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유·석화 이해 엇갈린 구조조정…재촉만으론 풀리지 않는다

2025-09-29     양우혁 기자
▲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

【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 “두 팀을 합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회사 통폐합은 얼마나 복잡하겠습니까.”

석유화학 구조조정 관련 취재에서 나온 말이다. 정부는 속도를 내라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데드라인을 의식해 카드만 맞춰보는 상황이 이어질 뿐 실질적 진전은 없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석유화학 구조조정안에서 연간 270만~370만t 규모의 에틸렌 감산을 목표로 제시했다. 국내 전체 생산능력의 약 20%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정유사와 화학사의 수직통합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정유사와 화학사의 이해관계가 달라 논의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한다. 정유사는 새 부담을 떠안을 수 없다며 주저하고, 화학사는 추가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정부 목표는 시급하지만, 당사자 합의가 따라오지 못하는 이유다.

석화기업들이 호황기에 이익을 배당과 해외 투자에 몰아주며 기초화학 편중 구조를 고치지 못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업황이 꺾인 뒤 기업들이 비명을 질러도 늦게 움직인 정부의 책임이 사라지진 않는다. 이제라도 구조조정에 나선 건 의미가 있지만, 감산 목표를 앞세워 서두르는 방식은 산업 전환을 왜곡하고 현장의 불안을 키울 수 있다.

특히 여수, 대산, 울산 등 석유화학단지에는 수만명의 노동자와 협력업체가 얽혀 있다. NCC 라인이 멈추면 협력업체는 연쇄 도산 위기에 몰리고, 지역경제는 타격을 입는다. 정부 대책 어디에도 고용 충격을 흡수할 방안이나 지역 지원책은 보이지 않는다. 줄이라는 압박은 있지만 줄인 뒤 어떻게 버틸 수 있도록 할 것인가는 빠져 있다.

정부는 기업의 자구 노력이 선행돼야 금융·세제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업은 지원이 있어야 자구 노력이 가능하다고 맞선다. 책임 공방이 이어지는 사이 구조조정의 방향은 흔들리고, 고통은 현장 노동자와 협력업체, 지역 사회에 전가된다.

기초화학은 여전히 한국 수출의 버팀목이다. 비중을 무작정 줄이기보다 미래 먹거리를 키울 투자와 전환 지원, 지역·고용 충격을 흡수할 장치가 필요하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의지가 없다면 성급한 재촉은 오히려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