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인공지능 시대 현대 미술가의 실험정신을 재조명하다

2025-10-03     이재은

인공지능(AI)이 이제 우리 일상 곳곳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지금, AI에 대한 이해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이에 발맞춰 커뮤니케이션북스는 지난해부터 인공지능총서를 통해 교육, 의료, 산업, 사회, 예술, 철학, 국방, 인문 등 전 분야를 아우르는 AI 담론을 폭넓게 조명해왔다.  인공지능총서는 2025년 8월 20일 현재 430종에 이르렀으며, 올해 말까지 630종 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AI 기술의 핵심 이론부터 산업계 쟁점, 일상의 변화까지 다각도로 다루면서 학계와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인공지능총서 저자들은 최근 ‘AI 3대 강국 실현’을 위한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며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AI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지속가능한 미래로 이어지기 위해선 어떤 가치와 기준이 필요할까. 투데이신문은 인공지능총서 저자들이 제시하는 ‘지속가능한 AI 사회’를 향한 제언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인공지능 시대, 한국은 미래 경제 성장을 주도할 원천기술로서 AI에 주목하며 도약을 모색 중이다. AI가 사회 전반에 미칠 파급효과에 대한 우려만큼 AI 분야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크다. 어쩌면 지금이 우리가 미래 AI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AI와 함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현대 미술가가 보여준 실험정신이다.

2022년 9월 콜로라도 아트 페어에서 제이슨 앨런(Jason Allen)의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Theatre d’Opera Spatial)>이 디지털 아트 부문 1등을 차지했다. 이 작품이 이미지 자율 생성형 AI, 미드저니(Midjourney)가 생성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세상은 AI의 창의성에 당혹해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예기치 못한 충격이라기보다, 이미 미술가들이 오래전부터 예견해 온 풍경이었다.

이미지 자율 생성형 AI가 등장하기 전부터 현대미술은 그림 그리는 기계를 상상해 왔다. 대표적인 인물이 영국 출신 화가 해럴드 코언(Harold Cohen, 1928-2016)이다. 코언은 회화를 구성하는 요소들, 선·색·구도 등을 기호화한다면 기계도 미술가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아론(AARON)을 개발했다. 1966년 제33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영국 대표로 참여할 만큼 화가로서 명성을 쌓았던 그가, 돌연 회화 대신 그림 그리는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한 계기는 1968년, ‘매킨토시의 아버지’로 알려진 제프 래스킨(Jeff Raskin)과의 만남이다.

아론은 코언이 입력한 코드, 원근법과 색채 이론, 구도를 토대로 그림을 그렸다. 1970년대 초기 그림은 단순한 선과 얼룩에 불과했으나, 1990년대에는 인물·식물·풍경을 재현하고 자율적으로 색을 채우는 단계까지 진화했다. 코언이 주목한 것은 아론이 그려내는 통일되지 않는 선과 색에서 드러나는 무작위성이었다. 그는 이를 관객이 ‘인간의 개입 없는 창의성’의 흔적으로 바라보기를 바랬다. 코언은 아론을 르네상스 화가의 조수에 비유했지만, 아론의 회화에서 그가 강조하고자 한 무작위성은 기계가 인간의 창작 도구를 넘어 창작 주체로 진화할 가능성을 보여준 선구적 사례다.

르네상스 이후, 미술가에게 ‘신의 아들’이라는 아우라를 선사해 준 창의성은 이제 빅테크의 연구실이 아닌 미술가의 작업실에서 AI에게 열렸다. 지난해 휘트니 미술관이 코언의 회고전 <해럴드 코언: 아론>을 연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아론과의 여정을 재조명하려는 시도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AI 앞에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창의성의 아우라를 잃을 위기에 처한 미술가도, 인간의 미래도 아니다. 이미 현대 미술가들은 이 변화를 그들 스스로 실험했고, 코언의 실험은 그 상징적 사례다. 그는 미술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창의성이 아닌 실험정신이 현대미술의 아우라임을 말이다. 이러한 현대미술의 패러다임 전환을 우리는 이미 백남준을 통해 목격한 바 있다. 즉 진정한 과제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어떤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실험정신 그것이야말로 인공지능 시대 인간 창의성의 원동력으로 미래를 열어갈 힘이다.

현대 미술가의 실험정신은 이미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끝없는 도전을 가능케 한 실험정신으로 AI와 함께하는 세상을 만들어 갈 새로운 패러다임의 생성이다.

 

△ 이재은

필자소개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연구교수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미술이론과 겸임교수다. 포스트휴먼 AI 미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AI 미술과 포스트휴먼』(2025) 『모빌리티인문학의 적용과 모델링』(2024), 『분열된 신체와 텍스트』(2017)가 있으며, 논문으로는 “포스트휴먼시대 한국현대미술과 로봇”(2023), “인공지능과 포스트휴먼: 노진아의 <제페토의 꿈>을 중심으로”(2021), “포스트휴먼의 꿈, 최우람의 ‘기계 생명체’를 중심으로”(2021)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