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걱거리는 한미동맹, 괘씸죄 걸려들었나

5.24 조치 해제·남북군사합의, 美 코털 건드렸나 강경화 발언, 나비 몸짓이 워싱턴에 태풍 만들다 남북군사합의에 발끈한 폼페이오, 속내는 종전선언 대신 꿈꾸는 미국의 전략은 과연 대북 제재 완화 위한 한단계 걸음 목표하나

2018-10-12     홍상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24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롯데 뉴욕 팰리스 호텔에서 한미 FTA 개정협정문 서명식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대북 문제 해법을 두고 우리 정부와 미국이 다소 갈등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10년 5월 천안함 사태 이후 발표한 우리 정부의 독자적인 대북제재인 5.24 조치 해제에 대해 우리 정부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견제에 나섰다. 또한 남북군사합의를 놓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누리꾼들은 다소 굴욕적인 상황이라면서 개탄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속내가 무엇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지난 1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다소 원론적인 대답을 했다. 하지만 이는 우리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다. 이날 국감에서 강 장관은 5.24 조치 해제를 관련 부처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 발언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오후에는 사실이 아니라고 대국민사과까지 했다. 5.24 조치를 해제한다는 것은 관련국인 미국과의 협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야당은 걸고넘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10일(현지시각) 기자들에게 5.24 조치 해제는 미국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미국이 다른 사안에 비해 대북 제재 해제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트럼프의 ‘승인’ 발언

또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도 남북군사합의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외통위 국감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남북군사합의에 대해 폼페이오 장관이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냐고 강 장관에게 묻자,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로써 폼페이오 장관이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는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다. 이처럼 미국이 대북 제재 완화와 남북 군축 합의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기존과 판문점 선언이나 평양공동선언과는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해 상당수는 동조하거나 공감을 보여왔다. 그런데 대북 제재 해제 및 군사합의 사항에서만큼은 민감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자국의 주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북 제재 완화와 남북군사합의의 최종적인 승인은 어차피 미국이 해야 하는데, 미국을 배제한 채 우리 정부와 북한이 주도적으로 합의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견제하지 않으면 앞으로 지속적으로 우리 정부와 북한이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미국의 통솔을 벗어날 것이라는 위기감이 작동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을 항상 미국의 통솔하에 둬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우리 정부의 통솔 아래 북한이 들어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은 현재 북한을 미국의 예측이 가능한 범위 안에서 움직이게 하기 위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덜컥 대북 제재 해제와 남북군사합의를 이뤄낸다면 북한은 미국의 말을 듣기보다 우리 정부의 말을 들을 것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미국이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 중 하나다. 따라서 우리 정부를 견제함으로써 북한을 미국의 통솔하에 두겠다는 전략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 ⓒ뉴시스

미국의 대북 전략은

또 다른 이유는 비핵화 협상 진전 문제다. 북한이 비핵화의 길로 접어든 것은 그동안 대북 제재를 계속 해왔기 때문이고, 이로 인해 김 위원장은 개혁·개방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 비핵화 테이블로 나왔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대북 제재 해제와 남북군사합의를 이뤄내면, 미국이 추구하는 비핵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5월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장거리 미사일 발사대 폐쇄, 미군 유해 송환 등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종전선언을 뒤로 미룬 것은 북한을 조금 더 진전된 비핵화의 단계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덜컥 대북 제재 해제와 남북군사합의를 이룰 경우, 자칫하면 북한이 비핵화 단계를 접을 수도 있다. 이를 염려한 미국으로서는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최종적인 목표는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인데, 그에 앞서 남북 경협의 물꼬가 열리기 시작한다면 비핵화에 차질이 빚어질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정가에서는 또 다른 이유로 미국이 선택한 상응조치가 종전선언이 아니라 대북 제재 완화이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북 제재 완화를 미국이 승인하는 형식을 취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종전선언은 우리 정부와 북한이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지만, 미국으로서는 정치적 부담을 안아야 한다. 미국 내 대북 강경론자의 목소리는 아직도 큰 상황에서 비핵화가 진척되는 도중에 종전선언이 이어진다면 미국 내 대북 강경론자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 여론이 아직도 김 위원장을 신뢰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북 강경론자의 목소리가 더욱 강해진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다. 반면 대북 제재 완화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정치적 부담이 상당히 줄어든다. 대북 제재 완화를 밝힌 후, 북한이 비핵화 이행을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고, 미국의 경제적 부담도 덜 수 있다. 이에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7일 평양을 방문할 때 내놓은 상응조치가 종전선언이 아닌 대북 제재 완화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가 폼페이오 장관 방북 이후 갑작스럽게 대북 제재 해제를 꺼내 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즉,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8일 문 대통령을 만나 상응조치에 대해 귀띔했고, 이에 우리 정부가 대북 제재 해제로 발 빠르게 움직인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상황이 워낙 공세적으로 이뤄지면서 미국의 입장에서는 ‘산통을 깨는 행위’로 판단, 견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지난 8일 북한 조선중앙TV가 공개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면담 장면 ⓒ조선중앙TV 캡처

상응 조치에 종전선언 대신 무엇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정부와 미국, 북한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상응조치가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상응조치가 과연 종전선언일지, 아니면 대북 제재 완화일지는 아직 판가름하기 섣부른 감이 있다. 11월 중간선거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야 하고, 그 자리에서 미국은 이미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에 대한 사찰을 허용한 북한에게 선물을 안겨줘야 한다. 그것이 어떤 것일지는 아무도 예측하기 힘들지만, 대북 제재 완화로 점점 그 윤곽은 드러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