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그 너머를 말하다] 민주주의 위협에 대한 반격, 기본소득 – 조건 없는 돈이 만드는 조건 있는 삶

2025-09-24     나하은(이화여대), 이가은·이채원(중앙대), 장현서(동덕여대), 조성윤(서울대)

지난달 21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주의, 그 너머를 말하다 – 대학생이 진단하는 민주주의의 현주소와 과제’ 토론회는 청년 세대가 직접 발제자로 나서 민주주의의 위기와 대안을 모색한 자리였다.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의 여름방학 프로그램인 ‘링크로스 아카데미 2기’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직접 기획한 행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대학생들의 시선에서 도출된 문제 인식과 대안은 오늘의 민주주의를 성찰하게 하는 동시에 미래의 방향을 가늠할 단초를 던졌다. 투데이신문은 청년의 목소리가 담긴 이번 논의를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폴 우드러프의 저작 <최초의 민주주의>는 두 가지 통찰을 제공하는데, 그것은 투표는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그 자체로 민주주의는 아니라는 설명과, 민주주의는 ‘모두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느냐는 질문은 우리 사회에서 모두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있느냐는 질문과도 같을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아가고 있을까?

구조적 성차별, 여성혐오, 이주노동자를 향한 최저임금 차등 적용 주장, 서울시청앞 광장에서의 퀴어퍼레이드 개최 불허, 수십년째 이어지는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모두의 목소리가 평등하게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87년까지의 민주주의 파괴는 국민을 물리적으로 탄압하던 군사독재정권에 의한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민주주의 파괴는 특정한 목소리들이 발화되지 못하고 비가시화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주목할 것은, 소수자의 목소리를 ‘소음’으로 취급하는 과정들에 시민 개개인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근래, 2030 젊은 세대에서 우경화, 정치 무관심과 냉소, 심지어 정치혐오가 관찰된다. 나랑 상관 없는 일이기에 내가 알 바가 아니라는 신조어 ‘알빠노’, 누가 칼들고 협박한 것도 아닌데 그런 행동을 한 것의 책임은 온전히 개인에게 있다는 신조어 ‘누칼협’의 시대라는 말도 나온다. 정치 혐오나 무관심, 타인과의 연결성에 대한 부정은 사회를 바꾸는 것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이는 사회를 바꾸지 않고 주어진 환경을 있는대로 받아들이는 개인적 결정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의 부당함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타인을 혐오하고 힐난하는 데까지 이어진다. 성평등과 동물권 논의에 관심 없는 것을 넘어, 성평등을 주장하고 비건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에 대해 조롱하는 소셜미디어 게시물이 그러한 예시가 될 것이다. 무엇이 이와 같은 민주주의 파괴를 불러온 것일까? 원인을 진단할 수 있다면, 민주주의의 파괴를 막기 위한 해결책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별들의집 10.29 이태원참사 기억소통공간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앞에 남은 책임, 참사 앞에 남은 책임> 간담회에서 질문하고 있는 모습이다. ⓒ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

무엇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가?

하나의 원인은 무한 경쟁이라는 거대한 사회 구조적 압박이라고 할 수 있다. 20대들은 취업이라는 좁고 높은 문턱을 넘어가고자 끊임없이 경쟁자들을 밟고 기어오르고 있다. 주목할 것은, 20대들이 사회의 부정의를 고발하고 이에 맞서기보다는, 사회 풍조에 녹아들고 부정의함에 순응하고자 몸부림치고 있다는 점이다. 정의와 부정의, 시민의 저항적 역할에 대해 학습하기도 전에 이미 부정의한 사회 구조 속에 내던져져 경쟁에서 타인을 누르고 앞서나가야 함을 온몸으로 체득한 것이다. 과열된 입시 경쟁은 학생들이 그 부정의함에 대해 재고해 볼 기회를 앗아가는 큰 요인이다.

