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롯데케미칼, 정부發 석화 구조조정 속도 주문에 ‘안간힘’
여수·대산 NCC 통폐합 향방 두고 기업들 고심 깊어져 기초화학 의존도 여전…구조조정·스페셜티 ‘이중 과제’
【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국내 석유화학업계가 대규모 구조조정 압박에 직면했다. 정부가 에틸렌 감산과 납사분해시설(NCC) 통폐합을 요구하며 사업 재편 속도를 높이고 있지만, 국내 대표 화학사인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은 구체적인 해법을 내놓지 못한 채 고심을 이어가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8월 말 발표한 구조조정안에서 연간 270만~370만t 규모의 에틸렌 감산 목표를 제시했다. 이는 국내 전체 생산능력의 약 20%에 해당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기업의 자구노력이 있어야 금융·세제 지원을 논의할 수 있다는 원칙을 세우며 기업 스스로 해법을 마련하라는 압박을 강화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지난 23일 10개의 석유화학기업과 현장간담회를 열고 합작법인 설립이나 NCC 통합 같은 구조조정이 추진될 경우 기업결합 심사 절차를 간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사전컨설팅 제도를 활용해 심사 기간을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부와 공정위가 잇달아 압박 수위를 높이자 업계 전반의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특히 대규모 NCC 설비를 보유한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은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피하기 어렵다. 두 회사 모두 범용 제품 의존도가 높아 중국발 공급과잉의 충격을 그대로 받아온 만큼, 이번 구조조정의 핵심 시험대가 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LG화학, 여수 NCC 시험대
LG화학은 국내 석유화학 업계에서 가장 먼저 사업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에 속도를 낸 기업 중 하나다. 김천·나주 공장 철수와 비핵심 사업 매각을 통해 범용 제품 의존도를 낮추고 배터리 소재와 친환경 신사업으로 축을 옮겨왔다. 워터솔루션·에스테틱 사업부 매각 등 잇단 자산 정리를 통해 현금을 확보했고, 이를 미국 테네시주 양극재 공장 같은 성장 프로젝트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왔다.
그러나 기초화학, 특히 여수 NCC는 여전히 LG화학의 실적을 좌우하는 핵심 거점으로 남아 있다. 여수 NCC의 연간 생산능력은 약 280만톤(t) 규모로, 정부가 요구한 에틸렌 감산 목표량을 충족할 수 있는 주요 후보지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LG화학이 여수 NCC 설비 일부를 축소하거나 정유사와의 합작을 통해 효율화를 시도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실제 시장에서는 GS칼텍스와의 협력 시나리오가 꾸준히 거론된다. 원유 정제를 맡는 정유사와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화학사가 손을 잡으면 원가 절감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여수 산업단지 내 입지가 맞닿아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가능성을 키운다.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GS칼텍스와 여수 나프타분해설비(NCC) 통폐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LG화학은 최근 공시에서 “석유화학 사업의 경쟁력 강화와 사업가치 제고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나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시장 반응과는 달리 속도는 더딘 셈이다. 이는 감산과 통합이 단순히 생산능력 조정이 아니라, 정유사와의 이해관계 조율·지분 구조 변경 등 복잡한 사안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 대산 NCC은 어디로
롯데케미칼 역시 구조조정 압박의 한가운데 서 있다. 그동안 스페셜티 전환을 선언하고 첨단소재·정밀화학·전지소재 자회사들을 앞세워 체질 개선을 추진해왔지만, 기초화학 매출 의존도는 여전히 절반 이상이다. 지난해 기초화학 부문 매출은 13조8419억원으로 연결 매출의 63% 이상을 차지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비중은 59%를 넘어섰다.
대산 NCC는 구조조정 논의의 핵심으로 꼽힌다. 연산 477만톤(t) 규모의 대형 설비로,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가 합작 형태로 운영 중이다. 최근 업계에서는 이 합작사의 지분 조정 가능성이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롯데케미칼이 지분을 줄이거나, 이와 반대로 지분을 확대해 단일 의사결정 체제를 구축하는 방식이 모두 검토 대상으로 오르내린다. 다만 롯데케미칼 측도 “여러 방면에서 논의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확정된 건 없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롯데케미칼은 비핵심 자산을 줄이고 신사업에 집중하는 ‘에셋 라이트’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에는 미국 루이지애나 법인(LCLA) 지분 40%를 처분해 약 6600억원을 확보했고, 지난 2월에는 파키스탄 PTA 자회사 LCPL 지분 75%를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하며 1200억원대 현금을 마련했다. 이어 3월에는 일본 레조낙 지분 4.9%를 정리해 2750억원을 추가로 확보한 바 있다.
석유화학사-정유사, 이해관계 차이에 발목
LG화학과 롯데케미칼 모두 구조조정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실행 방안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정부가 큰 틀을 마련했지만, 정유사와의 이해관계 조율과 지분 구조 개편 등 복잡한 과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한 석화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각사가 이해득실을 따지며 카드를 맞춰가는 단계”라며 “NCC 통폐합이나 지분 조정은 이해관계가 복잡해 단기간에 결론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부 압박이 강해도 기업 입장에서는 시장 상황이 불확실해 선뜻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며 “중국발 공급과잉이 계속되는 한 구조조정 효과도 제한적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