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밀학교 이경진 교장 “다문화 학생, 한국 적응보다 경쟁력 발굴이 우선”

[TN 인터뷰] 해밀학교 이경진 교장 가수 인순이가 홍천에 설립한 다문화 통합학교 11개국 학생 서로 언어·문화 배우며 함께 생활 인공지능 번역 시스템 활용...다문화 강점 극대화 “해밀학교 모습이 우리 사회 교실에 자리잡길”

2025-09-08     한채연 기자
본보와 인터뷰 하고 있는 이경진 교장.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한채연 기자】산길을 따라 들어가면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새어나오는 곳이 있다. 바로 해밀학교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서는 법과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배우며 함께 생활한다.

강원도 홍천군에 위치한 해밀학교는 가수 인순이가 설립한 중학교 교육과정의 다문화 통합학교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해밀학교는 ‘비주류’지만 곧 20만명을 뛰어넘을 다문화 가정 학생 수를 고려하면 해밀학교의 교실은 미래 우리 교실 풍경과 가장 가까운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해밀학교가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보통의 학교’가 되길 바란다는 이경진 교장을 직접 만나봤다.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해밀학교의 모습. ⓒ투데이신문

Q. 해밀학교가 어떤 학교인지 소개 부탁드린다.

해밀학교는 가수 인순이씨가 다문화 가정 학생의 고등학교 졸업률이 턱없이 낮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교육하고자 설립한 학교다. 다문화 학생과 비 다문화(한국)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재학생은 한국 학생 40%, 다문화 학생 60% 정도로 이뤄져 있다. 다문화 학생 중 절반 이상이 중도 입국 학생이다. 이들은 해외에서 태어났는데 이민 온 가정의 자녀나 재혼한 엄마를 따라 한국에 들어온 학생, 난민이나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 등 각자 다른 사연을 갖고 있다.

Q. 해밀학교에는 몇 개국 학생이 함께 생활하고 있나.

총 55명 11개국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의 아이들이 가장 많고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주해 온 아이들도 있다. 한국 학생의 경우 대안교육의 일환으로 해밀학교를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손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처럼 가족 내 돌봄이 필요한 학생이 찾아오기도 한다.

Q. 학생들이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는 이유가 있다면. 

해밀학교를 찾아오는 학생들은 집과 가까이 있는 학교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아 공부를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창원, 부산, 광주 등 멀리서 찾아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이렇듯 학생들이 먼 거리를 매일 오갈 수 없을 뿐더러 가정 내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어 기숙형 학교로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는 상주 선생님의 존재와 또래 관계를 더 긴밀히 맺을 수 있다는 점이 기숙형 학교의 장점이라고 본다. 물론 언어도 문화도 다른 학생들이 함께 생활을 맞춰가야 하니 그 과정에서 진통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부모님이 일하러 나간 뒤 혼자 있는 것보다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생활하면 아이들에게 훨씬 넓은 성장 기회가 되지 않겠나. 앞으로는 집 앞의 학교가 다문화 학교가 될 수 있으니 기숙형 학교가 필요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해밀학교 학생들은 수업뿐만 아니라 청소 등 모든 생활을 함께한다. ⓒ투데이신문

Q. 한국어가 서툰 학생들도 수업에 원활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특별히 마련한 수업 방식이 있다고.

각국 학생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만든 실시간 번역 시스템이다. 구글 시트에 한국어로 내용을 입력하면 구글에서 제공하는 언어라면 어떤 언어든지 즉각 번역되도록 설계된 인공지능 시스템이다. 다시 말해 교실에 있는 모든 아이가 자기 언어로 선생님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도입할 예정인 시스템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교육 방식이다. 수업 내용을 집약한 자료를 각국 언어의 팟캐스트로 생성해 학생들이 수업 전 들어볼 수 있게 할 생각이다. 오늘 수업할 내용을 그들 나라 언어로 번역된 문서와 함께 들어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이중언어를 할 수 있다는 다문화 아이들만의 경쟁력을 놓치지 않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할 때쯤이면 모국어를 잊어먹는 경우가 많아 고민한 결과다. 한국어 학습도 하고 내 지식을 모국어로 계속해서 쌓아나갈 수 있는 방식이라고 본다. 이런 것들을 잘 모델링해서 다문화 학생이 있는 다른 학교에 도움을 주고 싶다.

Q. 해밀학교 선생님들은 어떤 분들인가.

일반 중학교에서 교육하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의 과목을 담당하는 선생님과 교장을 포함해 현재 10명의 교원이 학생을 지도하고 있다. 해밀학교는 대안학교 그리고 다문화 학교, 특히 기숙형 학교라는 복합적인 어려움을 갖고 있기에 이곳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해밀학교 선생님들은 모두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돌보겠다는 사명감이 있는 분들이다. 개교 당시부터 지금까지 함께해온 선생님도 있다.

