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자원 화재…백업 시스템 부재로 국가 전산망 '셧다운' 2차 피해

2025-09-27     성기노 기자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이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관련 브리핑을 마친후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성기노 기자】지난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에 있는 전산실 내 리튬이온배터리에서 화재가 발생, 정부 업무시스템 647개 가동이 중단됐다. 정부는 서버 등 전산장비 보호를 위한 선제적 중단 조치라고 강조했으나 화재에 국가 전산망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정부 온라인 서비스가 온통 먹통이 됐다는 비판을 피해 갈 수 없게 됐다.

특히 이번 화재로 직접적인 손상을 입은 70개 서비스의 경우 복구 시점이 상당 시간 소요될 것으로 전망돼 행정과 민원 업무에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또한 예산 부족으로 이원화 작업을 하지 못했던 것이 치명적이다. 백업 시스템이 없어 당장 서비스 개시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 대응도 일사불란하지 못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례없는 대형화재에 속수무책이었던 점도 있지만 리튬이온배터리 특성상 화재 진압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탓에 정부는 정확한 피해 현황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복구 작업에도 착수하지 못해 국가 전산망 정상화까지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국가 전산망의 ‘심장부’라 볼 수 있는 국정자원 대전본원에 불이 난 것은 지난 26일 오후 8시 15분께다. 전산실 내 ‘무정전 전원장치 배터리(UPS)’를 작업자가 지하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불꽃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 UPS는 전산 시스템에 단절 없이 전기 공급을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장치로 알려져 있다.

화재가 발생한 배터리는 58V 리튬배터리로 12개를 수납하는 캐비넷 총 16개 중 8개가 불에 탄 것으로 소방당국은 파악했다. 내부에 있던 리튬배터리의 절반가량이 소실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화재로 전산실 내부에 열기가 강해지자 전산실 적정온도를 유지해주는 항온항습장치가 작동을 멈췄고 서버 등 전산 장비가 훼손될 것을 우려한 국정자원 측은 대전 본원 내 시스템 647개의 전원을 모두 차단했다.

김민재 행안부 차관은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연 브리핑에서 “화재의 영향으로 항온항습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서버의 급격한 가열이 우려됐고 정보시스템을 안전하게 보전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가동을 중단시켰다”고 설명했다.

김승룡 소방청장 직무대행이 27일 대전시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현장에서 소화수조에 담긴 불에 탄 리튬이온 배터리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소방청]

대전 본원과 분원 개념인 광주·대구센터를 둔 국정자원에는 정부 업무서비스를 기준으로 모두 1천600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정보시스템이 있다. 이중 가동이 중단된 시스템 647개는 대전 본원에 있다. 전체 국가 정보시스템의 3분의 1 이상이 마비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김 차관은 “현재는 항온항습기를 우선 복구 중이며 이후에 서버를 재가동해 복구 조치를 하고자 한다”며 “우체국 금융과 우편 등 대국민 파급효과가 큰 주요 정부서비스 장애부터 신속히 복구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번 화재로 전산망이 사실상 마비되자 시스템 정상화 이후로 세금 납부, 서류 제출 기한 등을 연장하고 국민이 기존 온라인 서비스를 대신해 이용할 수 있는 대체 서비스를 안내하고 있다.

김 차관은 “민원 처리가 지연돼 국민들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시스템 정상화 이전에 도래하는 세금 납부, 서류 제출은 정상화 이후로 연장하도록 유관기관에 안내하고 협조를 구했다”고 전했다.

이어 “국민께서 정부서비스 장애 발생을 미처 알지 못해 당황하시는 일이 없도록, 오늘 오전 8시 재난문자를 발송했다”면서 “국민신문고 등 주요 정부서비스 이용이 제한된다는 것과 관공서 방문 전 서비스 가능 여부를 확인해주실 것을 안내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열폭주 등 리튬배터리 화재 특성상 소방당국의 진화 작업이 빠르게 이뤄지지 못하면서 시스템 복구는커녕 이튿날인 27일에도 피해 현황 파악을 위한 내부 진입조차 못 한 상황이다.이런 상황은 어떤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지 어떤 시스템을 먼저 복구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전소방 관계자가 27일 오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입구에서 전날 발생한 화재피해 경위 등을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정부가 전산망 장애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처음으로 위기상황본부를 가동한 데 이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대응 기구를 격상했으나 국가 전산망 심장부가 정상 가동할 때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재용 국정자원 원장은 이날 브리핑에 동석해 “화재 원인은 감식을 해봐야 알 것”이라며 “손상에 따라 (복구가) 바로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있을 텐데 복구하면서 공개할 것”이라고 알렸다.

이어 “오늘 아침까지 화재 열기가 안 빠져 복구작업에 착수를 못 했다”며 “복구가 언제 끝날지는 열기가 빠지고 소방 안전 점검이 끝나고 서버를 재가동해야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의 주요 전산망이 사실상 셧다운 된 초유의 사태 원인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정자원 전산실 화재로 인한 정부 전산시스템 마비는 데이터를 보관하는 클라우드 환경의 복구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발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정자원은 서버의 재난복구 환경은 갖춰져 있지만 클라우드 재난복구 환경은 구축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규모 클라우드 운영체계이다 보니 똑같은 환경을 갖춘 ‘쌍둥이’ 클라우드 시스템을 지역적으로 떨어진 곳에 갖춰놓고 화재 등 재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같은 기능을 맡도록 하는 서비스 백업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난복구와 백업 시스템이 절반 정도만 갖춰져 있다 보니 이번 화재로 정부 시스템 다운이라는 속수무책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카카오 등 대형업체의 경우 재난복구 시스템을 데이터센터 3개가 연동되는 삼중화 이상으로 고도화하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 서버가 다운되면 즉각 똑같이 기능하는 백업 시스템이 가동이 돼야 이번과 같은 정부 전산망 셧다운의 참사를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국정자원 대전 본원은 공주 센터와 이중화하는 작업이 계획됐지만 예산 문제 등으로 진척이 늦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2005년 설립된 대전 본원은 건축 연원 20년 이상에 노후화 문제도 겪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국가 전산망의 중추적 기능을 하는 서버의 백업 시스템이 완비되지 않아 화재 진압이 된다 하더라도 당분간 정부 전산망의 정상 가동이 불가능해 행정, 민원업무 공백 등 2차 피해까지 확산되는 것은 치명적이다. 정부의 평소 전산망 위기관리 대비태세에 큰 허점이 드러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27일 국정자원 화재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위기상황대응본부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격상했다. 또 ‘행정정보시스템 재난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에 따라 위기경보수준을 ‘경계’에서 ‘심각’으로 상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