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N 인터뷰] ‘왼손잡이 소녀’ 쩌우스칭 감독 “션 베이커 감독과 ‘진실의 미학’ 통해”

[인터뷰] 영화 <왼손잡이 소녀> 쩌우스칭 감독 2001년부터 각색 시작, 대만 머물며 본격 작업 ‘진짜’ 추구하는 도그마 95 영화적 철학 지향해 연기하지 않는 캐릭터 그 자체의 인물 찾고자 아이폰, 일상 방해 않는 자유로운 촬영 가능해

2025-11-20     전세라 기자
영화 <왼손잡이 소녀> 쩌우스칭 감독 [사진 제공=(주)더쿱디스트리뷰션/(주)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투데이신문 전세라 기자】 21년 만에 단독 연출에 나선 쩌우스칭 감독의 영화 <왼손잡이 소녀>가 지난 12일 국내에 개봉되며 단연 화제의 중심에 섰다. 올해 제78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공식 초청돼 Gan 재단 배급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고, 이어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섬세한 연출과 감정선으로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은 바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영화 <왼손잡이 소녀>는 왼손을 쓰는 ‘이징’으로 인해 3대에 걸쳐 쌓아온 가족의 비밀이 드러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대만의 활기찬 야시장을 배경으로 세대를 아우르는 갈등과 정체성의 혼란을 아이의 시선에서 섬세하게 풀어냈다. 

이 작품은 <플로리다 프로젝트>, <레드 로켓>, <아노라>의 션 베이커 감독이 각본·제작·편집에 참여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쩌우스칭 감독의 섬세함과 션 베이커 특유의 감각이 합쳐진 이번 <왼손잡이 소녀>는 아이폰 촬영으로 대만의 분위기와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왼손잡이’라는 자전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쩌우스칭 감독이 20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고민과 기다림의 결과물이다. 화려한 도시 옆에서 네온사인 아래 고요한 숨을 쉬는 야시장처럼 ‘다름’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일상의 틈에서 피어나는 감정을 어루만지는 영화다. 

투데이신문은 <왼손잡이 소녀>의 쩌우스칭 감독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 담긴 개인적인 기억, 연출 철학 등에 대해 깊이 있게 들어봤다.

영화 <왼손잡이 소녀> 스틸컷 [사진 제공=(주)더쿱디스트리뷰션/(주)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Q. 영화 <왼손잡이 소녀>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로 들었는데. 시나리오를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이 이야기는 션 베이커 감독과 내가 처음 협업했던 <테이크 아웃>보다 2년 전인 2001년부터 함께 구상해왔다. 고등학교 시절 왼손으로 칼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들었다는 션 베이커 감독의 이야기를 들은 게 <왼손잡이 소녀> 영화의 계기가 됐다. 

이후 2010년에는 한 달 동안 타이베이에 머물며 본격적으로 시나리오 초고를 완성했다. 머무는 동안 통화(通化) 야시장에서 다섯 살 소녀와 싱글맘인 소녀의 엄마를 만나게 됐고 이들이 훗날 영화의 배경과 캐릭터 설정에 중요한 영감을 줬다. 이후 각색과 촬영을 거쳐 영화 <왼손잡이 소녀>를 완성했다. 이 영화는 <테이크 아웃>을 통해 션 베이커 감독과 함께하며 다져온 작업 방식을 바탕으로 대만에서의 삶 속 경험을 토대로 모든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들었다. 

Q. 션 베이커 감독과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왔는데. 창작 과정에서 가장 잘 맞는다고 느끼는 점이 있나.

션 베이커 감독과 나는 자연광, 실제 장소 등으로 철저한 ‘진짜’의 미학을 추구하는 도그마 95 영화들을 좋아한다. 우리는 영화가 좋은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하며 일상의 이야기가 만들어낸 이야기보다 더 극적인 사건과 이야기를 내재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공통점을 바탕으로 션 베이커 감독과 나는 2003년 공동 집필 및 연출한 <테이크 아웃>을 통해 영화적 철학과 방식을 함께 만들어갔다. 함께한 이 작업을 바탕으로 나는 실제 공간에서 촬영하고 거리에서 배우를 캐스팅하며 삶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를 각본에 녹여내는 작업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렇듯 거칠지만 솔직한 방식이 우리만의 창작 언어의 중심이 된 것이다. 

Q. 영화는 ‘이징’이라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이징’이라는 캐릭터를 캐스팅할 때 중요하게 고려했던 점이 있나.

<왼손잡이 소녀>에서 소녀의 관점을 풀어내는 이야기인 만큼 ‘이징’이라는 캐릭터가 중요했다. 그렇기에 연기하지 않으며 자연스러운 호기심과 눈빛, 그리고 그 속에 조용한 강단을 지닌 아이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니나 예(Nina Ye) 배우를 처음 만났을 때, 억지로 연기하려 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으며 내가 생각해왔던 ‘이징’이라는 인물 그 자체였다. 니나 예는 순수함과 반항심이 공존하는 드문 매력을 지니고 있었고 ‘이징’이라는 캐릭터의 본질을 완벽하게 표현해줬다고 생각한다.

