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땀구생활⑦] 내일의 밥상을 위해 땅을 일구는 몸
일곱 번째 땀구: 사회를 지탱하는 ‘농부’ 퇴근 없는 삶…하루 12~14시간 가량 고강도 노동 날씨·시장에도 영향 받아 불안한 생계 호소하기도 사회적 인정 낮아…“농사일, 불쌍하다는 시선 커” 여성 참여도 높은 농업…“보조자 아닌 주최자로”
여성 노동의 가치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허리를 숙여 청소하고 퉁퉁 부은 다리를 몰래 주무르며 목소리로 감정을 조절해 현장을 지탱하는 여성 노동자들. 그러나 이들의 몸은 그만큼 상하고 여전히 소외돼 있다.
여성 노동은 단지 저임금이나 비정규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반복적이고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몸에 맞지 않는 보호장비를 착용해야 하고 감정노동과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면서도 ‘쉬운 일’로 치부되는 왜곡된 인식이 여전히 잔존한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여성땀구생활] 기획을 통해 ‘일하는 몸’을 거울 삼아 여성 노동의 특수성과 구조적 불평등을 드러내고자 한다. 밝은 미소 속에 감춰진 거칠고 버거운 노동의 시간을 따라가며 여성들의 하루하루가 어떻게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지를 기록하려 한다.
본 기사는 농업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작성됐으며 취재원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해가 채 떠오르기 전, 피곤한 몸을 다독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제일 먼저 창을 열어 하늘을 살핀다. 오늘은 얼마나 더울까, 혹은 밤새 내린 비가 밭을 괴롭히진 않았을까… 수많은 걱정에 뒤척이던 새벽이었다. 조용히 작업복을 챙겨 입고 집 밖으로 나선다. 더워도, 추워도,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농사일에는 정해진 근무 시간도, 온전한 휴식도 없다. 일상이 곧 일이고 일이 곧 삶이 된다. 오늘도 여성 농부인 나, 이갑인(56)은 밭과 논, 그리고 내가 가꾸는 하우스로 향한다.
땀의 기록 1. 노동이 전부인 하루
나는 봄이면 수박을, 여름이 무르익을 즈음엔 메론을 키운다.
농사일은 언제나 태양의 움직임과 함께한다. 해가 뜨면 일이 시작되고 해가 지면 마무리된다. 도시처럼 출퇴근 시간을 정확히 정해 놓을 수 없다. 일상이 곧 농사이고 농사가 곧 내 삶이다. 특히 오전은 놓칠 수 없는 시간이다. 아직 햇볕이 덜 매서울 때 얼른 허리를 굽히고 손을 놀려 할 일을 어느 정도 마쳐놔야 한다.
여름철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해가 막 얼굴을 내밀 즈음이면 이미 밭에 나가 있다. 오전 내내 풀을 뽑고 작물을 살피다 보면 금세 정오가 찾아온다.
메론은 세워서 키우는 작물이라 ‘순 치기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잎마디마다 곁순이 끊임없이 돋아나는데, 그 불필요한 가지들을 손으로 하나하나 따내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영양이 분산돼 열매가 제대로 크지 못한다. 원하는 ‘원순(줄기)’만 남기고 의미 없는 곁순들을 떼어내는 일 등 앉았다, 일어섰다를 수없이 반복하며 온몸으로 해내야 하는 고된 작업은 대부분 여성 농부들의 몫이다.
한낮의 열기는 가혹하다. 비닐하우스 안에 있노라면 비닐이 타는 냄새가 날 정도로 햇빛이 내리쬔다. 안에 공기는 습하고 더워 숨이 턱턱 막힐 정도다. 햇빛이 가장 뜨거운 점심 때쯤은 어쩔 수 없이 일을 멈추고 오후 3시쯤에서야 다시 몸을 일으킨다. 그러나 쉰다고 해서 마음이 온전히 놓이는 건 아니다. 작물이 어떻게라도 될까, 초조한 마음에 시곗 바늘만 바라본다.
