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 강화 ‘국가보안법’ 통과에 다시 거리로…끝나지 않은 홍콩 절규

2020-06-03     전소영 기자
ⓒAP/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홍콩의 2019년은 어느 해 보다도 뜨거웠다.

지난해 3월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은 범죄인을 중국 본토로 강제 송환 가능하도록 하는 ‘범죄인 인도법’(이하 송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홍콩 최고 법률에서는 중국에서 범죄로 인정될지라도 홍콩 법률상 범죄로 인정되지 않으면 해당 범죄를 저지른 홍콩 시민을 중국에서 처벌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지만, 송환법이 적용될 경우 본토 송환이 가능해지게 된다.

송환법이 자칫 중국 정부가 자신들의 체제에 반하는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송환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며 홍콩 시민들은 격렬히 반대했다. 시민들은 열일 제쳐두고 검정 옷에 마스크, 노란 헬멧을 쓴 채 거리로 나섰다. 경찰이 곤봉과 최루탄, 고무총 등을 동원해 강경 대응에 나섰지만 시민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게 홍콩 정부와 시민들 사이에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됐다.

그로부터 1년여, 홍콩 시민들은 새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중국은 홍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국가보안법’(이하 보안법) 추진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홍콩 시민 대다수가 반기를 들었지만 홍콩 정부까지 두둔하고 나서며 홍콩은 새로운 갈등 국면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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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법서 업그레이드된 보안법

지난달 22일 중국은 전국인민대표회의(이하 전인대)에서 홍콩 의회 대신 보안법 초안을 공개하고, 2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이를 통과시켰다.

보안법은 중국이 홍콩 내에서 발생하는 분열·전복·테러리즘 등 활동에 대한 처벌을 강화함으로써 홍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보안법에는 △국가 정권 전복 및 테러리즘 활동 금지·처벌 △외국 세력의 홍콩 내정 개입 금지 △국가안보 교육 강화 △홍콩 내에 집행기관 설치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이 법이 시행되면 지난해 홍콩에서 발생한 송환법 반대 시위와 같은 대규모 시위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송환법 시위에서 중국 국기를 불태우고, 기업과 은행에 화염병을 던졌던 행위 등이 모두 보안법상에서 금지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범민주 진영의 인사들이 선거에 참여하는 것도 어려워 진다. 홍콩에서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선거관리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하는데 보안법의 ‘외부 세력 개입 금지’ 조항을 근거로 범민주 진영 인사의 선거권이 박탈될 가능성이 있다.

보안법은 송환법보다 한층 업그레이드 됐다고 평가된다.

보안법에 반대하는 ‘한·홍 민주동맹’ 상현 활동가는 상현 활동가는 “송환법은 홍콩에서 발생한 범죄자를 중국으로 송환하는 것이지만 보안법은 중국 정부가 아예 홍콩 내 기구를 설치해 법을 집행하겠다는 것”이라며 “홍콩 시위가 달아오르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보안법을 강경하게 밀어붙여 이 상황을 돌파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시스템을 지키려 하지 않는 중국 정부의 태도가 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제민주연대 나현필 사무국장은 “보안법을 도입하려는 시도는 2003년에도 있었다. 당시에도 시민 반대로 무산됐다”며 “중국은 일국양제 시스템보다도 국가의 이익을 관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 지난해 송환법 시위가 이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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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하는 국제사회

홍콩 시민 다수는 보안법에 반대한다. 홍콩 명보가 지난달 25∼29일 15세 이상 홍콩인 8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4%가 중국이 홍콩 의회인 입법회를 우회해 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37.2%는 이민을 고려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에도 홍콩 정부는 공식적으로 보안법에 대해 환영 의사를 밝혔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홍콩 보안법의 입법 취지는 체제 전복과 분리 시도, 테러활동, 외세 개입 등을 예방·제지·처벌하는 것이다”라며 “이는 위법한 범죄행위와 활동을 하는 극소수에게만 영향을 미칠 것이다. 대부분 시민의 생명과 자산, 기본권, 자유는 보장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모든 국가에서 장기적인 국가안보 확보 및 민생 안정을 위해 보안 관련 법률의 필요성을 느낀다”며 “홍콩 사회가 하루라도 빨리 안정을 찾고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앙정부(중국 정부)가 보안법을 만든 것”라고 두둔했다.

보안법에 대해서도 세계 곳곳에서 지지와 연대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영국·캐나다·호주는 공동성명을 통해 “보안법은 중국과 홍콩의 일국양제의 틀을 훼손하는 한편 홍콩 사회의 깊은 분열이 야기될 것”이라며 “이는 유엔에 제출된 홍콩반환협정 원칙에 따른 국제 의무에도 어긋난다”고 밝혔다.

특히나 미국은 국가보안법을 제정할 경우 일국양제를 조건으로 부여한 홍콩에 대한 관세 혜택 등 특별지위를 박탈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렇게 되면 홍콩은 미국 수출 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품목에 따라 최대 25%의 징벌 관세를 부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보완법을 철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보안법 반대 시민단체는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여 제정한 이상 국제사회에서 항의 움직임이 있더라도 중국이 이를 쉽게 뒤집진 않을 것이며, 길고 힘든 싸움이 될 것 같다고 예상했다.

더불어 지난해 송환법 시위가 한창일 때도 미국에서 홍콩 인권법을 통과시키며 압력을 가했지만 무협 협상이 1단계 합의로 마무리되면서 결과적으로는 홍콩 문제로 중국을 압박하는 모양새는 아니었기 때문에 제재가 힘 얻기는 사실상 쉽지 않을 거라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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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연대가 관건

한국의 시민사회는 이번에도 홍콩 시위에 지지·연대로 뜻을 함께하고 있다.

‘홍콩 국가보안법 폐기를 촉구하는 한국 시민사회단체’는 홍콩 시민들의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마저 말살하려는 국가보안법 제정을 규탄하고 중국 정부에 폐기를 촉구하고 나섰다.

단체는 “중국정부가 홍콩 기본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직접 보안법 제정에 나선 것은 중국정부 스스로가 일국양제를 근간부터 뒤흔들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정부는 홍콩에서 직접 국가정보기구를 설치·운영하면서 “국가안보에 위해가 되는 행위와 행동을 예방·금지·처벌 수 있으며 외국세력의 관여를 금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며 “앞으로 홍콩 시민들은 정부 비판 시위 참여나 SNS에 글을 올리는 것까지도 처벌될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지내게 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단체는 “홍콩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연대해온 한국의 시민사회는 홍콩 기본법을 무시하고 홍콩 시민들의 인권을 억누르는 보안법을 직접 통과시킨 중국정부를 규탄한다”며 “이는 모든 인류 함께 지켜야 할 존엄과 양심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보안법 반대 시민단체들은 이번 보안법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상현 활동가는 “중국 대사관에서 한국 정부에 보안법에 관한 지지 협조를 구했다는 얘기가 있다. 때문에 이번에도 한국 정부는 여러 이해관계로 인해 보안법 반대 목소리를 내긴 어려울 것”이라며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더불어 정치권에서도 움직여 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인권문제 원칙을 고민하는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나현필 사무국장은 “중국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 모두에게 난제라고 생각된다. 국가의 관계, 한반도 정세 등을 고려하면 정부도 시민사회도 쉽게 의견을 낼 수 없다”며 “현재는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단계에 있다. 어렵겠지만 인권문제에 대한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어디까지 고수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정부와 시민사회의 입장은 다르겠지만 최소한 정부가 고민하는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