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부, 그게 뭐 어때서③] 한 아이를 기르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2020-05-07     전소영 기자
미혼부가정지원협회 김지환 대표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미혼부와 그 자녀는 우리 사회 사각지대 중에서도 가장 끝으로 배제된 존재 중 하나다. 아빠임에도 불구하고 미혼부 혼자서는 아이의 출생신고조차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없고, 이로 인해 미혼부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존재한듯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가 돼버렸다. 아이를 데리고 일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은데다 보육시설 이용 비용도 만만치 않아 생활고에 시달리는 일도 비일비재 하다.

‘사랑이 아빠’ 미혼부가정지원협회 김지환 대표는 2014년 추운 봄날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거리로 나서 이 같은 미혼부들의 혹독한 현실을 수면 위로 끄집어 냈다.

김 대표는 아이를 홀로 기르는 미혼부다. 딸의 생모는 출생신고 전 떠났다.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아이를 맡길 곳은 마땅치 않았다. 먹고살아야 했기에 아이를 몰래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지하철 택배 일을 하며 어렵사리 이어갔다. 그러나 얼마 못가 들키며 일자리마저 잃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김 대표는 곤히 잠든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손수 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사랑이 아빠는 우리나라의 많은 미혼부들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김 대표의 사연을 계기로 미혼부 출생신고 절차를 간소화한 ‘사랑이법’이 도입됐다. 그러나 여전히 미혼부 출생신고의 벽은 허물어지지 않았다. 김 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혼부가정지원협회 꾸려 미혼부의 출생신고와 더불어 한부모가정의 경제적, 심리적 지원 등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지금에서 더 나아가 한무모가정의 자립을 돕는 한편 그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기구를 설립하길 원한다.

본지는 김 대표를 만나 현행 미혼부 출생신고 관련법 문제를 진단해 보고 그가 꿈꾸는 한부모가정의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위한 그의 그림을 함께 그려봤다.

미혼부가정지원협회 김지환 대표와 딸 <사진 제공 = 김지환 대표>

Q. ‘미혼부가정지원협회’는 어떤 곳인가.

미혼부를 비롯한 모든 한부모가정을 돕는 단체다. 홀로 운영하기 때문에 시간도 돈도 제한적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돕기보다는 한번 인연을 맺은 분들이 협회와의 만남을 발판 삼아 지금보다는 조금 나은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힘쓰자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미혼부들이 처한 상황이 다 제각각이다 보니 도움을 주는 부분도 다 다르다. 예를 들어 집이 없으신 분들을 위해서는 보증금을 지원해 주고, 병원 치료가 필요하신 분들은 의료비를 보태드린다. 무엇보다 출생신고 관련 법정 소송에 관한 지원이 가장 많다. 과거에는 서류 작성부터 법원 접수까지 제가 직접 도왔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시는 분들이 많아지다 보니 현재 몇몇 분들은 변호사들을 연결해드리고 있다. 이 밖에도 전문 상담가는 아니지만 한부모가정 부모들이 속풀이할 수 있도록 대화 상대가 돼드리거나, 지금은 시국 탓에 잠시 보류된 상태이지만 여행을 보내드리기도 한다.

Q. 이 같은 협회를 꾸리게 된 계기가 본인과 같은 미혼부를 돕기 위해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쩌다 홀로 아이를 키우게 됐나.

아이 엄마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이었다. 본인이 많이 아프고 힘들다 보니 아이도 미래를 약속했던 연인도 모든 걸 놓아버린 것 같다. 당시 저는 그분을 구제할 힘도 능력도 없었다. 이겨낼 희망조차도 주지 못 했던 거 같다. 때문에 아이 엄마의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 않고, 그분이 그렇게 떠난 것은 제 잘못이 절반이라고 생각한다.

Q. 아이를 홀로 기르겠다고 했을 때 주위의 만류는 없었나.

물론 있었다. 부모님의 경우 기르지 말라고 하신 건 아니지만 돈 벌어서 자리를 잡을 동안 몇 년 만이라도 보육시설에 아이를 위탁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그것이 더 나은 결정이라고 판단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더 중요한 가치인가를 따져볼 때 부모님과 나의 생각은 매우 달랐고, 결국 연락을 끊어버리는 방식으로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관계 회복된 상태다. 부모님 뿐만아니라 베이비박스를 만드신 이종락 목사님 외에 모든 지인이 제가 홀로 아이를 기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Q. 그럼에도 아이를 기르기로 결정한 이유는.