약을 치거나 물을 대는 일은 가장 햇빛이 뜨거운 낮에는 약효가 금방 날아가고 작물이 오히려 상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래서 어떤 날은 밤 10시까지 물을 대기도 하고 어떤 날은 새벽 3시부터 밭으로 향한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밥을 먹고 쉬는 3시간, 잠드는 몇 시간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10시간 이상은 거의 온전히 농사일로 채워진다. 심지어 일이 끝나는 저녁에는 2~3시간의 가사노동도 이어진다. 그 시간이 고단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 뿌리내린 삶을 지켜내기 위해 나는 노동의 시계를 멈추지 않는다.
땀의 기록 2. 온 몸은 병들어간다
우리는 농작업 특유의 반복적이고 자연스럽지 않은 자세 때문에 전신에 근골격계 통증을 안고 살아간다. 어디 하나만 아프다고 짚어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온몸이 늘 고통에 시달린다. 작물의 성장 단계와 작업 자세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통증이 찾아온다.
가장 심한 곳은 허리와 무릎이다. 식물의 높이에 맞춰 허리를 숙인 채 일을 이어가다 보면 허리에는 늘 묵직한 통증이 감돈다. 욱씬거림이 일상이 되고 몸을 펴려 하면 마치 허리가 딱딱하게 굳어버린 듯 펴기가 버겁다. 허리를 두드려 보거나 돌려 보아도 통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당연한 듯, 삶의 일부가 된 듯 고통은 계속 자리한다.
또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작업하다 무릎을 펴려 하면 뻣뻣하게 굳어 신음이 절로 나온다. 무릎에서 울려 나오는 뼛소리는 그간의 노동 강도를 그대로 증언하듯 거칠고 뚜렷하다.
작물이 자라 키가 커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제는 위를 올려다보며 팔을 들어 올린 채 작업해야 하기에 목과 어깨, 팔에도 통증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관절 마디마디가 시큰거리고 작은 동작에도 불편이 따른다. 이와 더불어 메론이나 수박과 같은 작물은 섬세한 손길을 필요로 하기에 손목과 손가락을 쉼 없이 움직여야 한다. 그 결과 손목이 뒤틀리고 손가락이 굳어져 터널증후군이나 방아쇠증후군같은 질환까지 겪게 된다.
이처럼 하루 종일 쌓인 고통은 결국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짓누른다. 장시간 노동 끝에는 말 한마디조차 힘에 부치고 온몸에 무거운 추를 단 듯 피로가 몰려온다. 옆에서 건네는 사소한 말에도 바로 짜증이 돋아날 만큼 피곤이 겹겹이 쌓인다.
그러나 바쁜 시기에는 병원에 갈 겨를조차 없다. 하루 업무가 밀리면 다음 작업이 차질을 빚기에 봄부터 가을까지는 농사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 때문에 평소에는 진통제와 파스에 의존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나마 농사일이 뜸해지는 겨울에야 비로소 병원을 찾아 각종 검사와 물리치료를 받으며 몸을 추스른다. 하지만 봄이 오면 다시 반복된다.
최근처럼 일이 몰리는 시기에는 과로가 누적돼 피로가 풀릴 틈이 없다. 어느 날은 낮잠 한 번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일을 이어가다 문득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멈춘 듯했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그럴 때마다 과연 내가 이 일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마음 깊숙이 스며든다.
땀의 기록 3. 날씨에 속수무책
농사일에 햇볕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하지만 한 여름의 뜨거운 태양은 우리 농부들을 한순간에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나는 평소 누구보다 체력이 좋다고 여겨왔다. 웬만한 노동 강도쯤은 버텨내며 맡은 몫을 다해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해가 거듭해 갈수록 특히 올여름 들어서는 몸이 내 뜻을 거슬러오기 시작했다.
