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비밀일 수밖에’, 공감과 용서로 이어진 가족의 연대

2025-09-21     최두진 객원기자
영화 <비밀일 수밖에> 스틸컷. [사진제공=AD406]

【투데이신문 최두진 객원기자】우리는 가족들에게 정말 비밀이 없을까. 필자는 돌아가신 아버지,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 그리고 서울과 대전에 흩어져 사는 형제들에게 감추고 싶은 비밀을 가지고 있다. 아버님과 나, 어머님과 나, 형제들과 나, 아내와 나, 그리고 아들들과 나 사이에도 서로 지켜주는 비밀들이 있다.

그 비밀들은 공통의 관계 속에서 생겨나고, 드러나기를 거부하며, 때로는 침묵으로 봉합된다. 그러나 만약 그것들이 갑자기 드러난다면 어떻게 될까. 김대환 감독의 영화 <비밀일 수밖에>는 바로 이 질문을 조용하지만 예리하게 밀고 들어간다.

영화는 강원도 춘천의 한 집에 모인 두 가족의 우연한 동거로 시작한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은 곧 균열을 드러낸다. 아버지의 폭력, 감추어진 병, 부모와 자식 사이의 오래된 갈등, 돈과 죄책감, 그리고 끝내 고백하지 못했던 사랑. 김대환 감독은 이를 과장하거나 폭발적으로 터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카메라를 인물의 얼굴 가까이에 붙여 놓고, 그들이 한 줄 한 줄 풀어내는 상처와 고백을 따라간다. 그리고 관객은 어느 순간 깨닫는다. 서로의 비밀을 드러내고, 공감하며, 용서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연대가 시작된다는 것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정하와 진우가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각자 “그건 내 탓”이라고 고백하는 순간이다. 아버지가 분노에 휩싸여 차를 몰다 세상을 떠난 사건은 두 사람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였다. 그들은 각자의 기억 속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죄인으로 만들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날의 진실에 다가서며, 서로의 고백을 마주했을 때, 죄책감은 더 이상 홀로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게 된다. 그것은 공유된 무게가 됐고, 동시에 서로를 덜 미워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변한다.

이 장면을 보며 여러 질문들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화를 내셨는지 묻지 못한 것, 어머니에게 끝내 전하지 못한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단순한 말들, 형제들과 깊이 나누지 못한 대화들. 그것들은 얇은 종이처럼 한 장 한 장 쌓여, 어느새 책 한 권의 두께가 된 죄책감의 장(章)으로 남았다. 덮어둘수록 두꺼워지고, 시간이 갈수록 무겁게 내려앉는다. 영화 속 인물들이 각자의 비밀을 고백하며 서로를 덜 미워하게 되던 순간, 우리도 언젠가는 자신의 장들을 펼쳐야 하지 않을까.

영화 <비밀일 수밖에> 스틸컷. [사진제공=AD406]

그러나 영화는 단순히 개인의 고백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관객 모두의 이야기다. 가족은 끝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사랑까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의 대사가 떠오른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끝내 이해할 수 없고, 다만 사랑할 수 있을 뿐이다.” 김대환 감독의 영화는 바로 그 단순하면서도 무거운 진실을 포착한다.

이 영화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배우들의 얼굴 덕분이다. 장영남은 단단하면서도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정하의 내면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고, 류경수는 능청스럽지만 자기 삶을 개척하려는 젊은 세대의 결을 세밀하게 담아냈다. 스테파니 리는 부모와의 갈등 속에서 흔들리는 청춘의 얼굴을 보여줬고, 박지일은 죄책감에 짓눌린 아버지의 무게를 압도적으로 표현했다. 감독은 그 얼굴들에 여백을 남겼으며, 그 여백 속에서 관객은 자신의 얼굴을 발견한다.

마지막 장면이 흐른 뒤, 필자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중환자실에 들어가시던 날 보여주신 마지막 눈빛. 그 앞에서 흘린 눈물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다. 못난 아들이라는 죄책감과, 그럼에도 지금까지 나를 지켜주신 고마움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끝내 아버지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한 고백은, 너무 늦은 순간에야 터져 나온 울음이었다.

<비밀일 수밖에>는 관객에게 그 늦은 울음을 환기시킨다. 누구나 꺼내지 못한 말과 감춰둔 비밀이 있다. 이 영화는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공감과 용서를 통해 다시 관계를 세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극장을 나온 뒤에도 영화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고백의 무게를 떠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향한, 조용한 위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