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미제 신정동 연쇄살인, 빌딩관리인으로 범인 특정...‘엽기토끼’ 사건과는 무관

2025-11-21     권신영 기자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 신재문 팀장이 21일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마포청사에서 양천구 신정동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 범인 특정 관련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20년 가까이 장기 미제로 남아 있던 서울 신정동 일대 연쇄살인 사건 진범이 경찰 추적 끝에 드러났다. 그는 2015년 이미 사망한 상태로 최근 조사 중 밝혀졌으나 경찰은 완전한 사건 규명 의지를 재차 밝혔다.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는 21일 브리핑에서 2005년 양천구 신정동에서 발생한 두 건의 여성 살해 사건의 범인을 A씨로 특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수사팀은 전국 병원과 시설을 샅샅이 훑어 사망자의 검체까지 찾아내는 등 사실상 ‘전국구 재수사’를 벌였고 결국 범행 당시 60대였던 남성 A씨로 결론을 내렸다. 다만 A씨는 이미 10여년 전 사망해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은 마무리된다.

사건은 2005년 6월과 11월 신정동 주택가 골목에서 20대와 40대 여성이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한 피해자는 초등학교 인근 골목에서 쌀자루에 담긴 상태로, 다른 피해자는 주차장 주변에서 비닐에 싸인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두 피해자의 얼굴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씌워져 있었으며 목졸림 흔적이 발견됐다.

경찰은 21일 브리핑을 통해 2005년 양천구 신정동에서 발생한 두 건의 여성 살해 사건의 범인을 A씨로 특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해당 범인은 한 TV 프로그램으로 화제가 된 엽기토끼 사건과는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제공=뉴시스]

전담팀은 8년간 수사를 이어갔지만 단서가 남지 않아 2013년 미제로 전환됐다. 이후 2016년 서울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이 꾸려지며 재수사가 시작됐다.

당시 경찰은 주변 지역의 유사 사건, 방송 제보, 과거 수사 기록 등을 전면 재검토했고, 두 사건의 증거물에서 동일한 DNA가 나왔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재감정 결과를 확보하면서 동일범의 소행임을 확인했다.

피해자 시신에서 발견된 ‘모래’ 성분을 실마리로 경찰은 당시 서울 서남권 공사 현장 관계자와 신정동 출입자 등 무려 23만명을 1차 범위로 설정했다. 이어 1500여명을 직접 방문해 DNA를 채취·대조했으나 일치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진전은 뜻밖의 곳에서 나왔다. 사망자를 포함한 후보군을 다시 정리하던 중 경찰은 신정동의 한 건물 관리인으로 일했던 A씨의 과거 전과 기록을 발견했다. 양천경찰서 기록보관실을 재검색하던 수사관이 바인더 속에서 A씨의 ‘강간치상 현행범 체포’ 기록을 찾아낸 것이다. 그러나 이미 2015년 사망해 유골 채취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수사팀은 A씨가 생전에 치료받았던 경기 남부권 병의원 40여곳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그 가운데 한 병원에서 A씨의 생전 검체가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 검체가 사건 현장에서 나온 DNA와 완전히 일치한다고 감정했다.

수사 결과 두 피해자는 우연히 A씨가 일하던 빌딩을 방문했다가 붙잡혀 지하 창고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것으로 드러났다. 시신은 노끈과 쌀포대, 비닐 등을 이용해 결박한 뒤 인근 골목에 유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대중 사이에서 동일범일 가능성이 제기됐던 ‘엽기토끼 살인 사건’과의 연관성은 이번에 완전히 부인됐다. 2006년 신정동 납치 미수 피해자의 증언이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지며 ‘엽기토끼’라는 별칭이 붙었지만 경찰은 당시 A씨가 이미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는 점을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인의 생사 여부를 떠나 장기 미제는 반드시 규명한다는 원칙을 다시 확인한 수사였다”며 “앞으로도 끝까지 추적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