20대가 부정의한 사회 구조를 인식한 경우에도 무한경쟁 사회에서 부정의에 대항하기란 쉽지 않다. 개개인은 저마다 감당 가능한 인지노동의 양이 정해져 있는데, 이를 ‘정신적 처리량’이라고 부른다. 20대들 또한 저마다의 한정된 정신적 처리량이 있는데, 취업을 위한 공부와 스펙 쌓기, 취업 이후의 정규직 전환이나 승진을 위한 업무와 자기계발은 다량의 정보 처리를 필요로 해 한정된 정신적 처리량의 대부분을 소모하게 한다. 할당된 정신적 처리량을 이미 전부 사용한 20대는 정치와 시사에까지 관심을 가질 정신적 여유가 없고, 경쟁 속에서 점점 정치와 괴리되어 부정의에 대항하기 어렵다.

과도한 경쟁과 부정의한 사회 구조는 불평등 속에서 약자가 된 사람들을 극우 논리에 휩쓸리게 만든다. 사회 구조의 피해자는 자신이 겪게 된 피해에 대해 책임을 물을 만한 희생양을 찾는데, 극우 파시즘은 이를 부추겨 민주 정치의 기반 자체를 부패한 기득권층으로 규정하고 인민의 의지로써 이 부패를 공격하고 척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유럽공공정책저널에 따르면, 불평등 정도를 뜻하는 지니계수가 한 단위 증가하면 민주정치를 좀먹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1퍼센트 증가한다. 케이트 피켓과 리처드 윌킨슨은 지니계수가 높은 나라일수록 민주주의 침식 정도가 심해진다고 밝혔다.

한편, 민주주의의 파괴는 오롯이 부정의한 사회구조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무한경쟁사회에 살고 있는 20대는 피해자로 묘사되는 경우가 잦지만, 오찬호는 20대들이 가해자의 면모 또한 지니고 있음을 지적한다. 20대들은 자신보다 학벌이 낮다고 생각되는 타인을 무시하고 깔보며 학벌주의와 엘리트주의를 공고히 해 무한경쟁사회를 작동시킨다. 가해자성을 지닌 20대들에게 소수자들의 권리는 연대는커녕,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돼버린다.

사회 구조 자체를 변혁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과제이지만, 개개인들이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느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의도와 상관없이, 개인은 부정의한 사회 구조를 공고히 하고 있거나 부정의한 사회 구조에서 유리한 위치 속에 놓여 있을 수 있다. 부정의한 사회 구조가 재생산되고 그 정도가 악화되는 것은, 개인들이 부정의한 행위를 했다기보다 그저 사회 구조를 ‘주어진 것’으로 순응하고 받아들였기에 발생한 결과일 수 있다. 정치학자 아이리스 매리언 영은 ‘죄’와 ‘정치적 책임’을 구분하는데, 영은 부정의한 사회 구조를 직접 만들거나 만드는 데에 기여하지는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사회 구조를 유지시키고 유리한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을 두고, 죄는 없을지 몰라도 정치적 책임은 져야 한다고 보았다. 개인들이 현 사회 구성에 일조하지 않았더라도 현재 사회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면 그들은 ‘정치적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학생이 진단하는 민주주의의 현 주소와 과제> 토론회 기본소득 주제로 발제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

민주주의 위협에 대한 반격, 기본소득 : 조건 없는 돈이 만드는 조건 있는 삶

오준호는 민주주의를 강하게 할 수 있는 해법으로 기본소득을 제안한다. ‘기본소득’이란 사회의 모든 사람에게, 개개인에게 개별적으로, 구직이나 노동 등의 조건을 요구하지 않고, 특정한 기간마다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현금을 말한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사회 구조적 요인 무한경쟁과 그로 인한 불평등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소득이나 재산, 자격 심사 없이 모든 사람에게 지급되므로 임금노동을 하든 하지 않고 있든 저소득층에게도 지급된다. 또한 기본소득은 청년의 삶에 나타나는 불평등뿐만 아니라 불안정까지도 완화하거나 해결할 수 있다. 매 기간마다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은 기존에 소득 불안정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기본소득이 정기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지급된다는 사실에만으로도 불안정으로부터 벗어날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예상하지 못한 큰 지출이 발생해도,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가 성공적이지 못해 예상만큼의 수익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일정한 금액이 정기적으로 지급된다면 한 번의 실수가 우리를 낭떠러지로 몰지 않게 된다.

