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법] ‘한복 vs 상복’ 정기국회, 격랑의 정치문법
정치, 겉보다 중요한 건 작동 방식이다. 정치는 말과 행동으로 움직이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고유한 ‘문법’이 존재한다. 법과 제도의 언어, 권력의 계산, 대중의 심리, 미디어 전략과 정치 언어 등이 어떤 타이밍에 움직이며, 무엇을 감추고 드러내는지는 단순한 논쟁 너머의 작동 규칙을 따른다.
〈정치문법〉은 한국 정치의 핵심 이슈와 정국 전개를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정치 구조, 전략, 심리, 제도 작동 방식의 측면에서 분석해본다. 정치를 이해하고 싶다면, 정치의 문법부터 파악하라.
정청래의 역공과 민주당의 전략
정기국회가 9월 1일 문을 열었지만 여전히 협치보다는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되고 있다.
지난 2일 국회 법사위에서 ‘검찰 개혁 공청회 계획서 채택의 건’에 대한 표결을 두고 여야 의원 간의 격렬한 대립이 벌어졌다.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표결을 하려 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며 소란이 시작됐고, 이 과정에서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이성윤 의원에게 ‘초선은 가만히 앉아 있어!’라고 호통 치는 일이 벌어졌다.
이를 두고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나경원 의원을 향해 “역대급 망언”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정 대표의 이와 같은 발언은 단순히 나경원 의원 개인에 대한 비판을 넘어, 국민의힘 전반을 겨냥한 정치적 포석이다. 정 대표는 “초선은 가만히 있으라”는 발언을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일갈했다. 여기서 ‘초선은 가마니인가’라는 직설적인 비유는 정치적 위계를 강조하는 구태정치를 겨냥한 동시에, 민주당 내 젊은 의원들에게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이는 내부 결속과 세대교체 이미지를 동시에 노리는 전략적 수사다.
이어 정 대표는 추경호 전 원내대표의 내란 관련 재판 가능성을 언급하며 “만약 유죄 판결이 난다면 국민의힘은 위헌정당 해산 심판을 피할 수 없다”며 “국민의힘은 스스로 해체할 것인지, 아니면 국민과 헌법재판소로부터 해산당할 것인지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압박했다.
정 대표의 이 같은 언급은 법적 사실 관계와 별개로, 국민의힘을 ‘위헌정당 프레임’에 가두려는 의도적 정치 언어다. 통합진보당 해산 사례를 끌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 헌재의 판례를 소환함으로써 법적 상상력을 현실 정치에 압박 장치로 사용하는 셈이다.
여기에, 정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 피습 사건을 ‘국정원 은폐 의혹’으로 거론하며 “당시 수사가 축소·왜곡됐음이 입증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국정원이 ‘테러로 지정하지 말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의혹이 있다면서 전 정권의 축소·조작 프레임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정치적 사건의 ‘재맥락화’를 통해 정권 책임론을 제기하고, 동시에 피해자인 이재명 대통령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노렸다.
민주당의 이 같은 언어 전략은 향후 정기국회 일정에서 특검법 개정, 검찰개혁 등 주요 의제를 주도하기 위한 전초전이다. 정청래 대표가 직접 앞장서 ‘내란 정당’과 ‘은폐 정권’ 프레임을 던짐으로써 야당 내부에 강경 투쟁의 명분을 제공하고, 당내 초선 의원들의 적극적 행보를 독려하는 일종의 ‘전투 개시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국민의힘의 반격, “특검은 야당 말살 정치 공작”
국민의힘은 정기국회 개회와 동시에 특검 수사를 전면적인 ‘야당 탄압’으로 규정했다.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긴급 최고위원회 직후 조은석 특검과 수사관들을 “즉각 고발”하겠다고 예고하며, 이번 수사가 단순한 사법 절차가 아닌 정치적 기획임을 강조했다. 여기에는 당사 압수수색, 원내대표실 영장 집행 등 최근 이어진 강제 수사가 ‘정권의 정치 공작’이라는 해석이 깔려 있다.
장동혁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내란 정당 몰이는 허무맹랑한 선동”이라며 ‘2025년 9월 3일을 내란 정당 몰이 종식일로 선포한다’는 상징적 언어를 사용했다. 이는 단순히 방어적 태도를 넘어서, 민주당의 공격을 역으로 ‘허위 정치’로 규정하고 대중적 동원을 꾀하려는 발언이다. 정치문법적으로 보면 이는 ‘날짜의 선언’을 통해 정치적 분기점을 새기는 전형적 수사(修辭) 방식이다.
