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지옥에서 올 인플레이션
미국의 시인 찰스 부코스키는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사랑은 어떤 순간에는 구원처럼 다가오지만, 그 이면에는 날카로운 이빨을 숨기고 있다는 시인의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블랙코미디 같은 표현이겠다. 인플레이션도 비슷하다. 적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경제 성장에 긍정적이지만,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경제를 터뜨리는 송곳이 되기도 한다.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미국 증시의 고평가 논란이 시장의 화두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미국 증시 수준을 ‘닷컴버블’ 당시와 비교하고 있다. 실제 시가총액을 GDP로 나눠 미국 증시의 과열 여부를 판단하는 척도로 사용되는 ‘버핏 지수(Bufett Indicator)’는 현재 200%를 초과했다. 지난 2000년 초 닷컴버블 당시 버핏 지수가 150~160%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의 수준은 우려할 만하다.
이러한 우려 중심에는 ‘빠른’ 금리 인하 기대감이 있다. 평소 같으면 금리 인하는 증시 상승의 좋은 땔감이 되겠지만, 현재는 상황이 다르다.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강력한 관세 정책을 펼치면서도, 물가 상승은 없다는 점을 들어 신속한 금리 인하를 단행해야 한다고 연방준비제도(Fed)를 압박하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 노동시장의 악화는 금리 인하의 당위성을 높이고 있다.
결국 물가가 정상 범주에서 관리되고 있다는 판단에서 고용 시장이 악화되자, 트럼프 행정부는 금리 인하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 ‘골디락스 경제(Goldilocks Economy)’를 유지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 고용이 악화하고 있음에도 소비가 줄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상무부 산하 경제분석국(BEA)에 따르면, 미국 노동자 전체의 세전 임금 총액은 올해 2분기 약 12.9조달러로, 1분기 12.7조달러보다 증가했다. 이는 고용주가 총급여를 줄이지 않은 상황에서 실업이 발생하고, 고용 인구가 줄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추측건대,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반(反)이민 정책과 함께 숙련공 위주의 채용이 늘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숙련공 한 명의 임금이 일반 노동자 다섯 명의 임금과 같다고 가정해 보자. 고용주는 일반 노동자 다섯 명을 채용하는 대신 숙련공 한 명만 채용해 총임금 지급액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고용 인구는 네 명 감소하게 된다.
실제 8월 개인소비지출(PCE)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의 가처분 개인 소득(DPI)은 861억달러(0.4%), 개인 지출은 한 달 전보다 1292억달러(0.6%) 증가해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다. 이는 미국 소비가 여전히 견조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급격한 금리 인하가 단행된다면, 그 파급 효과는 높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아킬레스건이다.
트럼프가 강력한 관세 정책과 약달러를 가져가고자 함은 국채금리 상승 억제와 맞닿아 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국채금리는 자연스럽게 오를 수밖에 없다. 유럽에서 시작되고 있는 재정적자 우려에 미국까지 합세한다면 글로벌 시장의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현재 주식시장 고점 논란의 핵심은 명백히 인플레이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