더 나아가, 기본소득은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던 노동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는 역할까지 할 수 있다. 노동 윤리에 기반한 근면성실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는 여유, 휴식, 내면의 집중, 즐거움을 탐색하는 일의 가치를 평가절하시킨다. 반면 임금노동을 해야 한다거나 구직을 해야 한다는 등의 조건이 요구되지 않는 기본소득은 인간이라면 생산하지 않고, 노동하지 않더라도 존재 그 자체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지님을 보장한다.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들에게 소득을 보장함으로써 임금노동 시간의 일부를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개개인의 시간주권을 보장한다. 시간주권이 보장될 때에,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용해나갈 수 있다.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기업이 위험을 알면서도 방치해둔 일자리나 임금체불과 같은 부당한 처우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수용하기보다 개선을 요구하며 저항할 실질적 자유를 갖게 된다. 기본소득으로 인한 최소한의 생활 보장은 노동시장에서의 저임금・불안정 구조 자체를 개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 밖에서도 개인이 목소리 낼 수 있게 만든다. 그때그때 마주치는 부당함에 대해 금전적으로든 시간적으로든 여유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묵인해야 했던 상황들에 대해,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더 이상 참지 않고 목소리를 내게 된다.

기본소득은 개개인들이 맺는 관계에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할수록 사람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경쟁과 배제를 택하기 쉽지만, 기본소득으로 인해 물질적 안정이 보장되면 타인과 협력하고 공동체에 참여할 여유, 실질적 자유가 생긴다. 어떠한 자격 심사도 없이, 개개인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제공되는 기본소득은, 한 사람은 그 ‘존재’만으로도 존엄한 삶을 살 가치가 있음을 함축한다. 타인과 협력하고 공동체에 참여할 실질적 자유를 갖고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존중받음을 느낄 때, 사회에는 연대 의식이 꽃필 수 있다. 판동초등학교에서 어린이 기본소득을 받은 한 학생은 “학교가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기본소득은 단순히 돈을 나눠주는 복지 정책이 아니다. 기본소득은 불평등을 완화하여 파시즘이 싹트는 배경을 제거하고, 무한경쟁이 아닌 생계 걱정 없는 사회로 패러다임을 전환시킨다. 기본소득이 우리에게 돌려준 ‘시간 주권’은 개인의 여유로운 휴식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타인과 연대하며 변화를 만들어 갈 민주적 역량을 회복시키는 힘이 돼준다.

물론 기본소득 하나로 민주주의의 위기가 모두 말끔히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민주주의 위협에 대한 반격의 실질적인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조건 없는 돈은 우리에게 무관심 대신 관심을, 냉소 대신 연대를, 두려움 대신 존엄을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조건을 제공한다. 기본소득은 결국 ‘조건 없는 돈이 만드는 조건 있는 삶’이며, 그 삶 속에서 우리는 타인을 더 바라보며 민주주의를 지키고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

민주주의는 제도나 법률 따위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2025년 지금,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파괴된 민주주의를 체념 속에서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연대와 존엄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어나갈 것인가? 그 결정권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참고문헌]

아이리스 매리언 영 (2018). 정의를 위한 정치적 책임 (허라금・김양희・천수정, 역).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원본 출판 2011)
오찬호. (2013).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개마고원.
오준호. (2017).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개마고원.
오준호. (2025). 기본소득당 기관지 인커밍 번외판 : 어떻게 기본소득은 민주주의를 강하게 하는가.
폴 우드러프 (2012). 최초의 민주주의 (이윤철, 역). 돌베개. (원본 출판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