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미라 냉동인간②] 욕망 위에 쌓아올린 미완의 꿈

냉동인간, 과학기술에 대한 장밋빛 전망의 산물 기하급수적 기술 발전, 죽음‧질병 극복 기대 높여 미완성 기술로 대중 욕망 부추긴다는 비판 불가피 기술 완성돼도 특권층에게만 향유될 것이라는 우려 “냉동인간 보존, 당사자 결정이 절대적인 조건 돼야”

2020-09-24     박주환 기자
지난 5월 국내에서도 러시아 업체를 통해 첫 냉동인간 보존이 이뤄졌다 ⓒ크리오아시아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냉동인간이라는 개념을 창시한 사람은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에틴거다. 에틴거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벨기에 아르덴 숲 전선에서 다리를 절단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 다행히도 그는 골이식 수술을 통해 신체를 보존하는데 성공했고 기술이 가진 가능성과 확장성에 눈을 떴다. 

그는 문명이 유지된다면 언젠가는 의학을 통해 대부분의 질병이 극복 가능할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1964년 ‘냉동인간(The Prospect of Immortality)’이라는 책을 펴내며 인체의 냉동보존을 처음 제안했다. 

이후 에틴거는 1976년 미국의 디트로이트에 냉동보존연구소를 세웠다. 과학기술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바탕으로한 그의 행보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대중적으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냉동인간의 부활 가능성을 신뢰한 그는 2011년 생을 마감하며 자신의 연구소에 냉동보존 됐다. 그의 연구소에는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도 함께 잠들어 있다.  

에틴거의 예견대로 과학기술과 상용화는 21세기 들어 폭발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 자동차와 TV는 기술의 도입부터 보급까지 각각 75년, 20년가량이 소요됐지만 스마트폰은 7년에 불과했다. 인텔의 공동창립자 고든 무어는 컴퓨터의 성능이 일정 시기마다 기하급수로 증가한다는 이른바 ‘무어의 법칙’을 강조하기도 했으며,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인공지능연구소는 인공지능(AI)의 성능 향상이 무어의 법칙보다 7배나 빠르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냉동인간 해동에 주요하게 적용될 것으로 평가 받는 나노기술 역시 향후 5년 간 급속한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나노기술정책센터는 ‘나노기술 확산 및 영향평가: 2025년 국내 나노시장 규모 예측’ 보고서를 통해 지난 2014년 130조원 수준이던 국내 나노기술 시장이 2025년에는 667조원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나노기술은 냉동인간의 해동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결빙 현상을 막는데 활용할 수 있으며 다수의 냉동인간들이 안고 있는 암 질환 등의 불치병을 치유할 수 있는 기초가 될 수 있다. 실제 암 질환의 경우 종양에 항암제를 축적 하거나 정상 조직에 영향 없이 암세포만 제거할 수 있는 나노기술이 지난해 개발되기도 했다. 

이 같은 기술 발전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지난 5월 첫 냉동인간의 사례가 나왔다. 국내 냉동보존 서비스 업체 크리오아시아에 따르면 50대의 한 남성은 암으로 돌아가신 80대 어머니에 대한 애끊는 마음에 인체 냉동보존을 신청했다. 이 여성은 숨을 거둔 후 의료진으로부터 냉동보존을 위한 조치를 받았고 러시아에 위치한 크리오러스 본사에 안치됐다. 

크리오아시아의 한형태 대표의 말처럼 기술적 보완이 이뤄진다면 냉동인간은 장례 문화의 새로운 형태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 냉동보존을 통한 삶의 연장 또한 자연스레 우리 생활의 일부로 여겨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기술적 토대가 달라지면 사람의 인식이 변화한다는 것은 그동안의 역사가 충분히 증명했다. 