Q. 이 외에도 배우들 캐스팅 과정에서 특별히 신경 썼던 부분이 있다면.

단역을 포함한 모든 배우가 실제 삶에서 튀어나온 듯 보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자매, 남동생, 카페 주인과 손님들, 심지어는 야시장의 상인들까지 실제 삶의 질감을 가진 사람들로 채우고 싶었다. 내가 생각해왔던 타이베이가 가진 결함, 유머, 끈기 그리고 생동감 등 도시의 그 자체를 캐스팅해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싶었기에 이를 고려하며 배우들을 캐스팅하고자 했다.

영화 <왼손잡이 소녀> 스틸컷 [사진 제공=(주)더쿱디스트리뷰션/(주)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Q. 영화 <왼손잡이 소녀>는 수많은 촬영 카메라 가운데서도 아이폰으로만 촬영한 것에 많은 이들이 놀랐다. 아이폰 촬영을 시도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아이폰 촬영은 기술적인 이유 때문이라기보다는 카메라가 가진 자유로움 때문이었다. 아이폰으로 촬영하면 일반 영화 촬영 카메라보다 눈에 덜 띄기에 사람들의 일상을 방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다. 그 덕분에 대만이 가진 도시 특유의 친밀함, 유연함, 진실함 등을 카메라로 담을 수 있었다. 아마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마치 캐릭터 바로 옆에 서 있는 듯한 거리적 가까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Q. 영화 시사 이후 ‘대만에 다시 가고 싶어졌다’는 후기가 많았는데. 대만이 가진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대만의 매력은 번지르르하고 화려한 것이 아닌 깊은 인간성이라고 생각한다. 대만은 혼란스러움과 따뜻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곳이기에 대만이 가진 매력과 온기를 영화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영화 <왼손잡이 소녀>에는 대만 야시장의 냄새, 피부에 느껴지는 습기, 사람들의 얼굴에 묻어난 다정함과 쓸쓸함의 공존이 스며들어 있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영화가 보여주는 솔직함에 반응한 것이 아닐까 싶다. 

Q. 영화 <왼손잡이 소녀> 연출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과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있다면.

‘감정적 진심’을 전달하는 것을 항상 목표로 삼아왔다. 카메라의 모든 움직이나 야시장의 소리도 감독의 통제가 아닌 인물들의 행동과 시선에서 자연스럽게 나오기를 바랐다. 자연스러움을 담으려고 했기에 가장 어려웠던 점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촬영 현장에서도 계획된 연출보다는 순간의 흐름을 믿고 환경과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리듬을 따라가고자 했다. 

영화는 애초에 무언가를 억지로 만들어내는 영화가 아니었기에 삶의 자연스러움이 건네주는 정확한 타이밍을 묵묵히 기다리며 준비해온 작업이었다. 완벽하게 통제된 장면이 아닐지라도 그 안에 담긴 진짜 감정과 삶의 결은 오히려 더 깊게 다가갔으리라 믿는다.

Q. 한국도 과거에 왼손잡이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이 있었다. 전 세계 ‘왼손잡이 소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도 어릴 적 왼손을 쓴다는 이유로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다. ‘왼손은 틀린 손’이라고 여겨졌지만, 오히려 지금은 그 손이 나만의 감각과 목소리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 세계의 모든 왼손잡이 소녀들 그리고 세상의 기준에서 조금 다르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누구의 강요도 받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누구도 우리 자신에게 어떤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틀렸다’고 불리는 바로 그 점이 사실은 자신의 가장 진실한 목소리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영화 &lt;왼손잡이 소녀&gt; 쩌우스칭 감독 [사진 제공=(주)더쿱디스트리뷰션/(주)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Q. OTT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요즘, <왼손잡이 소녀>를 극장에서 직접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왼손잡이 소녀>는 큰 스크린에서 ‘느껴야’ 하며, 빛·소리·감정 등 모두가 극장에서 함께 경험될 때 완성된다. 이 영화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침묵과 어둠 속에서 함께 살아내는 감정의 환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누군가와 함께 감정을 나누며 영화를 볼 때 영화가 가진 진짜 힘을 느낄 수 있게 된다.

Q.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주제나 장르가 있나.

앞으로도 인류, 가족, 이주 그리고 우리 삶을 규정짓는 조용한 반란들에 관한 섬세한 이야기를 계속 그려내고 싶다. 다음 작품은 대만이 아닌 다른 곳을 배경으로 할 수도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투쟁 속에서 빛을 찾아내는 그 정신만큼은 내 작품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