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그 너머를 말하다] 평범함의 이름으로, 페미니즘을 배제하는 사회

2025-09-18     문연희·조하린(성균관대)·송수미(건국대)·조이진(중앙대)

지난달 21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주의, 그 너머를 말하다 – 대학생이 진단하는 민주주의의 현주소와 과제’ 토론회는 청년 세대가 직접 발제자로 나서 민주주의의 위기와 대안을 모색한 자리였다.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의 여름방학 프로그램인 ‘링크로스 아카데미 2기’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직접 기획한 행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대학생들의 시선에서 도출된 문제 인식과 대안은 오늘의 민주주의를 성찰하게 하는 동시에 미래의 방향을 가늠할 단초를 던졌다. 투데이신문은 청년의 목소리가 담긴 이번 논의를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의 여름방학 프로그램인 ‘링크로스 아카데미 2기’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제공=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 

 

한국 사회, 특히 대학 사회에 만연한 ‘안티페미니즘’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숨죽이며 지켜보던 수만 명의 시민들은 “윤석열을 파면한다”라는 말을 듣고 환호했다. 민주주의의 서사를 함께 이어가고 만들어가는 과정에 우리가 서 있던 것이다. 그러나 탄핵 이후, 사회 속에 누적돼 있던 갈등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는 일부 페미니스트를 여성우월주의자나 ‘모든 남성을 싫어하는 존재’로 왜곡해 폄하하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페미니즘을 “성별로 인한 정치·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라고 정의하는데, 이는 곧 개인의 성별과 관계없이 ‘평등한 사회’를 구축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페미니스트가 지향하는 평등한 사회는 특정 성별에 치우친 관점이 아니라, 여성성을 해방함과 동시에 남성성 또한 해방하며, 기존의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부담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다. 반면, ‘안티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가치와 사상에 반대하는 것으로, 주로 인터넷 사회에서 확산돼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를 내렸다.

 

안티페미니즘의 (재)생산 주체들

침묵하는 대학 사회는 페미니즘을 둘러싼 오해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된 시선은 누구에 의해, 그리고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안티페미니즘의 대표적인 생산 주체 중 하나인 일간베스트 이용자들을 살펴보자. 일베 이용자들이 공유하는 감각은 크게 세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 평범 내러티브. 둘째, 냉소와 무기력. 마지막 셋째, ‘밈’ 중심의 커뮤니티 문화이다.

김학준은 저서 『보통 일베들의 시대』에서 일베 이용자들이 공통적으로 ‘평범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베 이용자들은 “자신의 인생을 평범함의 범주로 끊임없이 수렴시키는 한편, 자신이 겪은 삶의 특수성을 최대한 억압”하며, 자신이 겪은 고통을 사사화하는 동시에 타인의 고통 또한 사적인 영역에 머물 것을 강요한다. 누군가 자신의 고통을 공적인 장에 올린다면 그것은 일베 이용자들에게 ‘징징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으로서 겪은 불이익을 사회의 공적 담론으로 만드는 페미니스트들은 이들에게 노력도 하지 않고 남들이 이룬 것을 빼앗아 가는 ‘무임승차자’로 여겨질 뿐이다.

일베 이용자들이 ‘평범함’에 과도하게 집착하게 된 원인은 체제 순응으로 대표되는 냉소와 무기력에서 찾을 수 있다. 1990년대 공산권의 붕괴를 거치며 자본주의는 유일한 정치·경제 체계로 받아들여졌고, 현재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조차 상상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386(586) 세대의 “짱돌을 들고 저항하라”는 요구는 이들에게 반감을 살 뿐이다. 사회적 연대가 붕괴된 포스트-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순응이 아닌 다른 선택지를 상상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체제에 순응하며 냉소로 일관하는 일베 이용자들에게 남은 것은 웃음뿐이다. 웃음으로 현실을 회피하는 이들에게 진지한 논의는 경멸과 조롱의 대상에 불과하다. 모든 것을 냉소하며 사사화된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며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목표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자신들의 기회를 빼앗는 페미니스트다. ‘평범’이라는 유토피아로 향하는 길을 페미니스트들이 빼앗는다고 믿는 일베 이용자들은 분노와 좌절을 느끼고, 이는 곧 페미니즘에 대한 악마화로 이어진다. 그러나 여기서도 웃음을 멈출 수는 없다. ‘꼴페미’, ‘페미나치’ 등의 ‘밈’은 이들에게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그렇게 해야 ‘헬조선’이라는 비참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연대는, 공감은 이렇게 해체되고 왜곡된다.