쨍쨍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일을 하다 보면 목이 금세 타들어 간다. 목마름을 달래려 물을 들이켰지만 어느 순간부터 물만 마셔도 속이 뒤집히듯 울렁거리고 매스꺼움이 몰려왔다. 토가 치밀어 올라와 하던 일을 멈추고 한참을 숨 고르기를 반복했다. 뒷골은 바늘로 찌르듯 따끔거렸고 머리는 어지러워 중심을 잡기조차 힘든 순간이 잦아졌다. 그것은 분명 온열 질환의 신호였다.
여름철 고온 환경 속 장시간의 노동은 내 몸을 서서히 잠식해 갔다. 갈증을 달래려 들이킨 물은 위를 짓눌러 구토감을 키웠고 예전 같으면 거뜬하다고 믿었던 내 체력은 점점 꺾여만 갔다. 더 덥고 습한 요즘과 그리고 앞으로 맞이할 여름들이 오히려 두렵게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농사일은 멈출 수 없다. 쓰러지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우리는 소금을 챙겨 다니며 중간중간 염분을 보충했고 알약 형태의 포도당을 삼키며 기운을 이어갔다. 얼음물 등을 늘 곁에 두고 짧은 틈새라도 허락되는 순간마다 목을 축였다.
몸을 지켜내기 위해 입는 옷도 마치 전투복 같았다. 목에는 아이스링을 걸어 얼음의 냉기가 맴돌도록 했고 선풍기가 달린 조끼를 입고 밭으로 향했다. 뜨거운 태양과 맞서는 이 장비들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폭염 속에서도 땅과 작물을 지켜내려는 우리의 방패였다.
결국 여름 농사란 끝내 이겨낼 수 없는 날씨와의 싸움이다. 폭염 앞에 속수무책이 될 때가 많지만 그래도 우리는 버티고 견디며 길을 찾는다. 제 할 일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다가올 더 뜨거운 여름에도 우리는 다시 밭으로 나선다.
땀의 기록 4.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현장
실제 농사 현장에는 단순히 신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여러 위기와 위험이 함께한다.
무엇보다 농기계 사용의 위험은 빼놓을 수 없다. 농작업에는 크고 작은 기계가 필수적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언제든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요인이기도 하다. 트랙터, 관리기, 예취기처럼 큰 기계는 물론이고 작은 전동 장비 하나라도 한순간 방심하면 큰 부상을 부를 수 있다.
실제로 농기계에 말려 팔이나 다리를 다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하고 심한 경우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례도 있다. 나는 아직 큰 부상을 입은 적은 없지만 주변 동료들이 다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적이 많아 늘 조심하려 애쓴다. 기계 앞에 서면 언제나 긴장으로 몸이 굳어진다.
게다가 농기계 사용 자체가 오랫동안 남성 위주로 이뤄져 왔기 때문에 여성들은 체력적으로 더 불리한 조건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 무거운 기계를 다루거나 고장이 났을 때 수리하는 과정에서도 남성보다 훨씬 더 큰 힘과 집중을 쏟아야 한다. 같은 일을 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더 자주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성 농민들에게 농기계는 단순한 ‘작업 도구’가 아니라 늘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됐다.
위험은 기계에서만 오는 게 아니다. 농작업의 많은 부분은 여전히 수작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기계가 닿지 못하는 구석이나 섬세하게 손이 필요한 작업은 결국 사람의 손으로 작업을 이어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작업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추락 사고의 위험이 늘 따라붙는다. 또 현장 바닥은 관수용 호스나 자재들이 뒤엉켜 있어 발에 걸려 넘어지기 쉽고 물로 젖은 바닥은 미끄럽기까지 하다. 넘어지고, 부딪히고, 긁히는 일은 그야말로 다반사다.
더불어 곤충에 의한 사고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곤충 중 가장 무서운 존재는 ‘벌’이다. 가끔은 벌통을 건드리거나 가지를 손질하다가 숨어 있던 벌을 자극해 수십 방 이상을 한꺼번에 쏘이는 사고도 발생하곤 한다. 나 역시 벌에 여러 번 쏘인 경험이 있다. 무엇보다 나는 벌 알레르기가 있어 한 번만 쏘여도 심각한 두드러기와 호흡 곤란이 찾아오기 때문에 쏘이는 순간 곧장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작업하는 동안 긴장을 풀 수 없는 이유다. 추석 명절 때 조상묘 벌초를 하다가 벌에 쏘여 큰 사고를 당한 뉴스도 남일 같지가 않다.
