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명절, 변하는 의례와 남는 관계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긴 연휴가 끝나가고 있다. 2011년 주 5일 근무제도, 2021년 대체 휴일 제도가 확대 시행된 이후 2017년에 이어서 2025년에 개천절부터 추석을 거쳐 한글날까지 7일간의 연휴가 생겼다. 금요일에 재량 휴일이나 연차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10일의 연휴를 얻을 수 있었다.
긴 연휴에 추석이 포함된 상황에서 추석 문화에 대한 재조명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는 사람은 10명 중 4명 정도에 불과했다. 코로나에 따른 팬데믹 상황을 거친 2020년대부터 차례를 지내는 사람의 수가 빠르게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언론의 보도 양상도 조금 달라졌다. 1990년대, 2010년대만 해도 차례상 차리는 법을 소개하는 텔레비전 뉴스 보도나 프로그램의 코너가 존재했다. 심지어 차례상 상차림에 과도한 비용을 들이고 차린 음식을 다 먹지도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자, 유교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검소한 혹은 일상적인 상차림을 강조하는 내용의 보도와 코너도 많았다. 그런데 이번 추석에는 이런 보도나 방송 코너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참고로 차례와 제사는 조금 다르다. 정확히 얘기하면 제사 중 하나가 차례다. 그런데 제사는 기제사(忌祭祀)의 약자로, 망자(亡者)가 사망한 날 자정에 지내는 것이다. 그러나 차례는 설과 추석에 지내는 제사 중 하나인데, ‘차례(茶禮)’라는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차를 비롯한 간단한 음식을 올리는 의례다. 즉 명절 차례상이 소위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릴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물론 추석이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수확한 것들을 제사상에 올림으로써 한 해 농사가 잘 되게 해준 것을 감사하는 의미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차례상을 크게 차리는 전통이 그냥 생긴 것은 아니다. 또한 과거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 추석은 그나마 평범한 백성들이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이러한 맥락이 이어진 것이 음식을 많이 차린 차례상이지만, 현대 사회에서 음식 한 끼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음식을 차릴 필요가 없어졌다.
아울러 조선시대 이전까지 차례상에 차를 올렸지만, 성리학을 사상적 배경으로 삼았던 조선시대 이후 차는 술로 대체됐다. 그런데 과거 술은 곡식으로 빚었고, 끼니를 때울 곡식도 부족했던 상황에서 술을 마음껏 마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농사 종료 직후 혹은 농사 시작 직전인 명절에 차례나 마을 의례 이후 먹는 것이 취하도록 술을 마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였다. ‘한국인들이 술을 많이 마시고, 이것이 문제다.’라는 식의 일반화는 구한말 술을 즐기지 않던 개신교 선교사와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을 비하하려는 일본인 관리와 학자들의 평가였다. 이러한 평가가 해방 이후 술의 제조가 쉬워지고 경제 상황이 좋아지면서 음주 횟수가 늘어나는 상황과 맞물린 것이다.
다시 차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핵심적인 산업이 농업에서 공업과 3차산업으로 바뀌고, 인구가 수도권으로 집중된 이후 명절은 모든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농업 중심 사회에서 가족들은 모여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산업 구조가 바뀌고 인구의 수도권 집중이 강화되면서 빠른 핵가족화가 진행됐고, 이것으로 인해 명절은 가족들이 만날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기회였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핵가족화를 넘어서, 결혼하지 않고 부모와 떨어져서 살거나 독립한 자식들과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 구성하는 1인가구의 수가 늘어났고 이혼률도 증가했다. 그 결과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는 양상은 더욱 줄어들었다. 여기에 해외여행이 자율화되고 사람들의 삶이 윤택해지면서 명절과 연휴에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수도 늘어났다.
이러한 과정에서 재미있는 현상도 나타났다. 명절에 일가친척이 모였을 때 듣기 싫은 잔소리에 가격을 부과하는 ‘잔소리 메뉴판’이 생겼고, 해외에서 현지 음식으로 간단히 차례상을 차리는 모습도 나타났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조상이 외국까지 나가서 제사상을 받아 드실 수 있냐?”라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도 생겼다.
사회가 변하면서 명절과 연휴를 보내는 방식도 변화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가족의 붕괴가 아니라 문화의 변화다. 일부 이러한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것은 되레 자신을 고립시키고 더욱 외로운 명절을 보내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차례를 지내지 않거나, 연휴에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 가족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 원인이 되진 않는다. 어쩌면 한국 사회의 ‘가족의 강조’는 ‘근대 이전 가족의 개념’을 전제한 것일 수 있다. 사회와 문화는 변동할 수 있지만, 우리가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점은 변화하지 않는다. 변화된 사회와 문화에 맞는 가족의 연대감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