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법] 대장동 1심 항소포기와 주어 실종의 정치

2025-11-13     박애경 발행인

정치, 겉보다 중요한 건 작동 방식이다. 정치는 말과 행동으로 움직이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고유한 ‘문법’이 존재한다. 법과 제도의 언어, 권력의 계산, 대중의 심리, 미디어 전략과 정치 언어 등이 어떤 타이밍에 움직이며, 무엇을 감추고 드러내는지는 단순한 논쟁 너머의 작동 규칙을 따른다.

〈정치문법〉은 한국 정치의 핵심 이슈와 정국 전개를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정치 구조, 전략, 심리, 제도 작동 방식의 측면에서 분석해본다. 정치를 이해하고 싶다면, 정치의 문법부터 파악하라.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를 두고 검찰 조직 내부에서 반발이 이어지고 있는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애경 발행인】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포기하면서 검찰 조직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단순히 한 사건에 대한 상소 여부를 두고 벌어진 논란이 아니다. 검찰, 법무부, 대통령실이라는 권력 삼각지대에서 책임의 주어를 둘러싼 ‘정치문법’이 뒤엉킨 탓이다. 항소포기라는 행정적 선택이 조직의 정당성과 정치적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결정 과정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항소 포기 결정의 전후 맥락에는, 과연 누구의 판단이었는지에 대한 분명한 설명이 없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검찰을 지키기 위한 정무적 판단이었다”고 했지만, 그 판단이 과연 자율적이었는지, 아니면 외부의 기대와 압박에 의한 결과였는지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압력, 외압, 조율, 협의라는 단어들은 결국 ‘책임의 주어’를 불명확하게 한다. 이 사태는 단지 법리와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책임의 언어 구조에 대한 문제다.

검찰의 ‘정무적 판단’, 법무부의 ‘신중 요청’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신중히 판단해달라는 의견만 전달했다”고 말했다. 동시에 “지침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책임을 피하는 자세를 취했다. 이진수(연수원 29기) 법무부 차관 역시 “사전 조율이고 협의 과정이지 수사지휘권 행사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노만석 대행이 10일 대검 과장들과의 비공개 면담자리에서 “이 차관이 몇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는데, 선택지 모두 항소포기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고 밝혀 법무부의 개입이 단순한 의견 개진이었는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결국 검찰은 이를 받아들여 항소를 포기했지만, 사후에 드러난 검찰 내부의 격렬한 반발은 이 결정이 진정한 ‘검찰의 판단’이었는지를 되묻게 한다.

정 장관은 “지침은 없었다”는 표현을 반복하면서 책임을 피했지만, 동시에 “여러 사정을 고려해 신중히 판단하라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했다. 이는 명확한 지시는 아니지만, 그 의도가 간접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수준의 ‘정치적 신호’였다.

이러한 발언들은 모두 ‘책임’의 소재를 애매하게 만들고 있다. ‘나는 명령하지 않았다’는 언어는 실상 ‘나는 개입하지 않았다’를 보장하지 않는다. 검찰은 판단의 주체가 되었지만, 동시에 법무부와 대통령실을 의식한 결정이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이는 ‘정무적 판단’이라는 표현의 역설적 모순을 보여준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조직 내 반발과 노만석의 ‘자의적 사퇴’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검찰 내부의 거센 반발 속에서 12일 사의를 표명했다. 검찰 연구관, 대검 부장, 평검사, 교육기관 교수들까지 일제히 입장을 내며 “설명과 책임을 다하라”고 압박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노 대행은 “내가 빠져줘야 조직이 안정된다”는 판단 하에 사의를 선택했다.

그는 “비굴한 선택이 아니었고, 나름 검찰을 지키려 한 행동”이라며 항소 포기 결정의 정무적 판단을 인정했다. 또한 “현 정권과의 조율이 쉽지 않았다”, “전 정권의 기소가 현 정권의 문제로 변질됐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퇴 직전 “내가 빠져줘야 조직이 안정된다”고도 했다. 그의 말은 단지 개인적 소회에 머무르지 않는다. 검찰이 더 이상 독립적인 판단만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구조 속에 있다는 고백으로도 읽힌다.

그러나 노 대행이 ‘자의적 사퇴’를 강조할수록, 결정의 자율성은 의심받는다. 만약 그 결정이 본인의 판단이라면, 그로 인해 조직 전체가 동요한 책임 또한 온전히 그의 몫이다. 반대로 그 결정이 외부의 압력에 따른 것이라면, 자의적 사퇴는 또 다른 형식의 희생양 만들기에 지나지 않는다.

장동혁 국민의힘 당대표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앞 중앙계단에서 열린 대장동 일당 7400억 국고 환수 및 검찰 항소포기 외압 규탄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정치권, 진실보다 유리한 해석으로

정치권은 이 사태를 본격적으로 정치화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의 항명’이라고 했고, 국민의힘은 ‘정권의 외압’이라며 연일 치열한 수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번 이슈(대장동 개발비리 1심 항소 포기)에 관한 국정조사를 두고도 법사위 소관인지, 특위 구성이 필요한지를 놓고 이견만 커졌다. 이는 사건의 본질보다는 누가 이 프레임을 주도해 정치적 유리한 위치를 점할지를 놓고 벌이는 언어의 싸움이다.

국민의힘은 항소 포기를 ‘대통령실 개입 의혹’으로 확대했고, 민주당은 이를 ‘조작기소’ 및 ‘검찰항명’으로 몰고 갔다. 여기서도 공통점은 있다. 모두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각자의 해석에 유리한 정치적 구조를 강화하려 한다는 점이다. 결국 진실 규명은 뒷전이고, 정치적 이득을 위한 ‘해석 전쟁’이 치열하다.

단독 국정조사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사건의 실체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검찰 개혁이라는 구조적 의제조차, 이번 사태를 둘러싼 정파적 언어 속에 묻혀버리고 있는 것이다. 국정조사가 그저 정쟁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은 여기에 있다.

‘정치화된 검찰’과 ‘사법화된 정치’ 사이

이번 사태는 단지 검찰의 내부 결정 문제가 아니다. 검찰은 정치를 하고, 정치는 사법의 언어로 말하고 있다. 정치화된 검찰과 사법화된 정치가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면서 점점 ‘책임 없음의 정치’로 흘러간다.

항소 포기 결정은 그 누구도 전면에 나서 책임지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모두가 개입한 전형적인 ‘책임 분산’의 정치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검찰 조직의 동요, 정권과 검찰 간의 불신, 정치권의 극단적 대립으로 나타났다. 언어는 명확해야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언어는 회피와 애매함의 도구로 활용됐다.

검찰 개혁이라는 담론은 매번 ‘적당한 희생자’를 만들어내고 끝났다. 정권은 늘 ‘검찰 길들이기’를 시도했고, 검찰은 이를 저항의 명분으로 삼았다. 이번 노만석 대행의 사퇴 역시 그런 되풀이의 일부일 뿐이다. 정치와 사법의 경계가 이렇게까지 흐려졌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말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에 대한 정직한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