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후 6·4 지방선거 전망

‘튀면 찍힌다’ 조용한 혈전(血戰)

2014-05-10     홍상현 기자
▲ 지난 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일대에서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정부를 비판하는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무당파 표심 · 朴대통령 쇄신책’ 변수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비통과 분노에 차있는 가운데 6‧4지방선거가 5월 10일 기준으로 25일 앞으로 다가왔다. 많은 공약들을 쏟아내며 치열한 선거전에 몰입해 있을 이전의 모습과는 달리 ‘튀면 찍힌다’는 우려에 여야 모두 몸을 사리고 목소리를 낮추며 ‘조용한 혈전’을 벌이고 있다. 자칫 세월호 추모 분위기와 이반되는 행동과 발언을 할 경우 심각한 역풍을 맞을 수 있기에 여야 정치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이번 6‧4지방선거는 판세를 정확히 가늠하기가 어렵다. 전문가들이 이번 선거를 ‘깜깜이 선거’라고 말할 만큼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아직 불투명하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로 인해 선거자체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도 거의 없는 상태다. 이번 선거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변수는 늘어난 ‘무당파’의 마음에 달렸다. 특히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학생들과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둔 40대 부모들의 ‘분노’가 어디로 튀느냐가 관건이 될 수 있다.

세월호 참사는 정치권에 기현상을 가져왔다. 일반적으로 선거일이 다가오면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파’가 줄어드는 것이 정상이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여야 진영의 정치적 논리와 자신의 생각이 부합되는 지,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발전적인 모델을 제시하고 이뤄낼 정당이 어디인지를 판단해 어느 한쪽에 대한 지지성향을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 이후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보장해야 할 의무를 망각한 정부와 여야 정치권 전체를 향한 국민적 분노가 확산되면서 ‘무당파’가 오히려 2배 이상 증가 했다. 따라서 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잡느냐가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가름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당파’ 마음잡기와 함께 또 다른 결정적 변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르면 15일 지방선거 후보등록 이전, 늦어도 22일 시작되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 전에 내놓을 안전 관련 쇄신책과 ‘관피아 척결’에 따른 후속 인사 등 국가 개조 방안을 포함한 대국민 사과에 달렸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국민의 분노를 달래 줄 진정성 있는 대책을 내놓느냐, 아니면 생색내기 대책으로 국민의 실망을 더욱 가중시키느냐에 따라 ‘무당파’의 표심이 결정될 것으로 보여 여야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세월호 여파 ‘무당타’ 증가
새누리‧새정치 지지율 동반 하락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방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무당층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여론조사 전문업체인 리얼미터가 세월호 침몰 전인 지난 4월 11일에 실시한 지지도 조사에서 13.9%에 머물던 무당파가 세월호 침몰 직후인 4월 18일에는 15.0%로 증가한 뒤 4월 25일 18.2%, 그리고 5월 2일 조사에서는 무려 10%p 가까이 증가한 28.1%에 이르렀다. 한 달 사이 2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한국갤럽의 4월28일~5월2일까지의 정당지지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무당파가 전 주 대비 8%p 증가한 34%를 기록했다. 지난달 30일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전국 성인 남녀 102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유무선 전화 RDD(임의걸기) 여론조사(응답률 19.8%,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에서도 무당파 비율이 무려 43.8%로 나타났다. 특히 세대별로 보면 52.1%를 차지한 40대의 무당파로의 이동이 주목할 만하다.

무당파 증가는 4년 전 제5회 지방선거 기간에 견주어 이례적인 일이다. 당시에도 천안암 침몰 사건(3월 26일)이 발생해 온 국민이 비통에 빠져있을 때였지만, 지금처럼 무당파가 선거에 임박해 증가하지는 않았다. 지난 2010년, 선거를 한 달 정도 앞둔 4월 26일~4월 30일 실시한 리얼미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무당파는 18.2%에 그쳤으며 보름 정도 앞둔 시점에는 14.8%로 감소하는 추이를 보였다.

이는 천암함 침몰 당시 ‘안보’가 이슈화 되면서 보수층 결집력을 높여 반대급부로 무당파가 줄었다면 세월호 이슈는 ‘안보’ 문제가 아닌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것도 생때같은 우리의 어린 자녀들의 ‘희생’을 담보로 했다는 점에서 국민적 분노가 커졌기 때문이다. 국민의 분노와 분개심은 고스란히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고 지지도 역시 함께 추락했다.

무당파 증가는 여당인 새누리당 뿐만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리얼미터 조사 결과 같은 기간 중 새누리당 지지율은 53.4%에서 43.5%로 9.9%p 하락했고 새정치민주연합도 26.9%에서 23.9%로 3.0%p 내려갔다. 같은 기간 한국갤럽의 조사에서도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45%에서 39%로, 새정치민주연합은 25%에서 24%로 동반 하락했다.

