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당·진보당서 ‘차별금지법’ 재추진…18년 표류법안 이번에는 통과되나

2025-11-25     박효령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여성위원회가 지난 5월 2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인근에서 진행된 21대 대통령선거 성평등 노동실현을 위한 5대 요구 기자회견에서 손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조국혁신당, 진보당이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경제 등 모든 생활 영역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차별금지법안’ 발의를 추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외면하고 국민의힘이 반대해 18년간 표류하던 차별금지법이 22대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조국혁신당이 22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차별금지법’을 언급했다.

조국혁신당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3일 네 번째 당 혁신 방안인 ‘뉴 파티 비전’을 발표했다. 혁신 방안에는 △생활동반자법 △보편적 차별금지법 △안전한 임신 중단 법제화 △비동의 강간죄 도입 △교제폭력처벌법 제정 △성평등 임금공시제 등 6가지 과제가 포함됐다.

이 가운데 ‘보편적 차별금지법’은 성별·장애·연령·성적지향·인종·종교 등 모든 형태의 차별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조국혁신당 정춘생 의원은 최근 완성한 차별금지법 초안을 당 정책위원회 검토를 거친 뒤 당론으로 발의할 예정이다. 조국 신임 당대표가 지난 10일 당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할 당시 차별금지법 도입을 약속한 만큼 법안 추진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진보당 손솔 의원도 연내 발의를 목표로 차별금지법을 추진 중이다. 국회법상 법안 발의에는 의원 10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진보당 의원 전체(4명)가 참여하더라도 다른 당 의원 6명 이상이 공동발의자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이에 손 의원은 지난 20일 여야 의원들에게 손편지를 통해 “차별금지법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법”이라며 동참을 요청하기도 했다.

진보개혁 정당을 표방해 왔음에도 차별금지법만큼은 미온적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논의에 어떻게 응할지 이목이 집중된다. 조국혁신당·진보당이 발의에 성공하더라도 과반 의석(166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본회의 통과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007년 법무부의 입법예고로 논의가 시작된 차별금지법은 진보 정당을 중심으로 지난 18년 동안 11번 발의되고도 본회의 상정은 번번이 무산됐다. ‘표현의 자유 침해’, ‘동성애 반대할 권리 침해’ 등의 반대 여론이 거셌기 때문이다.

21대 국회에서는 장혜영 당시 정의당 의원, 이상민·박주민·권인숙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했지만 계류한 끝에 임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입법 주도권을 쥔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게도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과제다. 제정 필요성에 공감하는 의원들이 꽤 있지만 사회적 파장이 큰 법안을 전면에 올리는 것이 정무적으로 득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국무회의에서 “우리 사회 일부에서 인종, 출신, 국가 등으로 시대착오적인 차별과 혐오가 횡행하고 있다”며 “혐오 표현에 대한 처벌 장치를 속히 마련하고 허위 조작정보 유포 행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며 엄정하게 처벌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시했지만 차별금지법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이어가지 않았다.

범여권을 중심으로 ‘차별금지법’ 발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고 시민사회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 없이 인종, 출신, 국가 등을 이유로 한 차별과 혐오를 해소할 수는 없다”며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정작 법안이 본회의 통과 열쇠를 쥔 더불어민주당은 이번에도 미묘하게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내에서는 제정 필요성에 공감하는 기류가 적지 않지만 차별금지법이 갖는 사회적 파장과 보수 진영의 조직적 반발을 감안할 때 정무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현실론이 반복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최근 국무회의에서 차별·혐오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지만 정작 ‘차별금지법’ 자체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조국혁신당과 진보당을 중심으로 입법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음에도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이 결정적인 정치적 결단을 내릴 의지가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18년째 공전 중인 차별금지법이 이번 22대 국회에서도 그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 정치인들이 차별을 바라보는 평균적인 시각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