄마 사랑해”라고 속삭일 때, 밥이 맛있다며 손뼉을 치며 웃을 때, 둘째가 내 품에 기대어 환히 웃어줄 때… 그제야 나는 스스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나는 오늘도 이 집을 따뜻하게 지키고 있구나’라고 말이다.

여전히 세상에는 “아빠는 원래 아이와 친하지 않다”, “육아는 엄마의 몫이다”라는 낡은 고정관념이 남아 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우리 가족만의 길을 걷고 있다. 남편은 아이들과 함께 뛰놀고, 기저귀를 갈고, 집안일에도 기꺼이 손을 보탠다. 나는 그것이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심어주고 세상을 더 넓게 배울 힘이 돼 준다고 믿는다.

세상 곳곳에는 여전히 성역할 고정관념이 잔재한다. 하지만 우리 집 안에서는 작은 변화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다. 나는 오늘도 그 싹이 아이들의 마음 속에 튼튼히 뿌리내릴 것이라고 믿는다.

땀의 기록 5. 육아에 전념한 삶 

나는 결혼 전 광고회사에서 일했다. 업무 강도가 워낙 강해 늘 야근이 이어졌고 일에 치여 살았다. 그러다 남편과 결혼을 하면서 회사를 그만두게 됐고 잠시 숨을 고른 뒤 이직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 첫째가 생겼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아이 양육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자연스럽게 집에 머무르게 됐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 둘째까지 선물처럼 찾아왔고 나는 결국 전업주부의 길을 걷게 됐다.

주변의 많은 엄마들은 육아휴직을 쓰고 복직을 준비한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늘 불안감이 따라붙는다. “내 자리가 없어지면 어떡하지?”, “돌아가도 예전처럼 일할 수 있을까?” 같은 걱정들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 역시 곱씹게 된다. ‘나는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 전 다니던 회사로 복직하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곳은 워낙 업무 강도가 높아 다시 발을 들인다면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전업주부의 삶을 결정했지만 이 삶이 생각보다 단조롭고 무료하다는 점을 느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늘 바쁘지만 정작 내 개인의 시간을 갖기는 어렵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무언가 나만의 작은 출구를 만들고 싶어 시작한 게 SNS였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 일상들을 기록하며 단순히 무료함을 달래는 것을 넘어 나만의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다. 반복되는 일상 속 작은 응원이자 위로가 된다. 

전업주부로 산다는 건 단순한 결심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때로는 사회의 시선과 마주해야 하고 스스로 선택의 무게를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새로운 길에 파고들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나 자신’을 찾기 위해 달려나가고 있다.

최유지씨가 자녀를 안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본인]

땀의 기록 6. 엄마로 살아갈 우리들에게 

앞으로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가는 여성들이 보다 존중받고 가사와 육아 노동이 단순한 의무나 희생이 아니라 고귀한 노동으로 인식되기를 바란다. 매일 반복되는 집안일과 아이 돌봄 속에서도 가족을 지켜내는 이 노동이 결코 당연하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

최근 미디어에서는 문제적 가정이나 자녀의 거친 행동, 부모와의 갈등 장면을 반복적으로, 자극적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결혼과 출산, 육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확대되고 시민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미래의 폭을 좁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실 불행하게 사는 사람보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나 또한 그렇다.

물론 미디어 속 일부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듣지 않거나 돌발적인 행동으로 순간순간 긴장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장면이 모든 아이들을 대변할 수 없다. 실제로 내 두 아이는 그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주변 사람들 역시 자녀를 사랑스러운 존재로 여기며 행복한 순간을 누린다. 아이를 키우며 얻는 기쁨과 보람은 말로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다.

정부의 육아 지원 정책이 분명 도움이 되고 더 많이 추진돼야 하는 것은 맞지만 무엇보다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방송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적인 존중이 함께해야 한다. 가사와 육아는 여성의 전유물이나 당연히 희생해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수행하는 하나의 ‘노동’이다. ‘엄마’라는 직위 속에 있는 나, 그리고 그 안에서 다양한 빛을 내뿜고 있는 인간 최유지를 존중하고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 가정들은 더 행복하고 건강한 미래를 꿈꿀 수 있다.

가사(육아) 노동자의 질환을 나타낸 표. [일러스트제작=김민수]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