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드십 코드, 9년째 제자리 걸음...“점검·제재 장치 시급”

274곳 중 96.7% 의결권 행사 근거 없어...공시 부실 ‘여전’ “합리적 무관심에 막힌 책임투자, 해외는 등록·점검 엄격”

2025-09-01     김이슬 기자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특별위원회와 경제개혁연구소가 공동주최한 ‘스튜어드십코드 개선 및 이행 활성화 방안 모색을 위한 좌담회’가 열렸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이슬 기자】 도입 9년을 맞은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 원칙)가 여전히 형식적 이행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가입 기관은 300곳에 달하지만, 의결권 지침 미공개·주주활동 보고 부실 등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실효성을 높이려면 등록·점검·제재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일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특별위원회와 경제개혁연구소가 공동주최한 ‘스튜어드십코드 개선 및 이행 활성화 방안 모색을 위한 좌담회’에 따르면 국내 스튜어드십 코드는 주총 안건 공시가 집중되고 의결권 행사 근거가 형식적으로만 기재되는 등 실질적 견제 기능은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이승근 주주권행사1팀장은 “합병·분할, 유상증자 안건에서 기업은 ‘시너지·부채 개선’을 내세우지만, 시장에서는 지배주주의 지배력 강화 등 다른 목적이 있다고 보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사회 결정 과정이 구체적으로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 자산운용 업계에서는 ‘합리적 무관심’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 기관이 늘었지만, 지배구조 개선 효과는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트러스톤자산운용 이성원 부사장은 “비용과 이해 상충 때문에 많은 기관이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부사장은 “잘하는 기관에는 수수료 차등 같은 인센티브를 주고, 이행하지 않는 곳에는 퇴출 제재를 병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해외 사례와 비교했을 때 국내 제도의 한계는 더욱 두드러진다. 영국은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 이전 1년간의 이행 성과를 점검해 승인을 받은 기관만 등록을 허용한다. 일본 역시 연기금인 GPIF가 위탁기관의 이행 정도를 평가한다. 

자본시장연구원 황현영 연구위원은 “국내는 참여 예정 기관이라는 해외에는 없는 제도가 있고, 주주제안 요건도 과도해 ESG 관련 안건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재등록·재공시 의무와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 도입, 공적기관의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 시 적용 대상을 비상장·해외·대체투자 자산까지 확대하고, ESG 요소를 명시적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경제개혁연구소 노종화 변호사는 “업권별로 이행 수준이 크게 달라 차등 점검이 필요하다”며 “모범 사례를 발굴해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도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최치연 공정시장과장은 “지분구조가 분산되면 기관투자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대리인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며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 여부를 주기적으로 점검해 내실 있는 이행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점검 결과 274개 운용사 중 96.7%가 의결권 행사 근거를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않았고, 62.8%는 내부 지침 공시도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 과장은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정기적 점검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다만 “연기금 관련 사안은 금융위나 금감원이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므로 소관 부처와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스튜어드십 코드가 단순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공시·보고 체계 고도화,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화, 정기 점검과 제재 장치 도입이 뒤따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는 “스튜어드십 코드 활성화에 대한 지적은 9년째 이어지고 있다”며 “실질적 이행력을 갖추지 못하면 자본시장의 신뢰 회복과 기업 가치 제고는 어렵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