Q. 교육 현장에서 겪는 고충은 어떤 것들이 있나.

학생 간 언어와 문화가 각기 다르고 교육 수준에도 차이가 있어 어떻게 함께 교육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다. 20명의 아이가 한 반일 경우 그 중 8명은 한국인 학생이고 나머지 12명도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베트남, 태국, 필리핀,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학생과 한국에서 태어난 다문화 학생이 섞여 있다. 언어가 안 통하니까 교우 관계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도 문제가 된다. 무엇보다 중학생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자기 언어로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선생님이 없는 결핍을 어떻게 채워줘야 할지가 가장 큰 숙제다. 가정에서 긴밀한 돌봄을 받기 어려운 상황의 학생들은 선생님의 도움이 절실하니 말이다.

이경진 교장이 해밀학교의 인공지능 활용 교육 방식을 시연하는 모습. ⓒ투데이신문

Q. 선생님과의 소통 외에도 학생 간 소통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이들끼리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모든 학생에게 지급되는 크롬북을 이용해 통역하며 대화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다. 각 나라의 음식이나 의복 등 문화를 소개하고 소개받는 국제문화 동아리 활동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기도 한다. 학생회도 여러 나라 학생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물론 아이들끼리는 당연히 다른 문화로 오해가 생겨 다투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반으로 1학년부터 3학년까지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며 더불어 지내는 방식을 배운다.

Q. 졸업생들 이야기도 듣고 싶다.

올해까지 총 100명이 졸업했다. 서울의 경우 한 학년에 400명 정도가 졸업하는데 해밀은 그것에 비하면 매우 적은 인원이다. 하지만 졸업 이후에도 홈커밍데이를 열면 참석률이 70%가 넘을 정도로 학생들이 학교에 애틋함을 갖고 있다. 학교가 감옥 같다더니 졸업하고 나선 이곳에서 받았던 관심과 애정이 떠올라 학교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 군대 가기 전에 아이들이 그렇게들 찾아온다. 그만큼 해밀학교 사람들을 식구라고 느끼는 거다. 학교가 이런 시골에 자리 잡은 이유도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한국에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고향을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졸업생들이 해밀을 고향처럼 기억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Q. 교직 생활 중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다면. 

한국에 오는 학생들이 모두 케이팝을 좋아하고 한국이 좋아서 오는 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오는 아이들도 굉장히 많다. 기억에 남는 학생은 중국 학생이었는데, 고아였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우리 집에 데리고 있었다. 그 친구가 올해 봄에 독립해서 나갔는데 지금도 생각이 많이 난다. 지금은 서울에서 취업해 자취하며 지내고 있다.

또 해밀학교에 처음 왔을 때는 한국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베트남 여학생이 대학에 진학해 학과에서 수석을 하고 있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 참 뿌듯하다.

해밀학교 곳곳에는 다양한 언어로 쓰인 안내판이 위치해 있다. ⓒ투데이신문

Q. 다른 다문화 학교와 해밀학교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해밀은 성장하고자 하는 학교다. 새로운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찾아 수업에 활용하는 등의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앞서 소개한 팟캐스트 프로그램도 구글에서 공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술인데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한 끝에 찾아낸 방안이다. 해밀학교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어떻게 잘 성장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며 함께 성장하는 학교인 것 같다.

Q. 해밀학교처럼 대안학교와 일반학교의 경계를 허문 ‘통합학교’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인천에 한누리 학교라고 해밀학교와 비슷한 학교가 있었다. 중도 입국 학생들을 따로 가르친 후 그 학생들을 한국 학생이 있는 본교로 보내는 방식으로 운영되던 곳이었다. 그런데 본교에 진학해서도 아이들이 한국 학생과 어울리지 못하더라. 이런 사례를 보면 다문화 가정 아이들도, 한국 아이들도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같은 교실에서 함께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통합학교는 어렵지만 어쨌든 다문화 사회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본다. 다문화는 사회의 흐름이고, 앞으로 그런 사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안학교라고 불리지만 언젠가 다문화 학교가 우리 사회 보통의 학교가 되지 않을까.

Q. 아직 한국 사회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이 곳곳에 존재한다. 이런 사회 속 해밀학교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보나.

학생들에게 마음의 굳은살을 만들어주고 싶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무조건 보호해 주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단단한 마음을 갖고 살아갈 힘을 주고 싶다는 뜻이다. 학생들이 한국에 무조건 똑같이 녹아들고 적응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만의 경쟁력을 찾아갔으면 한다. 다문화이기 때문에 불리한 것이 아니라 다문화이기 때문에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고 말이다. 해밀은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사회에 나가기 전에 그런 단단한 마음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Q. 해밀학교 학생들을 향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는 중도 입국 학생이나 다문화 학생들이 롤모델 삼을 만한 인물이 드물다. 지금은 한국어를 할 줄 몰라도 한국 사회에서 요리사가 될 수도 있고 혹은 가수, 선생님이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인물 말이다. 그런 롤모델 역할을 우리 해밀학교 학생들이 했으면 좋겠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주저 없이 되고 싶은 건 뭐든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