다만 냉동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기술적, 윤리적 문제 또한 명징하다. 기술적으로는 해동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아직 미완에 머물러 있고 생명의 결정권이나 깨어난 후의 삶 등 윤리적‧사회적으로 논의해야할 부분들이 산적해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냉동인간의 제한적 허용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해소되지 않은 냉동보존 기술의 한계

냉동인간은 과학기술에 대한 희망적 기대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올해 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사태에서 볼 수 있듯, 당장 1년 후의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빌 게이츠의 말처럼 일상적 감염병 시대가 도래한다면 글로벌 경제 성장은 더뎌질 수밖에 없고 나노기술을 비롯한 특정 과학기술의 성숙 역시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냉동인간 보존은 해동기술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기술적 한계를 갖고 있다. 냉동인간은 의사의 사망 선고 이후 전신의 피를 뽑고 냉동보존액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혈액  자체가 얼어붙을 경우 냉동 및 해동 과정에서 혈관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기 때문에 얼지 않는 부동액을 사용한다. 부동액 주입 후 시신은 보관 장소로 이동해 액체질소로 채워진 챔버에 들어가 영하 196℃의 온도로 보존된다. 

그러나 얼렸던 동물의 온전한 해동은, 변온동물에서는 성공한 사례가 있지만, 정온동물인 포유류에서는 아직 케이스가 없다. 변온동물은 주변의 온도가 급격히 변화할 때 이를 유지시켜주는 시스템이 있지만 정온동물에는 없기 때문이다. 온도조절 시스템이 다르다는 건 혈액순환 등의 체계도 다르다는 의미기 때문에 어류나 양서류, 파충류의 성공 사례가 사람의 해동 가능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부동액의 실효성 역시 논란의 여지가 있다. 혈액을 냉동보존액으로 대체하면 결빙이 우려되는 주요 수분은 몸 안에서 빠져나가게 되지만 세포나 실핏줄의 수분은 어느 정도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세포와 실핏줄 내의 물이 얼어붙는 과정에서 뾰족한 형태를 띠게 되고 모세혈관이나 조직 등에 상처를 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일각에서는 부동액 역시 대체가 필요하게 될지 모른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냉동인간의 보존액에는 글리세롤, DMSO, EG등의 용매가 주로 사용되는데 향후 새로운 대체 물질이 나온다면 현재 냉동보존된 사람들이 희생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는 결국 미완성 기술을 기반으로 대중의 욕망을 부추긴다는 비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노화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전남대학교 박상철 연구석좌 교수는 “신체를 냉동하면 가느다란 실핏줄이나 세포 내의 물이 먼저 언다. 얼어붙는다는 것은 뾰족해 진다는 것이고 그러면 모세혈관이나 조직에 상처를 낼 수가 있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부동액을 쓰지만 세포에 남아있는 수분은 여전히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어 “시간이 지나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다. 최근에도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으며 과학기술은 발전하게 돼 있으니까”라면서도 “하지만 현재로서는 얼마나 가능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에 현재의 문제들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게티이미지뱅크

‘죽음 앞에 평등한 인간’이라는 전제 흔들릴 것 

냉동인간 보존이라는 새로운 과학기술은 윤리적 관점에서도 다양한 논란을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래학자와 생명윤리학자 등은 냉동보존 기술이 불러올 새로운 부의 불평등과 삶의 연장에 대한 당사자의 결정권 등을 주요 문제로 지목하고 있다. 

먼저 냉동인간 보존은 정부의 적절한 제한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부유한 특정 계층에게만 향유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현재까지는 사회적 지위라든가 부의 차등은 존재해도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 전제가 흔들리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전망이다.

