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컵 살인사건⑧] 컵과 5펜스 그리고 회수·재활용률

2017-08-25     윤혜경 기자
▲ (좌) 친환경 종이컵 ⓒ투데이신문 (우) 영국 화폐 및 주화 ⓒPixabay / 프리큐레이션

【투데이신문 윤혜경 기자】 “종이컵에 5펜스 부과하자!”

유럽은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한해 25억 개의 종이컵을 버리고 있으며, 이 중 재활용되는 종이컵은 400개당 1개꼴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에 지난해 10월 영국 자유민주당은 커피전문점에서 제공하는 종이컵에 5펜스(한화 약 73원)를 부과하자고 제안했다.

앞서 영국은 지난 2015년 10월부터 일회용 비닐봉투에 5펜스 요금제를 도입해 약 2달 만에 사용률을 80%가량 줄인 바 있다. 이같이 성공한 제도를 벤치마킹해 종이컵에도 동일하게 5펜스를 부과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영국 환경부 테레즈 코피 차관이 이 제안을 거절해 실효성은 없게 됐지만, 종이컵 줄이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프랑스 녹색정당(Europe Ecologie Les Vets, EELV)은 매년 47억3000만여 개의 플라스틱 컵 차니가 버려지고, 이 중 1%만이 재활용된다는 조사 결과에 착안해 ‘녹색성장을 위한 에너지 개혁’을 발의해 통과시켰다. 그 결과 오는 2020년 1월 1일부터 프랑스에서는 차니 사용이 전면 금지된다.

▲ 수거장에 쌓인 쓰레기들 ⓒ투데이신문

“우리나라도 강력한 규제 필요”

우리나라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아직 한국에는 일회용 종이컵 여리와 일회용 플라스틱 컵 차니 사용을 줄이기 위한 그 어떤 법적 근거도 마련돼 있지 않다.

대신, 몇몇 환경단체는 2008년 폐지된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의 부활이 일회용 컵 줄이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컵에 보증금을 매기면 사람들은 보증금을 받기 위해서라도 컵을 다시 그 매장에 돌려줄 것이며, 자연스럽게 회수율과 재활용률은 증가할 것이라는 게 이들 설명이다.

자원순화연대 김미화 사무총장은 “비용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타 브랜드에서 사용한 컵에 대해서도 보증금을 지원해주는 등의 보완을 거치면 컵 회수율은 충분히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사무총장은 “유럽이 일회용 컵에 대해 강제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그만큼 일회용 컵 사용을 금지해야 환경보전 등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판단한 것”이라면서 “우리나라에도 일회용 컵에 대한 규제를 더욱 강력히 해야 컵 사용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길거리에 버려진 일회용 컵 ⓒ투데이신문

실제로 서울시 측은 지난 2014년 3월 ‘일회용 컵 회수체계 시행사업’을 진행하고자 했다. 사실상 지난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시행됐던 ‘일회용 컵 보증금제’의 부활이었다. 그러나 여러 업체 측이 이를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서울 지역에서만 보증금이 지급돼 전국적으로 가격 형평성 문제가 대두될 위험성이 있는 데다가 보증금도 적정 가격 기준 없이 사업자 자율에 맡겨 혼란을 일으켰기 때문.

여러 가지 허점이 드러났던 일회용 컵 회수체계 시행사업. 서울시는 의견 수렴 후 다시 사업을 시행하기로 했다.

이후 서울시는 관련 업체를 불러 회의를 진행하는 등의 조사를 거쳐 그해 8월 해당 사업을 재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반응은 좋지 않았다. 컵 보증금 제도를 시행하면 업체는 그만큼 음료의 가격을 인상한 다음 고객이 컵을 반납할 시 보증금으로 책정된 금액만큼을 돌려줘야 하는데, 소비자들의 눈에는 단편적인 가격 인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결국, 서울시는 컵 보증금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환경부 또한 현재 컵 보증금 제도 시행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보증금 관리 책임자나 보증금의 법칙 명확성 등의 보완이 이뤄지고 충분한 검토를 거친 후에야 제도가 재시행될 수 있겠으나, 아직은 시행 계획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 컵을 수거하고 작업장으로 가는 모습 ⓒ투데이신문

"환경부, 새로운 자발적 협약 대상자 찾아 나서“

대신 환경부는 일회용품 자발적 협약의 내용을 보강해 협약 대상자를 다시 모집하고 있다.

