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법] 김현지 국감 증인 공방…‘출석’이냐 ‘방탄’이냐
정치, 겉보다 중요한 건 작동 방식이다. 정치는 말과 행동으로 움직이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고유한 ‘문법’이 존재한다. 법과 제도의 언어, 권력의 계산, 대중의 심리, 미디어 전략과 정치 언어 등이 어떤 타이밍에 움직이며, 무엇을 감추고 드러내는지는 단순한 논쟁 너머의 작동 규칙을 따른다.
〈정치문법〉은 한국 정치의 핵심 이슈와 정국 전개를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정치 구조, 전략, 심리, 제도 작동 방식의 측면에서 분석해본다. 정치를 이해하고 싶다면, 정치의 문법부터 파악하라.
【투데이신문 박애경 발행인】 국정감사가 열리면 늘 정책과 제도, 예산이 쟁점이 돼야한다. 그러나 올해 국회 운영위원회 국감의 최대 화두는 ‘정책’이 아닌 일개 ‘사람’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의 증인 채택 여부가 연일 정국을 흔들고 있다.
총무비서관 시절에는 국회 출석이 관례였지만, 제1부속실장으로 보직이 바뀌면서 상황은 미묘해졌다. 야당은 “방탄 인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여당 내부에서도 “차라리 나가 의혹을 해소하자”는 목소리와 “불필요한 정쟁”이라는 신중론이 맞서고 있다.
김 실장 개인의 출석 여부가 대통령실의 투명성과 국회의 권한, 여야의 정치 전략을 모두 걸고 있는 셈이다. 단순한 증인 채택을 넘어 권력의 작용과 정치의 문법을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 되고 있다.
정쟁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김현지 실장
김현지 제1부속실장은 이재명 대통령과 1998년 성남시민모임 창립 시절부터 함께해온 최측근 인사다.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을 거쳐 최근 제1부속실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국정감사 증인 채택 여부가 정국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총무비서관은 전례상 국감에 출석해왔지만, 부속실장은 통상적으로 출석 대상에서 제외돼 왔다는 점에서 이번 보직 이동을 두고 논란이 커졌다.
특히 김 실장을 두고 ‘만사현통(모든 일은 김현지를 통해야 한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권력의 핵심에 있다는 인식이 여야를 막론하고 퍼져 있다. 야당은 이 표현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김현지 방탄’ 공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여당 역시 이를 방어하느라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국감 증인 채택 논의 과정에서 김 실장이 명단에서 빠지자 국민의힘이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채택 여부가 연기되면서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김 실장은 단순한 대통령실 참모가 아닌, 정국을 흔드는 정치적 상징으로 부상했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처음부터 국회가 정하면 따르겠다는 입장이었다”는 해명이 반복되고 있지만, 야당의 의혹 제기와 언론 보도가 맞물리며 여론의 관심은 오히려 증폭되는 상황이다. 결국 한 명의 참모 인사가 정국 갈등의 축으로 부각된 것은 대통령실과 집권여당이 안고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당, 출석 반대에서 ‘조건부 수용’으로
더불어민주당의 태도 변화는 이번 논란의 주요 변곡점이다. 초기에는 대통령 측근 보호와 불필요한 정쟁 확산 방지를 이유로 김 실장의 출석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출석을 막는 것이 곧 방탄’이라는 프레임에 갇힐 수 있어서 더 큰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언론 인터뷰에서 “100% 출석한다”고 확언하며 출석 불가 기류에 쐐기를 박았다.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야당이 국감 목표인 것처럼까지 한다면 본인이 나가겠다고 할 것 같다”며 여지를 남겼다. 이 같은 발언은 민주당이 출석을 ‘정치적 부담을 해소할 카드’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당내에서도 김 실장의 출석을 통해 의혹을 조기에 차단하는 것이 낫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는 ‘정쟁 회피’보다는 ‘정쟁 무력화’ 전략으로 전환하려는 흐름이다. 다만 조정식 의원 등 일부 인사들은 여전히 “굳이 출석할 필요가 없다”며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다.