송언석 원내대표도 “특검의 영장은 판타지 소설”이라며 법적 근거가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법률적 정당성’의 부재를 부각시켜 민주당의 정치적 의도를 더욱 도드라지게 하려는 전략이다. 동시에 “모든 의원이 사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 호소는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위한 전형적 위기 담론이다.
국민의힘은 이러한 전략을 ‘의회 바깥’으로 확장하려 한다. 의원총회뿐 아니라 원외 당원협의회, 확대운영위원회 등을 통해 여론전에 집중하고, ‘더 센 3대 특검법’과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추진에 대해서도 강력히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의 이와 같은 행위는“여당의 입법 폭주와 특검의 칼춤에 맞서겠다”는 구도를 구축한다. 이는 단순히 법정 싸움이 아니라, 여론전과 정치적 정당성 싸움으로 전장을 넓히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한복 vs. 상복’…정치적 상징 대립
이처럼야 간의 치열한 대립은 정기국회 개회식 복장에서부터 극명하게 대비됐다. 이재명 정부 들어서 처음 열리는 정기국회에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등은 우원식 국회의장의 제안에 따라 한복을 입고 개회식에 참석했고, 반면 국민의힘은 검은 양복에 근조 리본을 단 상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례 없는 ‘드레스 코드 정치’로 기록될 것이다. 복장이 상징하듯 향후 정국도 극단적인 대치 양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기국회 개회식 복장으로 한복을 선택한 것은 ‘문화적 자긍심’과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상징을 정치 공간에 투영한 것이다. 의원들은 색색의 한복을 입고 본회의장 앞에서 사진을 찍고, 퍼포먼스를 연출하며 일종의 ‘정치적 축제’를 연출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검은 양복과 근조 리본을 택했다. 이는 ‘민주주의의 죽음’이라는 강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상징적 퍼포먼스였다. 송언석 원내대표가 직접 아이디어를 낸 것으로 알려진 이 ‘상복 퍼포먼스’는 입법 독주를 ‘정치적 장례식’으로 형상화한 장치다. 정치문법적으로는 ‘비극적 상징’을 통해 대중의 공포와 분노를 자극하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정당별 복장이 갈린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고 입을 모은다. 과거 외환위기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검은 넥타이를 맨 적은 있으나, 정당 차원의 통일된 복장은 없었다. 이는 한국 정치가 점점 ‘퍼포먼스화’하는 경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한복 대 상복’은 단순한 의상 대결이 아니다. 한쪽은 ‘전통과 국민 화합’을, 다른 쪽은 ‘민주주의의 위기와 저항’을 상징한다. 이는 정기국회 개회부터 여야가 서로 다른 ‘정치적 언어’를 몸으로 표현한 것으로, 앞으로 이어질 100일간의 대치 정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향후 정국 전망…협상보다 충돌
이번 정기국회는 시작부터 격렬한 대치 국면을 예고하고 있다. 민주당은 검찰개혁, 특검법 개정안 등 주요 입법 과제를 밀어붙일 계획이고, 국민의힘은 이를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며 장외투쟁과 여론전을 병행할 태세다.
특히 특검법 개정과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여부는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수사 인력과 범위를 넓혀 ‘사법정의 확립’을 강조하지만, 국민의힘은 이를 ‘인민재판’에 비유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법과 제도를 둘러싼 양측의 언어는 전혀 접점을 찾기 어려운 상태다.
여기에 인사청문회, 대정부질문, 내년도 예산안까지 줄줄이 대립 요소가 대기 중이다. 특히 예산안 심사는 정기국회의 최대 하이라이트인데, 여야가 서로 양보 없이 맞선다면 올해도 ‘정치 예산 vs 정책 예산’ 공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문법적으로 보면, 이번 정기국회는 협상의 장이라기보다는 ‘정치 전쟁터’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여야 모두 ‘양보 없는 대결’을 통해 지지층 결집을 노리고 있으며, 상징과 수사, 퍼포먼스까지 총동원하는 상황이다. 한복과 상복으로 갈린 개회식은 바로 그 전조였다. 국민이 원하는 ‘대화와 협상’은 아직 그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