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N 현장] 서울시 ‘용산정비창 개발’ 논란...시민사회 “공공성 우선해야” 재검토 요구
[현장취재] 용산정비창 부지 매각 철회 촉구 기자회견 서울시·코레일 ‘국제업무지구’ 추진...2030년 완공 목표 공대위 “개발 이익의 사유화 멈추고 사업 재검토해야” 부동산 투기 유발·주택 가격 상승·불균형 심화 우려도 매각 중단 지시에도...코레일 “‘분양’이므로 관련 없어”
【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서울시가 용산정비창 부지를 민간 매각 중심의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려 하자, 주거·빈곤·노동 등 시민사회단체가 공공성 훼손과 주거 불평등 심화를 우려하며 사업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섰다.
용산정비창 개발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18일 오전 10시 용산역과 드래곤시티 호텔 연결통로에서 서울시의 용산정비창 부지 매각 계획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실과 국무총리실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용산역 뒤편과 철도선로 인접 지역으로, 전체 면적 약 49만여㎡(약 15만평) 규모인 용산정비창 부지는 오랫동안 기차를 수리·점검하기 위한 운영상 중심지로 쓰여왔다.
서울의 한복판에 있음에도 이 부지가 지금까지 비어 있는 이유는 철도 부지 특성상 소유권이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 등 공공기관에 묶여 쉽게 민간 개발로 전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비 기능은 단계적으로 지방(고양·부산 등)으로 이전되면서 사용 목적을 잃은 지 오래다. 현재 해당 부지는 코레일(72%)과 국토교통부(23%), 한국전력공사 등(5%) 공공기관과 정부 부처가 소유하고 있다.
2007~2013년 첫 대규모 개발사업이 추진됐지만 부도와 소송으로 무산되면서 그 후 토지 활용이 10년 가까이 중단됐으나, 2022년 11월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가 공공기관의 자산 효율화를 명분으로 공공기관 소유 부동산 등 14조5000억원 규모의 자산을 2027년까지 매각하는 계획을 확정했다.
공공기관 소유 자산 중에는 6조3000억원대로 자체 평가된 코레일 보유의 용산철도정비창 부지가 포함돼 있었다. 서울시는 이 부지를 고밀도의 ‘콤팩트시티’로 개발해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고 용산 국제업무지구를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구체적인 개발 방식은 코레일과 SH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가 공동시행자로 기반시설 조성 후 18개 구역으로 나눠 민간에 매각하는 방식을 통해 업무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공공이 기반시설(도로와 공원 등)을 만들어 놓고 그 부지를 여러 구획으로 나눠 민간기업에 분양하는 방식이다.
이에 공대위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현 개발 방식이 사실상 민간에 개발 이익을 넘기는 ‘개발 이익의 사유화’라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국가와 공공기관이 보유한 대규모 공공토지인 용산정비창 부지는 민간 매각이 아니라 공공주택과 공공 공간 조성에 우선 활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에서 공대위는 “공공부지 매각을 통한 용산정비창 투기 개발 시도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합작품”이라며 “정부는 공공기관인 코레일에 용산정비창 부지 매각 중단을 지시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해 공공성 있는 개발로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에서 참여연대 박효주 주거조세팀장은 “용산정비창 부지 개발은 2007년부터 오 서울시장이 추진한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당시 사업비 30조 규모의 단군 이래 최대 개발이라 불리며 용산 일대의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켰다”면서 “한강변에 위치한 이번 용산정비창 부지 개발 역시 총사업비 50조 규모로 추정되는데 한강변 대규모 개발은 투기를 부추기고 한강벨트 주택 가격 상승을 촉발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2013년 해당 사업의 부도로 수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손실을 남겼다”며 “그 과정에서 용산 일대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며 6명이 용산 참사로 목숨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용산이 서울에서도 무주택 가구 비율이 66%에 달하는 지역임에도 이번 계획에 공공주택 공급이 배제돼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민달팽이유니온 김가원 사무처장은 “용산정비창 개발이 진행된다면 이득을 보는 것은 서울 시민이 아닌 민간 투기 세력일 뿐이다. 개발이 무사히 이뤄질지도 알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각종 부동산 이권 카르텔이 형성될 장소로 사용될 것이 불보듯 뻔하다”며 “이 땅은 전국 최대 쪽방촌이 존재하지만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가장 낮은 용산의 거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청년 가구의 임차 비율은 2023년보다도 늘어 이제는 82.6%가 세입자다. 전세 사기는 끝나지 않고 월세는 비싼 탓에 한 번에 계약 갱신 청구권도 다 채워 쓰지 못하고 이사를 다녀야 하는 청년의 현실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수십억 고가 아파트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심각한 청년 주거난 문제를 먼저 해결해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이들은 서울시가 추진하는 국제업무지구 조성이 이미 여의도·마곡 등 기존 업무지구와 공급 경쟁을 벌이게 돼, 결과적으로 서울 도심의 불균형 심화와 오피스 공실 확대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공대위가 대통령실과 국무총리실에 제출한 의견서에는 용산정비창 부지 매각과 국제업무지구 개발의 부당성을 중심으로 ▲공공부지 보유의 필요성과 개발의 공공성 ▲특혜 매각 및 개발이익 사유화 우려 ▲기존 상업지구 수요와의 제로섬게임 등의 우려사항이 명시됐다.
한편 지난 6월 이재명 대통령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공택지를 조성한 후 민간에 매각하는 구조를 ‘땅장사’로 지적하며 구조 개혁을 지시한 바 있으며 현재 진행 중인 기재부의 국유자산 매각 사업도 중단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코레일 측은 “코레일이 사업 주도권을 가지고 개발하는 것이고, 필지를 나눠 ‘분양’하는 형태”라며 “정부의 공공자산 매각 중단지시와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이틀 뒤 용산정비창 부지를 활용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계획 변경 및 실시계획 인가 고시를 마치고 오는 27일 기공식을 열 계획이다. 서울시는 올 연말 기반공사를 시작해 2027년 말 첫 분양,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