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법] ‘재판중지법’ 멈춘 뒤, 대통령실-민주당 파열음 징후
정치, 겉보다 중요한 건 작동 방식이다. 정치는 말과 행동으로 움직이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고유한 ‘문법’이 존재한다. 법과 제도의 언어, 권력의 계산, 대중의 심리, 미디어 전략과 정치 언어 등이 어떤 타이밍에 움직이며, 무엇을 감추고 드러내는지는 단순한 논쟁 너머의 작동 규칙을 따른다.
〈정치문법〉은 한국 정치의 핵심 이슈와 정국 전개를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정치 구조, 전략, 심리, 제도 작동 방식의 측면에서 분석해본다. 정치를 이해하고 싶다면, 정치의 문법부터 파악하라.
【투데이신문 박애경 발행인】현직 대통령 형사재판을 중지하는 ‘재판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여당이 재추진하자 대통령실이 이례적으로 공개 제동을 걸었고, 지도부는 하루 만에 철회했다. 추진 후 철회라는 급선회는 사안의 법리 이전에 당·정·대(당–정부–대통령실) 조율 시스템의 이음매를 드러냈다. 외교·경제 어젠다(경주 APEC 성과 확산)와 별개로, 여당 내부의 신호관리 실패와 대통령실의 최종 조율이 동시에 진행되는 ‘불협화음의 구조’가 나타났다. 이는 일시적 해프닝이 아니라, 향후 민감한 이슈마다 반복될 수 있는 갈등내재의 징후다.
공개 제동의 의미, 구조적 내재 갈등 예고?
대통령실이 “현직 대통령 재판은 원래 중지된다”면서 “사법개혁안 처리 대상에서 재판중지법을 제외해 달라”고 공개 발언한 것은, 통상 비공개 창구에서 정리하던 메시지를 기자회견·공식 논평 형식으로 끌어올린 이례적인 장면이었다. 대통령의 사법 이슈가 개인의 사건과 맞닿아 있다는 초민감성을 감안하면, 이번 대통령실 ‘공개 발화’는 ‘정무 컨트롤타워의 실재’를 확인시키는 상징 행위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곧바로 ‘철회’로 선회하면서, 대중에게 각인된 것은 법안의 찬반 논거가 아니라 권력 라인의 우선순위였다. 추진 드라이브를 건 주체보다 최종 제동을 건 주체가 더 강하게 기억되고, 이는 이후 민감 이슈에서 대통령실의 사전 합의 없이는 대외적 발화가 어려워졌음을 예고한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을 정쟁의 중심에 끌어들이지 말라”는 취지로 메시지를 냈다. 이 언어는 절제돼 있었지만 수신자는 분명했다. 메시지의 표적은 ‘여당 지도부’였고, 결과는 ‘용산의 브레이크’가 당의 가속페달보다 먼저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결과적으로 이번 공개 제동은 ‘일시적 갈등’보다 ‘구조적 내재 갈등’을 비춘다. 사법·정쟁 이슈는 대통령실이 최종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는 사실이 여당 지도부의 향후 의제 선점에 지속적 제약을 예고한다.
‘지도부–원내–대통령실’, 세 갈래로 엇박자
민주당 원내 핵심은 “원내에서 (재판중지법) 추진 및 통과 시점 논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즉, 지도부 차원의 메시지가 원내 전략 회의체에서 충분히 논의를 거치지 않은 채 외부로 분출됐음을 방증한다. 이는 ‘지도부-원내-대통령실’이 세 갈래로 엇박자를 내었음을 암시한다.
같은 시점 원내 일각에서 “상황에 따라 필요하면 재추진”이라는 조건부 가능성을 열어뒀다. 동일한 이슈에 ‘철회’와 ‘조건부 재개’라는 메시지가 병존하면 외부에서는 엇박자로, 내부에서는 기준의 모호성으로 인지한다. 메시지의 다중화는 정무적 자율성의 증거가 아니라 조율 실패의 징표로 인식될 수 있다.
정리하면, 지도부의 추진 신호—원내의 사후 정합화—대통령실의 최종 제동이라는 삼단 구조가 실시간 언론에 노출되면서, 당·정·대 회로의 어긋남이 가시화됐다. 이런 구조가 유지되는 한, 다음 민감 이슈에서도 동일한 패턴으로 재연될 개연성이 높다.