이처럼 민주당 내부의 기류 변화는 단순히 증인 출석 여부를 넘어, 향후 국정감사의 전략적 기조와 맞닿아 있다. 출석을 허용하면 논란은 일시적으로 정리될 수 있으나, 국감장에서의 질문 공세가 새로운 파장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당은 ‘방어와 수용’ 사이에서 정치적 계산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야당, ‘만사현통’ 프레임으로 총공세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장을 정권 공세의 정점으로 삼고 있다. ‘방탄 인사’라는 프레임을 강조하며, 대통령실의 보직 변경을 국감 회피용 꼼수로 규정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감추면 감출수록 의혹이 커진다”고 직격했고, 장동혁 대표는 “총무비서관이 국감에 나오지 않은 적은 없다”며 전례를 근거로 공세를 이어갔다.
야당은 특히 ‘만사현통’이라는 언어를 적극 활용해 김 실장의 위상을 대통령의 권력 핵심과 직접 연결시키고 있다. 단순히 참모가 아닌 ‘실세 중의 실세’로 부각함으로써, 대통령의 책임론을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여기에 김 실장의 과거 발언과 사생활 관련 의혹을 끌어들이며 공세를 다층화하고 있다. 김혜경 씨 수행비서 사건 당시 ‘파일 삭제’ 발언, 불투명한 부동산 보유 논란, 대학 시절 인사 개입 의혹 등이 연이어 제기되며 논란이 확산됐다.
이러한 공세는 단순한 증인 채택 문제가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과 대통령실 운영 전반을 겨냥한 정치적 공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야당은 김 실장을 국감 무대에 세움으로써 대통령과 집권세력을 직접 타격하겠다는 전략적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 “적재적소 인사일 뿐”
대통령실은 야당의 방탄 프레임을 정면 반박하고 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과대망상적 주장”이라며 야당의 비판을 일축했고, 박상혁 원내부대표는 “보직 변경은 자연스러운 조직 재편 과정”이라 설명했다. 이는 정치적 의미를 희석시키고 행정적 언어로 전환하려는 방어 논리다.
대통령실은 이번 보직 이동을 단순히 ‘적재적소의 인사 배치’로 규정한다. 정권 출범 초기 불안정한 조직을 재정비하고, 김 실장의 경험을 대통령 보좌 업무에 집중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감 회피용 인사라는 주장은 억측이라는 입장이다.
또한 대통령실은 김 실장이 애초부터 “국회가 결정하면 따르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출석 논란이 불필요한 정치공방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러한 해명이 설득력을 얻기에는 역부족이다. 야당의 공격 프레임이 언론을 통해 확산되면서 국민 다수는 여전히 ‘꼼수 인사’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결국 대통령실의 대응은 의혹을 잠재우기보다는 ‘정쟁 프레임’을 강화하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문법으로 읽는 세 가지 프레임
첫째, 야당의 문법은 ‘출석 강제’를 통한 권력 타격이다. 김현지를 대통령의 실세로 규정하고 출석을 요구함으로써 정권 핵심을 직접 겨냥한다. 이는 단순한 증인 채택이 아닌, 권력 투명성과 도덕성을 시험하는 전략이다.
둘째, 여당의 문법은 ‘정쟁 차단’과 ‘출석 수용’ 사이의 줄타기다. 출석을 막으면 방탄 프레임이 강화되고, 허용하면 정쟁의 장이 될 수 있다. 민주당은 이 두 가지 위험 사이에서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해법을 찾고 있다.
셋째, 대통령실의 문법은 ‘행정 언어’를 통한 프레임 전환이다. 인사를 적재적소 배치로 규정하고, 국감 출석 여부를 제도의 문제로 한정하려 한다. 이는 정치적 논란을 기술적 언어로 무력화하려는 시도다.
이 세 가지 문법이 충돌하면서 김현지라는 한 개인의 출석 여부가 정권 운영, 국회 권한, 야당의 전략 모두를 가늠하는 정치적 상징으로 부상했다. 결국 이번 국감은 단순히 행정부 견제의 장이 아니라, 권력 언어와 정치 전략이 교차하는 전장으로 기능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