시대가, 문화가 바뀌어서인지 돈이 없으면 아이를 기를 수 없는 사회가 됐다. 가난하고 평범하지 못한데 아이를 낳으면 죄가 됐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건 세상이 잘못됐다고 생각이 들더라. 안 힘들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당시가 제 인생에서 가장 가난할 때였고 ‘내가 죽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심정이 오락가락할 때 아이가 자라는 매 순간순간을 볼 때면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미혼부가정지원협회 김지환 대표 ⓒ투데이신문

Q. 김 대표와 같은 미혼부가 전국에 어느 정돈가.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기준에 따르면 미혼부 가정으로 등록된 가정만 8900명대로 확인됐다. 현재 소송을 진행하고 있거나 준비 중인 가정까지 더하면 통계치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해마다 현황 파악을 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제가 속해있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여성가족부 등 관계 기관에서 현황 파악을 위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가정 가운데 아이를 기르다가 포기하는 가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을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결국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파악을 못하니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고 결국에는 포기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Q.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출생신고’가 가장 큰 고민거리라고.

그렇다. 출생신고는 단순히 나라에서 지원하는 복지나 제도의 혜택을 받고 못 받고의 문제가 아니다. 엄마 없이 자라게 하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 매우 미안한 일인데 태어나자마자 처음 하는 일이 국가를 상대로 하는 소송이라는 게 가슴이 아프다. 태어나면 당연하게 인권과 평등권을 보장받게 돼있는데, 미혼부 가정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이것저것 다 따져보고 나서 그제야 인권을 보장해 주는 상황은 분명 잘못된 것 아닌가.

Q.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편이라고.

‘사랑이법’을 기준으로 출생신고를 접수하면 법원에서 서류를 검토하고 보정명령을 내리게 된다. 그중 하나가 유전자 검사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1~2주가량 필요하고, 검사 결과를 법원에 제출해 검토하는 과정도 1~2주가 소요된다. 또 아이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이한테 주민등록번호가 왜 필요한지 등을 글로 적어 제출해야 한다. 글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닌 이상 판사를 설득하고 납득시킬 수 있는 문장력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에 이 작업이 쉽지 않다. 판사 역시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모호한 표현이나 제출 서류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 보충 설명이 필요할 경우 등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보정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을 모두 거치고 나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6개월 정도 걸린다. 사실 그 안에 된다는 보장도 없다. 출생신고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왔는데 계속 어려움에 부딪히다 보면 주저앉기도 하고, 지금 당장 입에 풀칠이 급하다 보니 소송을 미루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Q. 일각에서는 그럼에도 미혼부 출생신고에 필요한 일련의 절차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는 지적도 있다.

절차가 아예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친부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데는 아빠들도 동의한다. 다만 그 일련의 과정들이 아이들의 인권보다 앞서있다는 점을 문제 삼는 것이다. 출생신고에 필요한 행정적 절차보다 우리 아이들의 인권과 평등권을 우선적으로 지켜주길 바라는 것이다.

Q. 미혼부 출생신고 완화를 위해 관련 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곤 있으나 진전이 쉽지 않은데.

법률을 심사하고 개정하는 분들이 모 혹은 부에 관계없이 출생신고를 허용할 경우 관계법 근간을 흔들고 기존의 가족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마련된 법률과 부딪힐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 이 같은 법들이 인권과 평등권을 보장하는 헌법을 흔들고 있는 꼴이기 때문에 반드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과 절차가 복잡할지라도 갓난아기가 감내하고 희생하기보다는 어른들이 일을 좀 더 많이 하고 번거로운 게 맞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다.

