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탄 쏘아 올린 ‘주택 후분양제’ 약일까 독일까

전세계 유례없는 ‘선분양제’ 소비자에겐 이미 ‘공공의 적’ 구원투수로 등판한 ‘후분양제’, 건설업계·시민단체도 ‘불만’

2018-08-17     홍세기 기자
ⓒ뉴시스

【투데이신문 홍세기 기자】 지난 몇 년간 건설사의 주택 부실시공이 급증하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져왔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투기 세력이 유입되고 집값이 큰 폭으로 급등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혼탁해졌다. 이에 부동산 시장 안정과 아파트 구매자들의 불만을 잠재울 구원 투수로 아파트를 지어놓고 판매를 하는 ‘후분양제’ 도입을 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지난 1977년 주택 공급률을 확대하기 위해 ‘선분양제’가 도입 된 이후 건설사는 자금조달의 대체 창구로 활용해 왔다. 그동안 주택공급 확대, 부동산 시장 활성화 등 나름의 순기능이 작용되면서 제도가 유지돼 왔지만 이미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은 100%를 뛰어넘은 상황이다. 또 투기를 통한 부동산 과열현상이 시장 안정성을 해치면서 전세계 유례없는 ‘선분양제’는 주택시장의 ‘공공의 적’이 됐다. 

선분양제도의 문제점은 분양계약 후 입주까지 모든 과정이 공급자인 건설사에 의해 진행된다는 점이다. 무분별한 설계변경, 부실자재 등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경우가 발생해 입주민들의 불만을 샀다. 또 아파트 건설 비용까지 계약금과 중도금 등 주택가격의 60~80%를 준공이전 소비자가 납부해 부담했다.

분양 이후 입주까지 2~3년이 걸리지만 그 기간 동안 발생하는 개발계획 지연, 업체 도산, 저가자재 사용, 부실시공 등 위험 요소도 소비자의 몫이었다. 

그동안 소비자는 아파트가 들어서는 장소와 모델하우스에서 확인한 아파트 구조 등을 보고 아파트를 구매했다. 그러다보니 2~3년이나 지나 입주 할 때가 되면 준공 전 건설사 부도 위험, 부실 시공, 주변 환경 변화에 따른 시세 변화 등 다양한 문제와 불만이 제기해 왔다. 

구원투수 격인 후분양제의 장점은 견본주택(모델하우스)이 아닌 실제 아파트 단지의 층, 향, 구조 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깜깜이 분양’을 피할 수 있다. 또 주택건설 시장에서는 강력한 투기 차단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부동산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된다.

특히, 실수요보다 투기 목적이 주를 이루는 분양권 전매가 잇따라 부동산 과열 양상을 부추겨 왔던 선분양제에 비해 후분양제는 분양권 개념이 없어 투기 수요 유입을 줄일 수 있고 주택 가격 변동성도 낮아진다.

후분양제 도입 시동 건 정부

최근 국토교통부는 후분양을 하는 민간 건설사에 공공택지를 우선 공급한다는 내용의 ‘2018년 주거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계획안에서 정부는 공공과 민간 부문으로 나눠서 후분양제 활성화 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도시공사(SH), 경기도시공사가 공급하는 공공 부문부터 적용해 단계적으로 오는 2022년까지 공공분양 주택의 70%를 후분양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LH는 올해 분양하려던 시흥 장현, 춘천 우두 등 2개 단지를 내년 후분양으로 공급하기로 했으며, SH는 이미 공정률 60%에서 후분양하고 있다.

또 민간 부문은 공공택지 우선 공급 및 기금대출 지원 강화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해 후분양제를 도입하며, 기금·대출보증 지원을 확대 강화하는 방식으로 소비자의 금융 부담을 완화해 후분양제도의 안착을 유도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민간 후분양 사업자에게 올해 화성 동탄2, 평택 고덕, 파주 운정3, 아산 탕정2 등 4곳에서 택지를 공급할 계획이다. 

후분양 기준은 공정률 60%로 일단 결정됐다. 공정률 60%는 골조가 거의 완성되는 단계로, 현재는 공정률 80%가 후분양의 기준이다. 공정률 80%면 벽면 타일 등 마감재까지 거의 다된 수준이다.

예고된 헛점, 하자율·분양가 상승

후분양제도 도입에 가장 큰 탄력을 준 ‘하자’ 문제는 공정율 60%로 확인 할 수 없어 ‘말로만 후분양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준공 후 하자로 인한 민원은 누수나 벽지‧타일 시공 불량, 외장재 마감 불량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공정율 60%에 분양하게 되면 골조만 만들어진 상태로 실제 소비자들이 불만을 크게 가지고 있는 마감을 확인 할 수 없어 불만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또 아파트 착공 직전에 분양하는 선분양제도는 아파트 입주 때까지 2~3년 동안 계약금과 5~6차례의 중도금, 잔금으로 나눠 분양금액을 건설사에 지급하면 됐다. 따라서 분양가의 10% 수준인 계약금만 마련한다면 남은 중도금은 대출을 받아 나눠 낼 수 있어 큰 목돈이 없더라도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 중인 후분양제는 공정율 60%에 이르면 분양을 하기 때문에 분양금액 지불 기간이 6~12개월로 짧아져 자금력이 없는 소비자는 자기 집 마련이 어려워 질 수 있다.

