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풍의 에너지 인사이트] 핀란드에서 찾은 고준위방폐장 해법, 대한민국이 풀어야 할 숙제
온칼로처분장 사례와 사회적 합의 과정을 통한 시사점
현대 문명은 전기의 힘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왔지만, 그 이면에는 ‘에너지의 그림자’가 자리한다. 탄소중립과 기후위기가 전 지구적 과제로 떠오른 오늘날, 원자력은 효율적이고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대체에너지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 찬란한 ‘빛’ 뒤에는 인류가 수십만 년 동안 관리해야 하는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이라는 무거운 숙제가 존재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에 서 있다. 2030년 이후 원전 내 저장시설이 포화되면, 전력 생산이 중단될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고준위특별법이 통과 되었지만 첫발을 띄었을 뿐, 아직 갈길은 너무 멀기만 하다. 이번 특별기고는 원자력의 효율성과 위험, 그리고 고준위폐기물 처분 문제를 과학·사회·정책의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그동안 ‘전문가만의 문제’ ‘정치권의 문제’로 여겨졌던 사용후핵연료 이슈를 국민이 이해하고 함께 공론의 장에서 논의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 前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총장
대한민국의 원자력 발전은 경제성장과 산업발전의 든든한 기반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미뤄온 과제다. 2030년대면 저장시설이 포화에 이를 것이라는 경고가 이어지지만, 처분장 부지선정은 아직 시작도 못한 상태이다. 미래세대에 넘겨서는 안 될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이 숙제를 풀기 위해 우리는 이미 해답에 가까이 다가선 나라들의 경험을 참고해야 한다. 세계 최초의 영구 처분장 ‘온칼로(Onkalo)’를 건설한 핀란드는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들의 선택은 과학적 투명성과 신뢰와 사회적 합의라는 두 축을 중심에 세운 접근이었다.
핀란드는 1983년 로드맵을 발표하며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 추진을 시작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투명한 정보 공개이다. 지질조사 결과, 안전성 평가, 기술적 근거를 40년간 꾸준히 주민에게 설명했다. 전문가들이 직접 질문에 답하며 불안과 오해를 줄이는 과정을 지속했고, 이는 결국 올킬루오토섬이라는 안정적 부지 선정에 대한 주민 신뢰를 이끌어냈다.
또한 핀란드는 민주적 숙의 절차를 정책의 중심에 놓고, 정부나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결정을 밀어붙이지 않았으며, 지역 주민과의 대화·공청회·논의를 지속했다. 운영사 포시바(Posiva)는 단순한 금전 보상 대신, 세수 확충·인프라 개선·지역경제 활성화 등 지역의 미래를 함께 키우는 모델을 제시하며, 위험시설 설치를 ‘부담’이 아닌 ‘발전’의 계기로 만든 것이다.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도 여기에 있다. 고준위 특별법 제정과 관리위원회 출범으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나 진정한 신뢰는 법과 조직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안전성 평가, 지질 데이터, 기술적 검증 등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이 정책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소통, 그리고 정직한 대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지 선정은 설득의 기술이 아니라 상생의 비전이다. 지역이 잃는 것을 보상하는 방식에서 머무르지 않고, 그 지역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장기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는 종합적 모델이 필요하다. 안전과 공동체의 미래를 동시에 고려하는 접근만이 지속 가능한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용후핵연료는 우리가 원자력이라는 에너지 선택을 통해 얻게 된 책임의 결과이다. 이 책임을 미래세대에게 넘기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핀란드는 40년에 걸쳐 그 책임을 성실히 수행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다음 세대가 떠안게 될 것이다.
우리도 이제 결단해야 한다. 과학, 민주주의, 그리고 공동체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지속 가능한 해법을 선택할 때이다. 미래의 안전은 오늘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