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N 인터뷰] 10년 만의 첫 악역 장윤주 “‘가선영’의 시작, 모델 시절부터”
[인터뷰] <착한 여자 부세미> 종영 기념 장윤주 배우 인터뷰 가선영, 돈과 권력보다 복수심에 인생을 태운 불쌍한 캐릭터 20대부터 연결된 감독님과의 인연, 악역 캐스팅으로 이어져 완벽주의자 캐릭터...헤어·걸음걸이·패션 등에 신경 많이 써 배우로서의 존재감이 강점...모델 시절의 경험이 밑거름 돼
【투데이신문 전세라 기자】드라마 <착한 여자 부세미>에서 악역으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던 모델이자 배우 장윤주가 종영 소감을 밝혔다.
<착한 여자 부세미>는 흙수저 출신의 여성 경호원이 인생역전을 꿈꾸며 시한부 재벌 회장과 계약 결혼을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경호원 ‘김영란’과 유치원 교사 ‘부세미’의 이중 신분을 넘나들며 발생하는 예측 불가능한 전개와 전여빈·진영·서현우·장윤주 등 화려한 배우진의 몰입감 있는 연기로 입소문을 타며 2.4%로 시작한 시청률은 지난 종영 회차에서 7.1%를 기록했다. 이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제작한 ENA 드라마 중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성과다.
특히 장윤주는 극 중 재벌가 회장의 의붓딸이자 연극영화과 교수인 ‘가선영’ 역을 맡아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욕망을 위해 타인의 감정까지 이용하는 사이코패스적 면모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첫 악역 도전임에도 ‘10년 차’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시 한번 증명해냈다.
투데이신문은 모델과 배우,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 장윤주를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인터뷰 자리에서 직접 만나봤다.
Q. 지난 4일 <착한 여자 부세미>가 흥행리에 종영됐는데. 기분이 어떤가.
‘가선영’이라는 인물에 대한 애정이 많이 있었기에 드라마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것 같다. 촬영이 끝나고 나서도 다들 ‘우리 작품 대박이다’라며 축하하는 등 현장과 단합 분위기가 좋았다. 모두가 서로를 응원하고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다들 ‘우리 포상휴가 어디로 갈까’하는 이야기도 나왔는데 속으로는 ‘너무 들뜨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진짜로 잘 돼서 너무 신기하고 감사했다.
Q. 박유영 감독과의 작업이 특별했다고 들었다. 감독에게 들은 구체적 조언이나 지시가 있나.
감독님은 처음부터 ‘가선영’ 역으로 나를 염두에 두고 계셨다고 한다. 박유영 감독님과의 인연은 내가 모델로 활동하던 20대 시절부터 이어져 왔다. 당시 감독님이 패션쇼 영상 일을 하고 계셨을 때 무대에 선 내 모습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작년에 개봉한 <최소한의 선의>라는 영화를 보시고 ‘가선영’이라는 캐릭터를 나에게 맡기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다고 들었다. <착한 여자 부세미> 제작사나 매체 쪽에서는 캐스팅에 의아해했지만, 감독님이 끝까지 설득하셨다고 들었다. 나 역시도 처음 감독님한테 역할 제안을 받았을 때 확신이 크지 않았지만 ‘같이 해보자’라며 용기를 주셨다.
감독님은 여러 영화를 레퍼런스로 제시하시고 캐릭터의 전사와 심리 구조를 직접 글로 정리해 보내주셨다. 이런 감독님의 모습을 보며 확신이 생겼다. 그만큼 감독님은 세심하게 나를 챙겨주셨다.
촬영할 때에는 몰랐지만 완성된 드라마를 보니 선영이라는 캐릭터를 향한 감독님의 애정을 더욱 느낄 수 있었다. 패션쇼에서도 음악이 바뀌면 무대가 전환되듯 드라마에서도 ‘가선영’이 등장할 때마다 음악이 변주됐다. 그런 장면들을 보며 마치 또 하나의 무대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연출적으로도 많이 신경 써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Q. <착한 여자 부세미> 제작발표회에서 가선영 캐릭터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에 촬영이 끝나고 울었다고 고백했는데. ‘가선영’ 캐릭터의 어떠한 점에 연민이 생겼나.