 

여성혐오: 과연 일베만의 문제일까?

사회적 약자를 끊임없이 호명하며 비난하는 혐오의 굴레를 끊지 못하는 일베의 문제적 행동 양상은 한국 사회를 병들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일베적 감각’이 더 이상 일베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디시인사이드, 에펨코리아 등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여성과 사회적 약자를 희화화하고 타자화하는 표현이 일상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혐오 표현이 유희와 결합해 일상 속의 언어로 자리 잡는 순간, 그 출처가 일베든 아니든 ‘일베적 감각’은 사회 전반에 퍼진 공기처럼 스며든다. 결국 이는 소수자를 배제하는 문화의 확산이 특정 커뮤니티만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일상 문화가 결합해 혐오를 재생산하는 한국 사회 전반의 구조적 문제임을 시사한다.

<대학생이 진단하는 민주주의의 현 주소와 과제> 토론회 페미니즘 발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

 

안티페미니즘을 넘어 더 나은 사회로

냉소라는 일관된 태도로 삶을 대하는 청년 세대가 결여된 상상력을 회복하고, 진지하고 따뜻한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가치 중 하나는 ‘다양성’이다. 산업화 시대의 ‘평범한 삶의 꿈’은 ‘각자의 평범함이 존중받는 사회’로 재정의돼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근본적 대책 중 하나는 교육이다. 의무교육 제도를 포함한 ‘더 넓은 의미의 교육’ 말이다.

또한 이를 뒷받침할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발표한 ‘교사들이 학교에서 겪은 페미니즘 백래시 경험 실태조사’에 따르면, 20대 여성 교사 응답자 67%가 ‘페미니즘 백래시’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쌤 페미죠?”라는 조롱 섞인 질문부터 성평등 수업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까지 다양한 형태의 백래시를 겪고 있음에도 교사의 절반 이상은 아무 조처도 하지 못했다. 이들이 겪는 차별적인 현상을 제지할 상위법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학교 내 반차별 정책과 평등한 교육 내용을 더욱 원활하게 도입할 수 있는 기반이 될 뿐만 아니라, 학교 내 성소수자 학생과 교사를 보호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교실에서 여성 교사에게 가해지는 성희롱이나 페미니즘을 문제 삼는 괴롭힘이 성차별적 괴롭힘으로 명확히 규정되고, 시정 조치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는 크다.

결국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다양성이 존중되고 서로의 ‘평범함’이 동등하게 받아들여지는 공동체다. 이를 위해서는 법적 제도와 교육의 변화뿐 아니라 일상에서 이어지는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실천들이 함께해야 한다. 냉소와 무기력 대신 이해와 연대의 감각을 회복할 때, 차별과 혐오를 넘어서는 더 나은 내일이 가능해진다. 지금 우리가 내딛는 작은 걸음들이 더 많은 이들과 연결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사명과 가능성이 공존하고 있다.


[참고문헌]

김학준, 『보통 일베들의 시대』, 오월의봄, 2022.
류우종, 『"쌤 페미죠?" 유난한 아이의 궁금증?』, 한겨레21, 2021.11.30.,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51274.html
마크 피셔, 『자본주의 리얼리즘: 대안은 없는가』, 박진철 역, 리시올,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