‘자기정치’ 의심과 메시지 관리의 균열
대통령실의 제동 직후 언론과 정치권에선 곧장 ‘명–청(이재명–정청래) 갈등’ 프레임이 소환됐다. 민주당 지도부의 추진을 ‘자기정치’로 해석하는 시선이 많을수록, 법안의 명분·내용은 희석되고 리더십 간 신뢰 문제가 부각된다.
정치적 신뢰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축적된다. ‘보류→재추진, 시사→철회’로 나타난 이번 장면은 사람 중심 해석을 호출한다. 사람 중심의 해석은 과정의 진동이 크고 급할수록 ‘자기정치(개인의 동기)’로 의심받는다.
상대 진영인 국민의힘의 프레이밍도 이 지점을 파고든다. 야당의 ‘맞춤형 입법’, ‘우회법’ 공세가 힘을 얻는 것은 여당 내부 메시지가 일관성에서 균열이 감지될 때다. 결국 이번 장면은 법조·정책 논변이 아니라 ‘메시지 관리 기술’의 정치문법이었다.
부산시당 컷오프 파동으로 내홍 조짐
때마침 민주당 현 지도부와 당내 친명계 간의 균열도 감지됐다. 부산시당위원장 경선 ‘컷오프’를 둘러싸고 친명계 인사가 공개회견으로 현 지도부를 정면 비판한 것이다. 정청래 당대표를 향해 ‘결자해지’를 요구하면서 내부 균열 장면이 이슈로 부상했다.
정청래 대표가 “내가 부족해서”라며 자세를 낮췄지만, 공천·경선 관리라는 조직 신뢰의 균열은 단기간에 봉합되기 어렵다. 친명계의 문제 제기는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말라”는 경고성 성격을 띤다. 이는 향후 공천 주도권으로 연결될 수 있고, 그럴수록 지도부-원내-대통령실의 조율이 예민해질 수 있다.
내부 잡음이 커질수록, 외부에서 공격하는 갈등 프레임은 더 강하게 울린다. 그리고 울림의 반향은 다시 내부로 메아리쳐 내홍을 증폭시킨다. 따라서 향후 공천 시즌이 본격화될수록, 지도부–원내–대통령실 간 조율에 거친 파열음이 발생할 수 있다.
APEC 후속정책 성과, ‘내부 잡음’에 좌우
민주당은 APEC 성과를 제도·예산으로 연결하기 위해 ‘성과 확산 및 한미관세협상 후속지원 위원회’를 구성하고 ‘대미투자특별법’을 11월에 처리할 것을 공언했다. 그러나 재판중지법 논란이 헤드라인을 점유하면서 정책 스토리의 전달력은 약화됐다.
원래 외교·경제 후속조치는 여야 협치의 접점을 넓힐 수 있는 ‘중성적 어젠다’다. 하지만 당정 불협화음이 부각될수록, 야당의 공세 프레임은 정책을 다시 정치화한다. 국민의힘은 재판중지법을 두고 ‘이재명 맞춤형 입법’이라는 프레임으로 역공을 펼치며 정치적 전략을 펼친다. 이처럼 정책의 중성적 어젠다가 잡음의 밀도에 비례해 소실될 수 있다.
정치적 잡음이 줄지 않으면, 정책에 관한 실무·후속조치는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대중은 정책 어젠다보다 ‘갈등 드라마’에 더 관심을 갖는다. 따라서 당정 간 불협화음 관리가 곧 정책 성과의 전제 조건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결국 후속입법의 성패는 기술적 완성도보다 ‘내부 잡음’에 의해 좌우된다.
재판중지법에 관한 이재명 대통령의 공개 제동과 민주당의 신속 철회가 교차하는 이번 장면들에서 ‘당정 시스템 균열’, ‘발화 시점·검증 절차·최종 조율 부재’라는 불협화음의 문법이 존재한다. 이 문법은 곧 신뢰로 직결된다. 정치에서 신뢰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산물이다. 같은 결론이라도 절차가 다르면 신뢰의 질은 달라진다. 갈등내재를 인정하고, 갈등을 신속하게 해결해야 외부 공세를 피할 수 있다. APEC에서의 외교·경제 성과를 돋보이게 하고, 지속적으로 끌고 가는 비결은 ‘불협화음’ 소동이 아니라 ‘단일대오’로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