한국갤럽은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에 비해 일찌감치 지방선거 경선에 나서며 2주 전까지는 상승세에 있었지만 세월호 사고 이후 드러난 현 정부의 미흡함에 일부 지지층이 등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면서 "그렇다고 여당에 대한 실망감이 새정치민주연합에 유리하게 작용하지는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지지도는 3월 1주 31%에서 이번 4월 5주 24%까지 하락세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여론 전문가들은 대형 재난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정부 심판론’의 강도가 거세지는 것과 동시에 정치권 전체의 무능에 대한 질타 여론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또한 전문가들은 늘어난 무당파가 여권으로 돌아갈지 정부를 심판하는 응징 투표로 갈지, 아니면 정치에 환멸을 느껴 투표 포기로 돌아설지 예측하기가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이번 지방선거의 승패는 ‘무당파 표심 잡기’에 달려있다고 분석했다.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는 “4년 전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천안함 사건을 지렛대 삼아 전쟁 위기감을 고조시킨 결과, 도리어 무당파 사이에서 반발심리가 결집되어 수비적 위치에서 평화 프레임을 내세웠던 야당이 압승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리서치앤리서치(R&R) 배종찬 본부장은 “세월호 참사 전 여당이 유리했던 수도권 표심이 지금은 5대5 박빙으로 바뀌었다”며 “여권은 부동층 재흡수가, 야권은 안철수 대표를 중심으로 대여(對與) 세력으로 뭉칠 수 있느냐가 변수”라고 말했다.

새누리 지지율 하락에 위기감 고조
“종아리를 걷어 회초리 맞자” 정면승부


세월호 참사 여파에 따른 지지율 하락에 새누리당은 지방선거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사고 대응과정에서 나타난 정부의 무능에 대한 국민 불신이 여권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당내에서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 고공 행진'을 근거로 지방선거 판세를 낙관적으로 관측하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새정치민주연합보다 먼저 경선 일정을 진행하는 등 한층 달아올랐던 분위기도 한풀 꺾인 모양새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한 의원은 "이대로 가다가는 서울, 경기, 인천 어느 곳도 낙관할 수 없다"며 "세월호 참사를 놓고 유불리를 따지는 것은 적절치 않지만 분위기가 안 좋은 것은 사실 아니냐"고 우려했다.

한 핵심 당직자도 "경선을 통해 얻고자 했던 컨벤션 효과는 지금 바랄 수가 없는 거다. 심지어 당내에서는 모두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거운동을 하지 말자는 발언도 나온다. 그럴 수 없다면 낮은 자세로 가야한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은 일단 "종아리를 걷어 올리는 심정"으로 정면 돌파를 택하겠다는 분위기다. 새누리당 김재원 전략기획본부장은 지난 5일 "우리의 책임이고, 심판 받아야 마땅하다. 회초리를 맞아야 한다면 정말 종아리 걷어 올리는 심정으로 맞길 기다리고 있다"며 "다만 책임론, 정권심판론도 야당이 주장하면 불행한 사건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정략으로 비춰질 것"이라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현 상황에서 본선 후보로 선출되는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경쟁력 있는 후보자들이다. 후보자 개인적인 자질과 역량을 내세워야 한다"며 "유권자들에게 신뢰와 믿음을 주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한편 일부 후보 캠프에는 박 대통령을 거론하지 않는 쪽으로 선거 메시지를 바꾸려는 움직임 도 있다. 더 이상 유권자들로부터 '친박(친박근혜계) 프리미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새정치, 잇단 공천 잡음 '내홍'
무당파 표심을 잡을 수 있을까?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국정조사'를 화두로 ‘정권심판론’을 내세울 기미도 보인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 따른 국민적 분노가 야권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지는 아직까지 미지수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 여파 속에 어느 때보다 조용하게 치러져야 할 이번 선거에서 때 아닌 '공천 잡음'이 터져 나오며 당 지도부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지난 6일 오후 국회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난 뒤 예외적으로 광주광역시장 후보로 윤장현 예비후보를 거론하면서 논란이 된 ‘전략공천’ 문제가 또 다시 불거졌다. 일파만파 터져 나온 '안심'(安心·안철수 공동대표의 의중)' 후폭풍이 계속되자 안철수 대표가 직접 진화에 나섰지만 관련 당사자인 이용섭·강운태 예비후보측의 반발이 지속되면서 당 내부에서조차 야당 우세지역에서도 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안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윤 후보를 "30년간 시민운동, 인권운동에 앞장선 시민운동가이며 권위적인 관료 리더십이 아닌 낮은 자세로 광주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민의 리더십을 실천할 수 있는 분이다. 광주의 박원순이 될 수 있는 분"이라고 강조하면서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고는 광주를 떠나지 않고 활동한 광주 토박이이자 새정치민주연합이 추구하는 가치에 맞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안 대표의 이 같은 발언에는 지난 2일 새정치연합이 윤 예비후보를 광주시장 후보로 전략공천하면서 촉발된 논란에 직접 나서서 사태를 일단락 짓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주당과 통합하기 전 안 대표 쪽 새정치연합 인사인 윤 후보를 야권 텃밭인 광주에 전략공천하면서 '지분 나누기', '자기 사람 챙기기' 등의 비판이 지속되면서 그 후폭풍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실제로 광주는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공천에서 배제된 강운태 예비후보와 이용섭 예비후보뿐만 아니라 시민 단체들도 가세하며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우는 등 논란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이 예비후보와 강 예비후보는 전략공천이 발표된 바로 다음날 "정치적 테러", "밀실 야합"이라고 비난하며 즉각 탈당을 선언했다. 이후에도 이 예비후보와 강 예비후보는 계속해서 "우리 정치 역사상 가장 구태스럽고 폭악스러운 정치 횡포를 자행했다", "모순과 궤변의 극치다"라며 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에도 이 예비후보를 지지하는 새정치민주연합 광주시당 당원 20여명이 집단으로 탈당계를 제출하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이 '광주에는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오만과 독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며 "광주 정신을 모독하고 광주 시민의 자존심을 짓밟는 망동"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경기 안산시장 전략공천을 둘러싼 여진도 계속되면서 지도부는 곤혹스런 상황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산시장 후보로 김 대표 쪽으로 분류되는 천정배계 제종길 전 의원이 전략공천되면서 김철민 현 시장 측과 박주원 전 안산시장 등이 서울 여의도 당사 앞에서 항의집회를 갖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잦은 공천 잡음으로 내홍에 휩싸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번 선거에서 세월호 참사 여파로 돌아서버린 무당파들의 표심을 끌어모을 수 있을지 귀추가 궁금하다.