기실 그동안은 인간이 태어나 물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장소에 불과했다. 하지만 냉동인간은 미래로의 시간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까지는 한 시대에 태어난다는 것이 일종의 숙명 또는 소명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이제 시대 역시 선택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혜택을 향유할 수 있는 계층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냉동인간 보존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최소 1억원에서 2억원 중반 대의 비용이 필요하다. 미국 연구소들에서는 1억원 대 중반에서 2억원 대 중반의 비용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업체의 냉동보존 서비스를 대리하는 국내 기업에서는 1억500만원을 책정하고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일각에서는 경제적 양극화 문제가 죽음의 시점에 대한 결정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밖에도 냉동인간들이 해동되는 시기가 도래하거나 단기 냉동과 해동이 가능한 시대가 오면, 새로운 시대 적응에 대한 교육이나 부활한 사망자에 대한 법적 지위 부여 문제 등이 대두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여러 세대 이후에 냉동인간이 깨어날 경우에는 가족, 친구 등 관계의 연속성이 사라져 심리적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도 높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윤정현 선임연구원은 “사회적 지위라든가 부의 차이는 있더라도 생명에는 차등이 없고 죽음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은 당위적 전제였다. 하지만 냉동인간의 대중화는 이를 상당히 뒤흔드는 효과를 낼 것”이라며 “과거에는 한 시대에 태어나는 것을 소명으로 받아들였지만 냉동인간은 시간과 세대, 시대가 선택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같은 혜택을 특권층만 향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문제도 예상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시대 구분과 세대 구분도 흔들릴 수 있으며 해동된 사람에 대한 재교육 및 사회적응 훈련, 친족에 대한 책임 등의 문제가 주요한 과제가 될 수 있다”라며 “결국에는 허용에 대한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생명의 위험성이나 신체장애의 심각성 등이 검증된 제한적 허용이 이뤄져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조차도 일부 소수만 향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삶과 죽음에 대한 당사자의 결정권 보장돼야

이와 함께 삶의 연장에 대한 결정권 문제 역시 생명윤리 연구자들은 물론 의학계에서도 주요 논제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현재 냉동인간은 사후 보존이 원칙이다. 살아 있는 상태의 인간을 냉동한다는 것은 살인죄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의사의 사망선고가 있은 후 보존액 주입 등의 조치에 들어간다.

하지만 냉동인간의 보존에 있어 꼭 당사자의 결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시신에 대한 권리는 기본적으로 유가족에게 있기 때문에 남은 가족들이 고인의 냉동보존을 원한다면 업체와 논의해 추진이 가능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죽음이나 생명의 연장 등에 대한 결정권은 기본적으로 당사자에게 있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을 함께하고 있다. 삶의 지속 여부를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그것도 사후에 진행한다는 것은 주체의 권리와 삶 자체에 대한 관점을 왜곡할 수 있다는 비판이다. 

유네스코 국제생명윤리위원이자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최경석 교수는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시신의 권리가 유족에게 있고 망자의 것이 아니라는 발상은 삶과 주체를 괴리시키는 것”이라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냉동보존이 진행된다면 현재 관점에서 사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실제 살아난다고 해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으며 삶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가 왜곡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남대학교 박상철 연구석좌 교수 역시 “생명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다. 웰다잉 캠페인에서도 삽관 등 무리한 처치 없이, 떠날 때는 떠날 수 있도록 선택하게 돼 있다”라며 “관련 규정을 만드는데 논란이 많았지만 삶의 마지막에 무리한 치료를 받으면서 의식도 없이 무작정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본인의 의사에 따라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냉동인간 보존도 당사자의 희망이 절대적인 조건이 돼야 한다. 누가 생명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본인 의향 없이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라며 “인간의 생명은 아끼는 것이 원칙이지만 무리하게 연장하는 데에는 찬성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냉동인간이나 나노기술 등 과학기술의 토대가 시대의 인식을 어떻게 바꿀지는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영원한 생명이 보편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죽음에 대한 기본적인 통념은 앞으로도 변화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생명은 언젠가는 죽음을 마주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어떤 방식으로든 이별을 준비하는 것이 숙명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 교수는 이와 관련해서도 “의과학기술이 죽음을 극복의 대상인 것처럼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욕망이라는 생각이 든다. 질병을 치료하고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은 문제없지만 죽음은 자연의 이치인데 이를 거스르겠다는 것이 좋은 욕망은 아닌 것 같다”라며 “안타까운 죽음들이나 그럴만한 몇몇 사람들에게는 냉동인간 기술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기술의 완성도가 높다고 하더라도 무작정 살고자 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화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기술 자체는 가치 중립적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사랑하는 대상을 잃은 것에 대한 상실감 또한 타인이 쉽게 평가할 수 없는 영역이다. 고통 없이 죽길 바라는 안락사의 선택이 당연한 권리로 인정받고 있듯,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기술적 보완이 이뤄진다면, 냉동인간 역시 자연스러운 문화의 일부분으로 수용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