국토부는 당초 공정률 80%선에서 분양하는 방안도 검토하다 60%로 낮춘 이유로 “계약부터 입주 때까지 기간이 짧아 자금마련이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에 국토부는 후분양제 도입을 추진하면서도 자금 마련이 어려운 신혼부부나 청년과 같이 사회보호계층에 공급하는 아파트는 후분양 대상에서 제외했다.

또 자금 부담을 느끼는 수요자를 위해 금융지원 강화 방안도 내놨다. 디딤돌대출 지원요건을 충족하는 자가 후분양 주택을 구입하면, 디딤돌대출 한도 내에서 중도금대출을 지원키로 한 것. 하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이유는 디딤돌대출이 연소득 부부합산 6000만원 이하로 제한돼 있으며, 대출 한도도 2억원으로 한정돼 있어 수도권에서의 새 아파트 구입은 디딤돌대출로 어렵기 때문이다.

아울러 분양가 상승도 소비자들의 불만을 살 수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지난해 10월 용역보고서를 통해 후분양제를 도입할 경우 사업비 대출 이자부담이 커져 분양가가 약 3~7% 상승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는 소비자들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선분양제 하에서 공사비를 계약금, 중도금 등으로 소비자가 부담하는 반면,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완공 때까지 건설사 스스로 모든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발생하는 만큼 중간 비용이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돼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한주택건설협회 관계자는 “선분양제를 시행할 경우 많게는 수천억 원에 달하는 공사비를 건설사들이 직접 마련하거나 혹은 대출로 해결해야 한다”며 “대출금 이자가 전부 분양가에 산입, 주택가격 상승이라는 새로운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도 “초기에 사업비 대출이 이뤄지는 만큼 이자비용 등을 감안해 분양가가 오를 수 있다”면서 “다만 공공택지의 경우 후분양제를 도입하더라도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고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HUG의 분양보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큰 폭으로 오르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주택 물량이 줄어들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나온 HUG의 보고서에서도 후분양이 의무화되면 건설사의 자금조달 비용이 증가해 민간 공급 물량이 연평균 8만6000~13만5000가구가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건설업계·시민단체, 대결 구도…보완 필요성 제기

건설업계와 시민단체는 정부가 추진 중인 후분양제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건설업계는 후분양 시 공사에 필요한 자금을 자체 또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으로 조달해야 하며 상대적으로 분양가가 인상되거나 대기업 위주로 시장이 재편돼 소비자의 선택권이 오히려 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가 후분양 시 HUG의 대출보증 한도도 더 늘리고, 중소 건설사들도 대형 건설사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표준 PF 대출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또 중견 중소건설사의 존립 위험 등을 우려하고 있다. 

김대철 한국주택협회 회장은 지난 4월 기자간담회에서 “후분양을 하면 우량·비우량 회사 간 자금 조달 능력에 차이가 있어 중견 업체들이 충격을 크게 받을 것”이라면서 우려를 표명하면서 “언젠가 하더라도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경실련 등 시민단체 등은 소비자의 선택권 보호, 부실시공 예방과 부동산 투기 근절 등의 장점을 거론 하며 한발 더 나아가 전면적인 후분양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시민단체 측에서는 아파트 후분양제로 해도 분양가에는 큰 차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바 있다. 선분양시 많은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후분양제 도입시 소비자 부담은 더 줄어들 것이란 해석이다. 

지난해 10월 경실련이 발표한 ‘LH 공급 후분양아파트 분양가 상승률 0.57%’라는 보도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4년도 LH공사가 수원 호매실과 의정부, 세종 등 후분양을 실시한 5개 단지의 분양가 내역을 분석한 결과로 후분양에 따른 분양가 상승률은 총 사업비의 0.57%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실련은 이를 토대로 전면적인 후분양제 도입을 주장했다. 

또 지난해 2월에도 경실련은 ‘아파트 후분양제, 진실은 이렇습니다!’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중소 건설사는 이미 브랜드 인지도가 낮아 분양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오히려 주택을 잘 지어 품질이 우수하다면 대형 건설사와 경쟁이 가능하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특히, 경실련은 지난 6월 국토부가 후분양제 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자 “업계 충격을 운운하며 생색내기용 후분양을 실시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 보호와 정상적인 주택 공급제도 개선을 위해 전면적인 후분양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도 지난해 국정감사 자리에서 “후분양제 도입에 따른 분양가 인상의 산출 근거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조달금리로 6.4~9.3%를 제시했지만 전문가들에게 확인한 결과 실제 금리는 3~4% 수준이며, HUG 주택분양보증을 받은 경우 자금조달 금리는 더 낮아진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정 의원은 “신용등급 C급 미만 건설사는 실제 부실·하자 공사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오히려 후분양제 실시로 부동산 시장의 건전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