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N 인터뷰] 국내 첫 청각장애인 앵커 노희지 “장애는 나의 개성, 극복이 아닌 수용하는 것”
끊임없는 연습으로 음성 녹음만 2000여개 소소한 배려 통해 더불어 만드는 사회 느껴 좌절의 시간 속에서도 한계는 본인이 정해 세상의 편견과 한계 깨부수는 시작점 되고파
【투데이신문 김지인 기자】뉴스를 진행하며 프로그램의 얼굴이 되는 사람을 우리는 앵커라 부른다. 앵커는 시청자에게 오직 말로써 정확한 정보전달을 해내야 한다. 그 자리에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인 앵커,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매일 낮 12시, 노희지 앵커는 나의 도전이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되리라는 믿음으로 한계를 깨고 있다.
노희지 앵커는 지난 5월부터 KBS 뉴스 12 ‘생활뉴스’ 코너의 앵커로 매일 뉴스를 전하고 있다. 또박또박, 편안한 속도로 다른 앵커들과 다름없는 전달력을 구사하는 그는 선천적인 중증 청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대학 시절까지도 친한 친구들 이외엔 청각장애를 숨겨왔다는 노희지 앵커에게 방송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만든 변곡점이기도 했다. 허심탄회한 고백이 가능해지기까지 긴 시간 자신과의 싸움을 견뎌냈다.
<투데이신문>은 노희지 앵커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 쌓아온 노력과 철학, 그리고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들어보았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국내 최초 구화 청각장애인 앵커 노희지다. KBS 뉴스 12에서 생활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Q. 12시 생활뉴스 이외에도 하는 활동이 있나.
지금은 방송에 적응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 다른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지는 않지만, 기관과 협력해 칼럼을 쓰거나 이렇게 소소하게 인터뷰하고 있다. 추후엔 데플림픽(청각장애인 올림픽)이라든지 청각장애인의 문화 권리를 위한 한글 자막(CC)과 같은 소외된 목소리들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Q. 앵커를 꿈꾸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학창 시절 반장을 맡거나 발표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청력이 점점 떨어지다 보니까 의기소침해지며 꿈을 자연스럽게 접게 됐다. 그러다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에 빅오션(청각장애 K팝 아이돌), 정은혜 작가님과 같은 분들의 활동을 보면서 나도 도전할 용기가 생겼다. 그분들 덕에 꿈을 다시 꾸게 된 거다. 내가 다른 사람의 도전을 보며 용기를 얻었듯 나도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도전하게 됐다.
Q. 청각 장애를 가지고 앵커직에 도전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을 텐데 어떤 다짐으로 임했나.
사실 무척 두려웠다. 전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끝없는 나와의 싸움이고 좌절의 연속이었다. 청각장애인과 앵커, 안 어울리지 않나. 그럼에도 이런 한계를 깨부수는 시작점이 되고 싶었다. 내 여동생 역시 청각장애가 있다. 같은 청각장애인으로서 동생이 한계를 단정 짓지 않도록 자랑스러운 언니의 모습을 꼭 보여줘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동생의 힘이 컸던 것 같다. 동생에게 장애는 개성이라고 말해주곤 한다. 나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고 더 좋은 세상에서 살게 되면 좋겠다.
Q. 첫 방송 후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 당시의 소감이 궁금하다.
방송 끝나고 찡했다. 그동안 꾸준히 언어치료를 받고 입꼬리에 피가 날 정도로 젓가락을 물고 발음 연습을 했던 노력이 떠오르면서 이 무대에 정말 서게 됐구나 싶었다. 실감이 안 나기도 했다. 그러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언어치료를 도와주신 분부터 학원 선생님 등 응원하고 도와주신 분들이 생각났다.
Q. 신체적 어려움을 도움받아 고마웠던 인상 깊은 경험이 있나.
방송 데뷔 전 거치는 리허설 기간에 긴장과 스트레스로 돌발성 난청이 왔었다. 고민 끝에 일을 못 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KBS 구성원분들께서 이해해 주시며 회복할 때까지 기다려주신 덕에 방송할 수 있었다. 짜증 내지 않고 한 번 더 말해주는 배려, 매일 기자님들이 피드백해 주시는 원고 리딩 등 이런 일상적인 순간들에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걸 느끼곤 한다.
Q. 시청자 반응이나 댓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반응이 있다면.
청각장애가 있는 중학생이 보내준 SNS 메시지가 가장 인상 깊었다. 보청기를 끼는 게 너무 부끄러웠는데 떳떳하게 활동하는 내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아졌다는 이야기였다. 누군가가 나를 보며 용기를 얻는다는 꿈이 정말 이뤄졌구나, 헛된 시도와 꿈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Q. 앵커가 된 후 가장 변화된 부분이 무엇인가.
마인드의 변화가 컸다. 사실 그동안 자신을 부정해 오던 기간이 길었다. 농인도, 비장애인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고 자기 혐오감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장애를 커밍아웃하며 자기수용에 더 쉬워졌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Q. 노 앵커만의 방송 준비 루틴이 있나.
스튜디오에 들어가니까 막상 연습했던 것처럼 안 되더라. 초반에 모니터링할 땐 왜 이렇게 말하지 싶어 많이 속상했다. 보청기를 끼다 보니 자칫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발음이 꼬이거나 어눌해진다. 그래서 앵커 멘트를 쓰면 수십 번씩 음성 녹음을 하고 들으며 음감을 익힌다. 지금도 핸드폰에 2000여개의 녹음파일이 있다. 더 철저히 준비하다 보니 육체적인 피로가 많긴 하지만 사명감과 보람으로 임하고 있다.
Q. 노 앵커의 행보 자체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깬 사례이기도 한데.
살면서 “너는 청각 장애가 있으니까 안 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청각장애인은 청력이 안 좋으니 비장애인보다 바라보는 시야가 더 넓다. 제스처와 비언어적인 표현을 집중해서 보기 때문에 사람을 더 깊숙하게 보게 된다. 자신의 한계를 단정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장애에 있어 극복이라는 건 없다. 장애는 수용하는 거다. 본인의 장애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헤쳐나가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어제보다 나은 나에 집중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멀리 걸어온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거다. 좌절의 시간 속에서도 한계는 본인이 정하는 거다.
Q. 마지막으로 투데이신문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사람은 누구나 각자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혐오의 시대 아닌가. 서로가 서로에게 연민의 마음을 갖고 더 다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