Q. 2015년에 미혼부 출생신고를 간소화 한 ‘사랑이법’이 도입됐지만 미혼부 출생신고 문제 해결 효과는 미미하다고.

아빠들이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굉장히 다양하다. 때문에 모든 경우에 사랑이법을 적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제가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기에 사랑이법을 적용받을 수 있는 사례는 미혼부가정의 1/4 정도다. 나머지는 전혀 다른 소송을 해야 한다. 지금은 유전자 검사만 가지고도 친자 확인이 가능해지니 그걸 통해 아이들의 기본권을 우선적으로 확보해 주고 부자 관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는 그 후에 따져보자는 게 미혼부들의 의견이다.

미혼부가정지원협회 김지환 대표 <사진 제공 = 김지환 대표>

Q. 출생신고를 못함으로써 배제되는 지원·제도 등 복지 문제도 몹시 큰 듯하다.

출생신고 여부가 너무 큰 문제이다 보니 사실 아버지들은 경제적 지원이나 제도와 같은 부수적인 문제는 다 떠안고 갈 테니 주민등록번호만 내달라 하는 상태다. 그렇지만 지원·제도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현재는 미혼부 복지의 상당수가 경제적인 부분에 치중돼 있는데 심리적 복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갓난아기부터 6세 정도까지는 어려움은 있겠지만 누구든 닥치면 할 수 있는 육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점점 아이가 마음과 생각이 성장하면 엄마의 부재를 느끼게 된다. 아빠가 나를 사랑하는 걸 알지만 부족함을 느끼게 되고 점차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이와 아빠 모두 우울감을 느끼게 된다. 이때 지자체가 나서서 성인들 건강검진해주듯 심리 검사를 해주면 좋을 것 같다. 이 같은 심리적 복지를 지원해 주는 것이 생계비 몇 푼 보태주는 것보다 마음이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게 더욱 생산적이고 효율적일 수 있다.

Q. 현재 출생신고가 안 된 미혼부의 자녀이더라도 받을 수 있는 국가적 지원책이 일부 마련돼 있긴 하다고.

그렇다. 과거보다는 제도가 좀 보완이 돼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된 분들에게 임시적으로 주는 번호를 ‘사회복지전산번호’를 출생신고가 안 된 미혼부 자녀에게 부여한다. 이 번호가 있으면 아이는 보건소와 어린이집 등에 갈 수 있고, 아동수당도 지급된다. 그런데 문제는 지역에 따라 사회복지전산번호를 부여 기준이나 여부가 다르고, 이와 관련된 제도에 대해 지자체도 모른다는 것이다. 최근에 부산에서 만난 한 미혼부는 매달 아이 보육비로 60만원가량을 내고 있었다. 사회복지전산번호만 있었더라도 40만원 정도는 줄일 수 있는 경우였다. 그 미혼부와 함께 주민센터를 방문해 사정을 알리고 사회복지전산번호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비슷한 이유로 전국적으로 많이 돌아다녀 봤는데 잘 모르는 지자체도 있었고 처리 방법도 다르더라. 실무진들은 미혼부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를 가능성이 충분히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제각각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상급기관에서 관련 규정을 통일 시켜 안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Q. 20대 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안이 여러 건 발의됐지만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고 있는데.

기존의 사랑이법을 없애고,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족관계등록법)에서 ‘혼인 외 자의 경우 모가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는 규정을 모 또는 부로 바꾸는 과정이 필요하다. 최근 사랑이법을 만들어 준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을 만나 ‘사랑이법을 만들어줘서 정말 감사하지만 이를 적용받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보완 할 수 있는방법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서 의원께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으니 분명 해주실 거라 믿는다.

Q. 향후 미혼부가정을 위한 계획이나 바람이 있다면.

그간 1인 시위를 해왔었는데 국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때문에 멈춘 상황이다. 상황이 나아지면 우선 시위를 재개할 생각이다. 더 나아가서는 미혼과 기혼, 모와 부에 관계없이 그냥 ‘한부모가정’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 SPFO(Single Parents Family Organization)이라는 이름으로 한부모가정의 자립을 돕고, 그들이 누군가한테 도움이 되는 존재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구를 설립하고 있다. 부모는 밤낮 언제든지 아이 맡겨 놓고 걱정 없이 일하고,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놀이공간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