세월호 여파에 바뀐 지방선거 공약
지역개발·무상 공약→ 안전대책 공약


세월호 여파로 6·4지방선거의 화두도 ‘지역개발 공약’에서 ‘안전대책 공약’으로 바뀌었다. 유권자들 역시 선거 초반 쏟아지던 지역개발이나 무상공약에서 안전관련 공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본격적인 선거전에 들어갈수록 안전과 관련된 공약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5일 시·도지사선거 및 교육감선거 예비후보자의 5대 핵심 공약을 홈페이지 정책·공약알리미(party.nec.go.kr)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공개했다. 다만 아직 예비후보 등록을 하지 않은 대부분의 현역 국회의원과 현역 자치단체장은 이번 공개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날까지 주요공약을 선관위에 제출하지 않은 일부 예비후보들의 공약 역시 이날 공개에서 빠져있었다.

광역단체장 예비후보들의 '5대 핵심공약'을 살펴보면 '안전대책'이 핵심공약으로 제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황식 새누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5대 핵심공약 가운데 '재난·재해에 강한 서울'을 첫번째 공약으로 소개했다. 김 후보는 "취임 즉시 주요시설물과 안전우려지역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유형별 '도시재난 안심매뉴얼'을 제정·보완하겠다"며 "도시안전 컨트롤타워도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당 이혜훈 예비후보도 재해·재난·안전사고·폭력 등 인재로 인해 발생하는 사고를 제로화하는 '인재제로 비전' 공약을 내놨다. 이 후보는 "단계별로 미비한 시스템을 개편하고 안전취약지역 등을 대상으로 예방대책을 추진할 예정"이라며 "시장직속의 전담조직을 운영하고 이원화된 상황실을 일원화하고 서울시내 모든 CCTV도 통합관리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새누리당 부산시장 후보로 선출된 서병수 의원은 '안심도시 부산'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재난의 예방·대응·복구에 대한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시-소방당국-경찰로 분산된 위기관리 대응체계를 일원화하는 것이다.

또 박철곤 새누리당 전북도지사 후보는 재해·재난 의료교육센터 설립, 보건복지부 사업 공모 지원을 통한 응급의료 전용헬기인 '닥터 헬기' 도입 등을 선언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시·도지사 후보자들 역시 안전공약을 큰 비중으로 다뤘다. 권선택 대전시장 후보는 '재난·범죄 추방, 안전한 대전'을 첫 번째 공약으로 제시했다. 권 후보는 "안전관리부서를 시장 직속으로 설치하고 각종 재난 발생(인명, 재난피해 등)을 매년 10% 감축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당 이상범 울산시장 후보도 "재해·재난 예방·관리·연구도시로 안전한 울산을 만들겠다"며 "재해·재난 관리 클리스터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