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카드 없는 삼성카드…삼성전자 새 카드 전략 어디로
삼성전자, 미국·국내서 ‘외부 파트너’ 선택…핵심은 ‘글로벌·트래블’ 글로벌 결제시장, 국가·계열 구조에서 기능·생태계 중심으로 ‘재편’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삼성전자가 미국에서는 영국계 금융사 바클레이스, 국내에서는 하나카드를 각각 협업 파트너로 선택하며 신용카드·지갑 생태계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왜 삼성카드를 중심에 두지 않는가”라는 의문도 나오지만, 이를 단순히 ‘계열사 배제’로 읽기에는 글로벌 결제시장의 변화가 훨씬 근본적이다. 결제시장은 이미 국가·계열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기능과 생태계를 기준으로 재편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바클레이스와 브랜드 신용카드를 검토하고 있으며, 비자(Visa)망 기반 인프라와 현지 금융규제를 충족하는 모델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삼성전자가 고금리 저축 계좌, 후불결제(BNPL), 디지털 선불계좌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검토하면서, 상당 부분을 바클레이스와 협력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계열사보단 ‘기능 중심’…글로벌 규제·트래블 전문성에 무게
먼저 미국에서 삼성카드를 활용할 수 없는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미국은 금융업 인가 없이 신용카드 사업을 영위할 수 없는 대표적인 규제 시장이며, 현지 금융사 파트너십 없이 단독 발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삼성카드는 국내 인가만 보유하고 있어 미국에서 영업할 법적 기반이 없다. 삼성전자가 바클레이스를 선택한 것은 단순한 협업을 넘어, 글로벌 인가·결제망·신용평가 체계까지 한꺼번에 확보하는 가장 빠른 방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삼성전자가 애플카드처럼 월렛 중심의 생태계를 키우려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내 월렛 초기 구축 단계에서 안정적 파트너를 찾는 선택은 불가피했다는 평가다.
국내에서 하나카드가 파트너가 된 배경 역시 기능 중심 판단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삼성전자가 강화하려는 삼성월렛 서비스의 핵심 기능은 ‘트래블’인데, 항공·호텔·OTA·환전·글로벌 결제망 등 트래블 전문성에서는 하나카드가 업계 압도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UX·데이터·상품 라인업 모두 해당 분야에서 가장 정교하다는 평가가 많다.
반면 삼성카드는 국내 생활·구독·가전·온라인 결제 영역에서는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글로벌·트래블 구조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국내 파트너 선정 역시 계열사 여부가 아니라 기능 적합성을 기준으로 고른 결과”라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삼성카드가 최근 신뢰도·보안 이슈를 겪은 점을 부수적으로 언급하지만, 시장 전체의 방향성이 이미 ‘발급사 중심’에서 ‘기능 공급자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 보다 구조적인 설명으로 꼽힌다. 애플-골드만삭스 협업, 스트라이프·페이팔·애드옌의 확장 전략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결제시장도 반도체처럼 ‘생태계 정렬’의 시대로
삼성전자가 미국·국내 모두에서 외부 파트너를 선택한 흐름은 최근 반도체 분야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메모리·HBM·파운드리에서 기능별 기술력 회복을 내세우듯, 결제·지갑 생태계에서도 삼성전자는 이제 ‘어떤 기능을 외부와 연결해 플랫폼을 확장할 것인가’를 증명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협업은 ‘계열사 배제’라기보다 ‘정렬(alignment)’에 가깝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미국에서는 글로벌 인가·결제망·신용평가 역량을 가진 바클레이스가 필요했고, 국내에서는 이미 트래블 기반을 구축한 하나카드가 최적이었다. 삼성전자의 선택은 계열사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기능·역량·생태계 효율성을 기준으로 한 조합 전략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한편 글로벌 결제시장은 국가·계열 중심에서 기능·데이터·생태계 기반 구조로 전환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지갑·A2A·핀테크 네트워크 경쟁이 강화되면서 카드사의 역할도 ‘발급사’에서 ‘특정 기능을 제공하는 인프라 사업자’로 확대·변화하는 방향성이 나타나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스테이블코인과 국제 A2A 결제 등 기술 기반 결제 방식이 확산되면 국가별 카드사업 진입 장벽이 지금보다 크게 낮아질 수 있다”며 “디지털ID·글로벌 지갑 표준화가 이뤄질 경우, 해외 현지 법인 하나만으로도 다양한 결제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변화는 카드사의 경쟁력이 발급 규모가 아니라 기능·데이터·네트워크 품질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반면 윤선중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규제 현실에 보다 무게를 뒀다. “해외 카드사업은 인허가, 결제망 구축, 소비자보호 규제 등 제약이 여전히 커 단독 진출의 실효성은 높지 않다”며 “각사가 강점을 가진 기능을 특화하고 생태계 내에서 역할을 분명히 하는 전략이 더 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의 파트너십 중심 구조도 이러한 시장 조건을 반영한 흐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