2014년 체결한 협약에는 ‘2020년까지 매년 매장당 음료 판매량 대비 일회용 컵 사용량을 전년 대비 3%p 이상 줄이기’, ‘다회용 컵 사용자에게 가격 할인 혜택 제공’ 등의 사항이 담겨있다.

이번에 찾는 대상자는 다음과 같다. ‘2020년까지 일회용품 사용률을 2016년 대비 10% 감량이 가능한 업체’, ‘다회용 컵을 가져올 경우 가격 할인 혜택을 음료 가격의 10% 수준으로 제공할 수 있는 업체’. 환경부는 해당 내용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대상을 모집하고 있다. 다회용 컵 이용 혜택을 보다 더 제공함으로써 일회용 컵 사용 감소를 촉진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는 셈이다 .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 2012년 협약을 맺은 후로 새로운 브랜드들도 다수 등장했으며, 기존 협약에서 부족했던 점도 보완해 새로 협약업체를 모집하고 있다”고 밝혔다.

▲ 길거리에 버려진 일회용 컵 ⓒ투데이신문

“환경문제는 ‘개인’의 노력도 중요”

이처럼 정부의 제도적 차원도 중요하지만 일회용 컵 줄이기는 ‘개인’의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녹색소비자연대 이경미 부장은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가 폐지됐을 당시 드러났던 문제들을 꼼꼼히 체크하고 보완해 다시 시행하면 컵 회수율은 조금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컵의 사용량이 크게 줄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며 제도적 차원의 컵 줄이기 운동이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표했다.

그는 ‘비닐봉투’를 근거로 들었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재촉법)’ 개정법에 따라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비닐봉투에 돈을 지불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액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더구나 몇몇 업소에서는 잔돈이 없으면 봉툿값을 받지 않는 장면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봉툿값으로 매년 100억원이 넘는 돈을 써오고 있지만, 본래 취지와는 달리 비닐봉투의 수요는 크게 줄지 않고 있다. 비닐봉투에 5센트를 부과하자 사용량이 80% 가까이 줄었던 영국과는 사뭇 다른 결과다.

이 부장은 “제도를 강제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컵을 사용하는 시민들의 인식과 이를 줄이려는 자발적인 참여”라고 강조했다.

컵의 문제를 인식하고 기존의 종이컵을 대체할 만한 친환경 종이컵도 개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종이컵은 물이 쉽게 스며들지 않도록 내부를 플라스틱으로 라미네이팅한다. 컵 안에 플라스틱이 찰싹 붙어있기 때문에 자연 생분해에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이를 염두에 두고 몇몇 업체들은 더 빨리 분해되는 종이컵을 개발했다. 합성지가 아닌 순수 크라프트 펄프 원단만을 사용했고, 내부에는 플라스틱이 아닌 초음파 접착 코팅 기법을 사용했다. ‘어차피 쓸 거라면 착하게 쓰자’는 마인드이다.

자연닮 김경민 대표는 “표백을 거치지 않은 친환경 종이컵이기에 인체에도 무해할뿐더러, 일반 종이컵보다 2배 정도 빨리 자연 생분해되는 장점이 있다”고 밝혔다.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컵보다는 자연에 그리고 인체에 ‘착한’ 제품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무분별한 남용은 대개 좋지 않은 결말을 초래한다. 마구잡이로 사용하다 보면 후손에 물려줄 자연환경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 친환경 종이컵 ⓒ투데이신문

※ 본 기사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콘텐츠 크라우드 펀딩플랫폼 <스토리펀딩>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