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오세훈 ‘종묘 앞 재개발’ 공방…지방선거 전초전일까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김민석 국무총리와 오세훈 서울시장이 세계문화유산인 종묘(宗廟) 맞은편의 세운4구역 부지에 추진 중인 고층 재개발 사업을 두고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김 총리는 이례적으로 직접 현장을 찾아 점검에 나서기도 했는데,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차기 서울시장 선거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 시장은 김 총리를 향해 공개 토론을 하자고 제안한 데 이어 “정치적 계산으로 지방자치단체를 흔들면 국민 심판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며 경고했다.
오 시장은 12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시·도 광역단체장 연석회의’에 참석해 “여당은 물론이고 국무총리와 장관까지 나서서 서울시를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작 공조가 필요한 주택 결정 과정에는 거리낌 없이 시를 패싱했다. 많은 국민이 매서운 눈으로 권력의 무도한 행태를 지켜보고 있다”며 “국민이 권력의 오만을 오랫동안 용납한 사례는 역사상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을 이재명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을 향한 여권의 공세에 대해 오 시장은 “‘오세훈 죽이기’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며 “정치적 계산으로 지방자치단체를 흔들면 국민 심판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꼬집었다.
앞서 지난달 30일 서울시는 종로변의 최고 높이 55m에서 98.7m로, 청계천변은 71.9m에서 141.9m로 상향하는 내용의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을 고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종묘 맞은편인 ‘세운 4구역’에는 최고 141.9m 높이의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세운4구역 재개발 계획을 두고 경관을 해치는 등 종묘가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졌다. 이에 김 총리가 항의의 뜻을 담아 서울 종로구 종묘를 찾았다.
지난 10일 김 총리는 국립중앙박물관 유홍준 관장, 국가유산청 허민 청장, 서울대 도시계획학과 김경민 교수 등과 함께 종묘 현장을 둘러봤다. 이 같은 행보는 최근 대법원이 문화재 주변 개발 제한을 완화한 서울시의회 조례를 인정하고 이후 재개발을 추진하자 여론전을 통해 제동을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총리는 재개발 추진으로 인한 종묘의 세계유산 가치 훼손 우려를 표명하면서 “문화냐, 경제냐의 문제가 아니라 K-문화, K-관광이 부흥하는 시점에서 자칫 문화와 경제, 미래 모두를 망칠 수 있는 결정인만큼 정부가 책임감을 가지고 신중하게 임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종묘는 서울시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훼손할 수 없는 국가적 자산으로, 정치적 논쟁을 넘어 모든 세대가 참여하는 국민적 공론화의 과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시 한강버스를 거론하며 오 시장을 저격하기도 했다. 김 총리는 같은 날 자신의 SNS를 통해 “상상도 못했던 김건희씨의 망동이 드러나더니 이제는 서울시가 코앞에 초고층 개발을 하겠다고 한다”며 “민족적 자긍심이자 상징인 세계문화유산과 그 주변 개발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개발론과 보존론의 대립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한강버스 추진과정에서 물의를 빚은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오 시장은 “중앙정부가 나서 일방적으로 서울시를 매도하고 있어 유감”이라고 맞불을 놨다.
같은 날 오 시장은 SNS에 김 총리를 향해 “가신 김에 종묘만 보고 올 게 아니라 세운상가 일대를 모두 둘러보시기를 권한다”며 “수도 서울의 중심이라 할 종로가 현재 어떤 모습인지, 이대로 방치하는 것이 과연 종묘를 위한 일인지 냉정한 눈으로 봐주시길 요청한다”고 했다.
이어 “서울의 중심인 종로의 미관이 바뀌고 도시의 새로운 활력이 생긴다. K-컬처와 시너지 효과를 내며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자신한다”며 “정작 이 내용은 무시한 채, 중앙정부가 나서서 일방적으로 서울시를 매도하고 있어 유감”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오 시장은 김 총리에게 공개토론을 통해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함께 서울의 미래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의 공방은 겉으로 보면 ‘세계유산 보존’과 ‘도시재생’의 가치 충돌처럼 보이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사실상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펼쳐지는 ‘전초전’으로 보고 있는 분위기다. 여당이나 관계 부처가 아닌 총리가 이례적으로 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을 겨냥한 강도 높은 공세를 펼친 것이 차기 정치 행보를 염두에 둔 행보일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간 김 총리는 민주당 당대표 도전이 유력시됐으나 최근에는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로도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다만 김 총리는 최근 MBC 라디오에 출연해 지방선거 및 당대표 출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지금은 맡은 일에 충실할 뿐”이라며 일축한 바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발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 오 시장이 먼저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세운4구역 토지주들은 오 시장을 지지하고 있는 상태다. 이들은 오랜 기간 재개발 지연으로 재산권 침해를 호소해 왔다고 주장하며 “국무총리는 사실을 왜곡해 국민들을 선동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종로구청 역시 “본 사업은 종묘의 가치와 정체성을 지키고 도시 미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종로의 역사성을 보호하는 사업”이라며 서울시에 힘을 보탰다.
이른바 ‘종묘대전’은 중앙정부와 서울시 간의 갈등, 문화유산 보존과 주민 재산권·생존권이 가 맞부딪히는 복합적 갈등으로 확대된 양상이다. 오 시장은 종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도심을 활성화할 수 있다며 강한 추진 의지를 드러내고 있으며 정부 또한 이에 맞서 법적·행정적 대응을 예고하고 있어 장기적인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