‘가선영’은 어린 시절부터 불행이 이어진 인물로 아버지는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어머니는 부유했지만 따뜻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부모가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따뜻함이 사라진 세상에 새아버지가 등장했다. 어린 나이에 새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망가뜨린 사람’으로 보였고 그때부터 사랑, 행복보다는 ‘복수’라는 감정이 인생의 중심이 돼버린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캐릭터의 배경과 감정을 이해하니 점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는 ‘가선영’이 돈이나 권력을 위해 움직인 거 아니냐고 하는데 나는 ‘복수’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진짜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 그의 외로움과 슬픔이 전해져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왔던 것 같다.
Q. 캐릭터에서 가장 신경 쓰며 준비했던 부분이 있었나. 준비한 것을 보여줬을 때의 현장 반응은 어땠나.
‘가선영’은 완벽을 추구하지만, 그 안에 불안과 외로움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를 표현하기 위해 외적인 부분에 많은 신경을 썼다. 그중에서도 헤어 연출에 고민을 많이 했다. 집요하고 예민한 성격을 보여주고 싶어서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김주영’의 스타일링도 참고했다. 특히 ‘더듬이 머리’라고 불리는 잔머리나 묶은 머리의 위치 등을 촬영 중에도 세심하게 다듬었다.
머리 외에도 걸음걸이나 시선, 옆모습까지 단정하면서도 차가운 인상을 줄 수 있도록 연습했다. 촬영에 사용된 스카프나 액세서리 등은 직접 구매해 캐릭터의 외형적인 이미지를 구현하려고 노력했다. 패션모델로서 쌓아온 감각이 이러한 디테일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다행히 현장 반응이나 시청자들의 반응도 좋아서 감사하다.
Q. 벌써 연기 경력 10년 차인데. 심정이 어떤가.
모델로 활동하던 시절에도 영화 출연 제안이 종종 들어오곤 했다. 그러나 그 당시의 나에게는 모델 일이 내 전부였고 다른 분야에 도전할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 첫 도전 작품인 영화 <베테랑>은 연기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즐겁게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아 함께하게 된 작품이었다. 본격적인 ‘배우의 시작’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경험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 영화 <세자매>를 하게 되면서 비로소 ‘배우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식적으로 배우 경력 10년 차지만 중고 신입 같은 마음으로 연기에 임하고 있다.
Q. 배우로서 본인이 생각하는 강점 혹은 매력은 무엇인지.
드라마에 함께 출연하는 문성근 선배님께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존재감이 있다’라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다. 모든 배우가 그런 존재감을 타고나는 것은 아니기에 이것이 내가 배우로서 가진 가장 큰 힘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는 15~20초 안에 관객의 시선을 압도해야 하는 모델의 직업을 해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기에 스며든 것 같다.
또한 패션쇼를 하듯 연기에 몰입하면 카메라 앞에서도 폭발적으로 에너지가 살아난다. 반대로 화보 촬영처럼 감정의 뉘앙스와 분위기를 세밀하게 조절할 때도 있다. 그런 점에서 모델로 쌓아온 감각이 배우로서 표현력에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 모델로서 쌓아왔던 좋은 에너지를 100% 활용하지 못해 아쉬움을 느꼈는데 ‘가선영’ 캐릭터를 통해 조금은 더 발산하지 않았나 싶다.
Q. 드라마에서 함께하는 전여빈 배우가 ‘(장윤주가) 선배 배우임에도 역할에 대한 긴장되는 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내 주신 것이 든든하다’라고 전했는데. 평소에도 배역에 있어 긴장감을 가지는 편인지, 아니면 악역 등의 첫 시도에 긴장이 됐던 것인지.
원래 걱정이 많은 편 같다. 내 역할 외에도 함께 호흡하게 될 캐릭터에 대해 감독님께도 궁금해하고 걱정하며 여러 번 감독님을 귀찮게 했다. 극 중 동생 역할로 등장하는 이창민 배우에 대해서도 만나기 전부터 출연했던 작품을 찾아보며 연기 스타일을 미리 파악했다. 10화쯤에는 갑자기 연기에 대한 불안감과 걱정이 들어 전여빈 배우에게 전화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Q. 종영 이후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가선영’이 불쌍하게 여겨져서 울음이 났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광고 촬영 등의 바쁜 스케줄로 감정이 자연스럽게 희석됐다. 가족과 시간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도 애정과 연민이 컸던 만큼 문득문득 ‘가선영’이라는 캐릭터가 생각날 것 같다.
Q.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나.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 몸을 쓰는 액션 장르의 기회가 있다면 해보고 싶다. 무대 위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에너지가 있어서 무대 연기에도 문을 열어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