결국 농작업은 그 자체로 위험이 상존하는 일이다. 아무리 보호 장비를 갖추고 안전 수칙을 지켜도 모든 위험을 막아낼 수는 없다. 농사일을 하는 우리는 늘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는 체념 섞인 말을 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더위 속에서도 안전모를 쓰고 두꺼운 보호복을 입으며 조금이라도 방심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그것이 내 몸을 지키고 또 내 가족과 농업을 지키는 최소한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땀의 기록 5. 유령 아닌 어엿한 ‘노동자’로
처음부터 우리 집이 농사를 지었던 건 아니다. 남편은 원래 충북 진천에서 내수면 어업을 하며 비단잉어를 키우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어업이 막히자 돼지 축사일을 하기 시작했고 그 뒤 부업으로 농업까지 범위를 확장하게 됐다.
그렇게 부업으로 시작했던 농사가 어느새 우리의 삶을 가득 채웠다. 집 밖에서 잠시 덧붙이려 했던 일이 집 안의 중심이 됐고 결국 전부가 돼버렸다. 이제 우리의 하루는 흙과 계절에 맞춰지고 농사는 생계이자 인생 그 자체가 됐다.
하지만 내가 주변에 ‘농사짓는다’ 말하면 흔히 “불쌍하다”고 말한다.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추울 때 추운 곳에서 몸을 갈아넣는 삶이라며 연민을 건넨다. 그러나 그 말 끝에는 직업으로서 농업을 존중하지 않는 느낌이 배어 있다. 흙 위에서 흘린 노동이 마치 덜 값진 것처럼 여겨지는 현실은 곧 상처로 돌아온다. 농업도 다른 어떤 일처럼 엄연히 하나의 직업군임에도 불구하고 늘 저평가의 그늘에 머무른다.
또 우리 여성 농민들은 법과 제도 속에서 종종 유령처럼 취급된다. 농업 구조는 여전히 개인보다 ‘농가 중심’으로 굴러가고 그 안에서 여성들은 흔히 보조자의 자리에 머문다. 실제로 나는 밭과 집을 오가며 수많은 일을 감당하지만 ‘여성 농민’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적인 직업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여성 농민’이라는 이름도 제도권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름이다.
하루 24시간 동안 나는 농사일은 물론 가사와 돌봄 노동까지 담당한다. 주거 공간과 농업 공간의 경계가 모호해 집 안과 밭을 오가는 모든 시간이 곧 노동이다. 남편이 일부 일을 나눠 맡기도 하지만 저울은 늘 내 쪽으로 기울어 있다.
그러나 제도를 향해 손을 뻗어도 나를 지켜줄 울타리는 없다. 보험과 보상의 체계는 여전히 허술하고 여성 농민의 역할과 기여를 집계하거나 기록하는 전담 부서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없는 존재인 듯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는 나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유령이라 부른다. 분명 존재하지만 빛을 내지 못한 채 어둠 속에 머물러야 하는 이름. 때로는 불편한 존재로 치부되는 존재들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계속해서 농부의 길을 걷는 이유는 모든 것을 감수하고도 남을 만한 자긍심이 있기 때문이다. 한 땀 한 땀 보살핀 작물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소비자가 그것을 받아들여 미소 지을 때 말로 다 못할 성취감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차오른다. 내 땀과 정성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순간, 농사는 단순한 수익을 넘어 사회와 이어지는 자부심이 된다.
나를 향해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흙 위에 피어난 열매 하나하나는 내 숨결과 시간을 품은 작은 기적이다. 난 기적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 결실이 누군가의 밥상을 책임지기도 한다. 모두가 농업이 당신의 오늘을 지탱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줬으면 한다. 그리고 오늘도 땀흘리며 일하는 농업인의 가치가 세상에서 반짝반짝 빛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