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시연금 7년 소송’ 이긴 보험사…감독리스크는 ‘현재진행형’
금감원 첫 소송, 7년 만에 패소…보험사 1조원 부담 벗어 법원 판단은 끝났지만…금감원, 불완전판매 여부 전면 점검 점검 결과 따라 최대 수천억원 과징금 가능성…업계 ‘긴장’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금융감독원이 생명보험사를 상대로 진행한 즉시연금 소송이 7년 만에 대법원 판결로 마무리됐다. 법원은 보험사 손을 들어주며 계약 효력을 인정했지만, 상품 구조와 설명 절차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남았다. 금감원은 패소 이후에도 불완전판매 여부를 다시 점검하며 감독 역할을 재정비하고 있는 모양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대법원 1·2부는 삼성생명, 미래에셋생명, 동양생명 고객들이 제기한 즉시연금 미지급금 소송 상고심에서 보험사 승소 취지로 판결했다. 법원은 “약관상 공제 항목이 명시돼 있는 이상 계약 효력에는 문제가 없다”며 “복잡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 불이익을 입었다고 볼 근거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다만 대법원은 “보험사가 상품 구조를 소비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지는 못한 점은 인정된다”고 부연했다. 계약은 유효하지만, 설명의무에 관한 개선 여지는 남겨둔 것이다.
이번 판결로 삼성생명·한화생명·교보생명 등 주요 생보사들이 떠안았던 약 1조원 규모의 미지급금 부담은 해소됐다. 그러나 금감원은 즉시연금의 판매 경위와 설명 과정 전반을 다시 점검하기로 했다. 감독당국의 재검토는 ‘패소 이후의 점검’이지만, 사실상 ‘감독 리스크의 연장선’으로도 해석된다.
금감원 첫 소송 ‘패소’…불완전판매 여부는 별도 점검
2018년 금감원은 즉시연금 상품의 공제 구조가 명확히 고지되지 않았다고 보고 보험금 환급을 권고했다. 그러나 보험사들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7년에 걸친 소송이 시작됐다. 당시 금감원은 ‘소송지원제도’를 활용해 민원인 측에 법률 자문과 자료를 제공하며 사실상 대리 소송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금감원은 법원에서 패했지만, 감독 역할은 현재진행형이다. 금감원은 삼성·미래에셋·동양생명 등 주요 생보사를 대상으로 판매 단계별 설명 절차와 내부통제 시스템을 점검 중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법원 판단이 계약의 효력을 기준으로 했다면, 감독은 소비자 이해와 설명 적정성이라는 다른 축을 살펴보는 것”이라며 “제도적 개선 방향을 검토하는 과정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이번 점검은 2010년대 초부터 판매된 즉시연금 상품 전반에 걸친 것으로, 누적 판매액은 약 10조원 규모다. 점검 결과에 따라 최종적으로 과징금이 부과된다면 그 규모가 수천억원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업계 전망도 나온다.
업계 “중복 감독 부담”…근본적 판매문화 개선 주장도
보험업계는 법원의 판단 이후 다시 점검이 시작된 데 대해 “감독의 방향이 반복된다”며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즉시연금은 출시 초기부터 수시검사와 분쟁조정이 여러 차례 이뤄진 사안”이라며 “이미 점검된 내용이 다시 반복된다면 현장에서는 피로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 내부에서도 이번 판결을 단순한 ‘면죄부’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법적으로는 유효하지만, 소비자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상품구조가 반복된다면 결국 신뢰의 문제로 이어진다”며 “설명 책임과 상품 투명성 강화는 산업 차원의 과제”라고 했다.
특히 보험사들은 금감원의 후속 조치가 단순 제재를 넘어 근본적인 ‘판매문화 개선’ 중심으로 이뤄지길 바라는 분위기다. ‘불완전판매’라는 용어 대신 ‘소비자 이해도 점검’이라는 프레임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시연금은 가입자가 목돈을 일시 납입하고 공시이율로 적립한 뒤, 다음 달부터 연금을 지급받는 구조다. 문제가 된 ‘상속형 즉시연금’은 사업비 공제 구조가 복잡해 소비자 민원이 이어졌던 상품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계약 효력은 유지하되, 설명 과정의 부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법과 감독의 역할 차이를 드러내며, 향후 제도 개선의 방향을 제시했다고 분석한다.
한 보험학 전문가는 “법과 감독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된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단순한 분쟁 종결이 아니라, 금융소비자보호 제도의 한계를 드러낸 사례”라며 “복잡한 상품 구조를 개선하고, 소비자가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설명 절차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한 금융학과 교수 또한 “즉시연금처럼 구조가 복잡한 상품은 법원이 계약 효력을 인정하더라도 감독당국은 판매 단계의 설명력을 평가할 수밖에 없다”며 “감독 체계가 단기 제재보다는 사전 예방 중심으로 바뀌어야 제도의 실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