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를 넘어 K-문화의 무대로… 낙선재 ‘100년의 시간과 풍경’ 행사 개최
낙선재, 순정효황후·덕혜옹주·의민황태자비 선(善)을 담다 궁중문화축전 11회, 낙선재에서 조선의 전통·현대 연결 개막식·궁중 무용 공연·전통문화 체험 등 콘텐츠 준비돼 의민황태자비 자혜학교·소외계층 어린이 초청 행사도
【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창덕궁 후원의 깊은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긴 세월의 겹을 고이 품은 별당이 조선부터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우리들을 맞이한다. 자그마치 100년간 유지돼 온 대한민국의 보물, 낙선재(樂善齋)다.
화려한 정전(正殿)과는 달리, 낙선재는 소박한 기품과 단아한 풍광으로 왕실의 숨결을 이어왔다. 때로는 황후의 고즈넉한 거처였고, 때로는 황실 가족들의 애환이 서린 삶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이 아름다운 별당은 시민들이 궁궐 문화를 만나는 특별한 무대가 되고 있다.
현 시대 낙선재는 시간을 품은 사람들의 배경이 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847년, 조선 제24대 왕 헌종이 자신의 생활 공간으로 삼기 위해 건축을 추진하면서 세워진 이곳은, 이후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에 황실 여성들의 거처로 널리 사용됐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국모 순정효황후가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고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가 낙선재의 마루를 거닐었으며, 의민황태자비(이방자 여사)가 일생을 의지했다. 특히 덕혜옹주는 숨을 거둔 1989년까지 짧은 유년의 추억을 지닌 낙선재에서 기거하며 만년을 지냈다.
‘낙선재(樂善齋)’라는 이름은 곧 선을 즐기는 사람의 집을 뜻한다. 이 말의 의미는 낙선재에 살았던 사람들의 일생에서 드러난다. 의민황태자비는 장애인을 가르치고 돌보는 일에 헌신하며 선을 즐기는 삶이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녀의 따뜻한 사랑은 장애인 학교와 돌봄 시설이라는 결실로 이어져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으로 남아 있다.
그의 아호인 ‘가혜(佳惠·어진 은혜)’처럼 아름답고 은혜로운 삶의 흔적은 낙선재의 향기와 함께 전해진다. 지금 낙선재에 전시된 그림과 글씨, 도예 작품들은 지난 100년 동안 이곳을 거쳐 간 이들의 선한 마음을 담아 잔잔히 관람객의 마음에 스며든다.
이 같은 역사적 공간 낙선재에서 세 여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성대한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올해로 11회째를 맞이한 궁중문화축전은 나이와 국적을 초월해 K-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궁궐 이야기와 역사적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매년 개최된다.
이번 행사 ‘낙선재, 100년의 시간과 풍경’은 오는 10월 8일(수)부터 10월 12일(일)까지 창덕궁 낙선재 권역(석복헌·수강재 포함)에서 열린다. 행사 기간 동안 낙선재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된 상태로 유지된다. 이번 행사는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가 주최하고, 대한황실문화원과 국가유산진흥원이 주관한다.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즐기는 낙선재의 100년
행사 첫날인 8일 오후 2시 30분 낙선재 마당에서 열리는 개막식은 백승주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되며, 축사와 기념사를 통해 축제의 문을 연다. 우천 시에는 다음날인 9일 같은 식순으로 진행된다.
이어지는 궁중 무용 공연(오후 3시·30분 공연)에서는 화동정재예술단이 전통 음악과 춤을 선보여 궁중의 기품을 오늘에 되살린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궐내각사에서 인정전으로 이어지는 행렬이 마련돼 고즈넉한 궁궐에 생동감을 더한다.
행사 기간 동안 관람객은 낙선재의 풍경 속에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다. 먼저 낙선재 입구에서는 대한황실 인스타그램 이벤트를 통해 낙선재와 관련돼 특별 제작된 기념품을 증정하는 이벤트가 진행된다.
초대 황제 고종의 딸이자 조선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의 어린 시절 목소리로 재현한 AI 도슨트 프로그램은 QR코드를 통해 누구나 쉽게 접속할 수 있으며,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의민황태자가 전하는 환영 인사와 함께 낙선재의 공간을 편지 형식의 해설로 만나볼 수 있다.
낙선재 내부에 진입하면 낙선재의 지난 100년의 역사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과 의민황태자비의 실제 작품, 빈석주 손대현 이기숙 이완 박상유 권한솔 황성제 김예슬 공성윤 등 현대 작가들의 창작품이 관객을 맞이한다. 같은 공간에서 덕혜옹주의 AI 사진전도 찾아볼 수 있다.
이 밖에도 행사 기간 동안에는 궁중놀이, 칠교놀이, 궁중머리 땋기, 칠보공예 시연 등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전통문화 체험이 상시로 진행된다.
역사와 교육이 만나는 공간, 낙선재
특별한 손님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이번 행사에서는 의민황태자비가 세운 자혜학교의 학생들과 소외계층 어린이들을 초청해, 낙선재를 배움과 체험의 장으로 열어둔다.
먼저 자혜학교 학생 초청 프로그램은 행사 이튿날인 9일(목) 오후 2시부터 한 시간 동안 낙선재 권역에서 진행된다. 의민황태자비가 설립한 자혜학교의 학생들을 초청해 궁중문화 해설, 전통 예절 체험, 궁중놀이를 운영하며, 의민황태자비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한편 낙선재에서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와 자긍심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자혜학교는 이방자 여사의 사회복지·특수교육에 대한 뜻으로 설립된 특수교육기관으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전공과 4개 과정을 운영한다.
낙선재 권역에서 열리는 소외계층 어린이 교육은 오는 10월 8일부터 12일까지 행사 전 기간에 걸쳐 진행된다. 8일에는 개식사 및 궁중 무용 공연 관람을 진행할 예정이며, 나머지 일자에는 행사 투어 및 교육, 궁중놀이 등이 계획돼 있다.
프로그램 운영은 학교와의 사전 협의를 통해 참여 학생을 모집하고 이동 지원과 안전 교육을 선행한 뒤 전문 도슨트와 보조 인력을 배치해 학생 특성에 맞춘 체험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참여 일자과 무관하게 체험 프로그램 참여 후에는 기념 선물을 증정한다.
더불어 위 두 프로그램에 참가한 대상자들은 이원 황사손과의 단체 사진 촬영을 통해 특별한 추억을 마련할 기회도 갖게 된다.
낙선재, 살아있는 시간을 품은 문화유산
낙선재는 한 세기를 넘어 황실의 숨결과 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직한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들은 조선 왕실 가족이 선을 베풀기 위해 애썼던 아름다운 마음과 한국의 정취가 깃든 풍경을 느낄 수 있다.
오늘날 낙선재는 과거의 아픔과 희망을 함께 품은 장소에서 시민과 관람객이 문화를 체험하고 역사를 배우는 특별한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전시와 공연, 체험과 교육으로 다시 피어나는 낙선재는 문화재의 의미를 일상으로 확장하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가 된다.
낙선재에서 살았던 순정효황후, 의민황태자비, 덕혜옹주는 생전 왕실의 전통을 물려받아 따뜻한 사랑, 의연한 품격, 다정한 마음을 베풀고 실천한 인물들이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역사가 남긴 교훈과 미래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