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택배노동자 과로방지 대책 발표…심야택배 제한 및 ‘주 5일제’ 유도

정부, 노사 협의 거쳐 주5일 작업 체계 확산 ‘분류작업’은 표준계약서에 명확히 반영토록

2020-11-13     김효인 기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좌)과 이재갑(우) 고용노동부 장관이 1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발표하는 모습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택배기사들의 고강도 노동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자 정부가 택배기사 과로를 방지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내놨다. 택배사별로 노사 협의를 통해 주5일 작업체계 및 심야배송 제한을 도입하도록 유도하고, 1일 최대 작업시간을 설정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택배기사들의 과로 추정 사망은 올해만 10건이 넘게 이어졌다. 지난달에만 서울 강북구에서 배송 업무를 담당하던 CJ대한통운 소속 택배노동자 A씨를 시작으로 한진택배 소속 B씨, CJ대한통운 곤지암허브터미널에서 근무하던 C씨가 사망했다. 같은달 로젠택배 기사 E씨는 대리점의 갑질로 인한 생활고 등을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이렇듯 연이은 택배업무 종사자들의 사망으로 노동계에서는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 공정거래위원회는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정부는 택배기사들의 고강도 근무 문제 개선을 위해 ‘토요일 휴무제’ 등을 통한 주5일 작업 분위기를 확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다만 배송량과 지역 배송여건 등을 고려해 택배사별로 노사 협의를 거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상황에 맞게 1일 최대 작업시간을 정하고 해당 한도 내에서의 작업을 유도하기로 했다. 하루 적정 작업시간 기준은 택배기사 작업조건 실태조사 결과와 직무분석을 통해 제시하기로 했다. 또 작업시간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각 택배사별로 물량조정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는 택배기사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물량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경우 택배기사가 요구하면 물량을 축소하거나 배송구역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심야배송을 줄이기 위한 방안도 포함됐다. 정부는 각 택배사에 주간 택배기사의 오후 10시 이후 심야배송을 제한하도록 권고했다.

구체적인 제한방안으로 해당 시간 이후의 심야배송에 대해서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차단하거나 미배송건은 지연배송으로 관리하는 방식 등을 들었다. 다만 부패 우려가 있는 식품 등 생물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배송을 허용하도록 했다.

앞서 택배 노동자의 주요 과로원인으로 지목돼 온 택배 분류작업에 대해서는 노사 간 의견수렴을 거쳐 명확화하고 세분화해 표준계약서에 반영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합리적 계약 체결을 유도한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택배기사들의 건강관리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안도 나왔다.

정부는 택배기사의 건강보호 강화를 위해 일반 근로자와 같이 택배기사에 대해서도 산업안전보건법상 건강진단 실시 의무를 대리점주에게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현재는 산업안전보건법상 비사무직 근로자에 대해서는 매년 건강진단 실시 의무가 부과되고 있지만 택배기사는 국민건강보험 지역가입자로서 2년에 1회 이상 건강검진이 가능하다. 이중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등 일부 업체의 경우에만 매년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또 뇌심혈관질환·근골격계질환 등을 예방하기 위한 직종 맞춤형 건강진단 방안을 마련해 예산을 지원할 방침이다. 1만 명의 맞춤형 건강진단을 실시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7억원으로 추산하고 내년 예산안에 반영하기로 했다.

건강진단 결과 택배기사에게 뇌심혈관질환 등 건강상의 문제가 우려되는 경우에는 대리점주가 작업시간 조정 등 조치를 협의할 수 있도록 법령 개정 또한 추진하기로 했다.

택배기사들에 대한 사회안전망 강화 대책도 마련됐다.

먼저 택배기사들의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는 원칙적으로 종사자 본인이 직접 제출토록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또 산재보험 가입 방해, 적용제외 강요행위 등에 대한 처벌조항을 신설함과 동시에 산업안전감독관에게 처벌조항에 대한 특별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산재보험 적용제외 사유에 대해서도 질병・부상, 임신・출산 등 불가피한 사유로만 축소하도록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택배기사 수수료 저하를 야기하는 홈쇼핑 등 대형화주의 백마진(리베이트) 등 불공정 관행 개선과 택배가격 구조 개선에도 나서기로 했다. 특히 정부는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착수해 내년 상반기 중 가격구조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택배 배송시간 단축을 위한 인프라도 대거 확충될 전망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도시철도 차량기지·공영주차장 등 유휴부지를 활용해 공유형 택배분류장 등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을 연내 제정하고 법 시행 시기를 공포 후 6개월 후로 앞당기기로 했다. 이는 종사자 보호 강화, 택배산업 육성·지원 확대, 택배업 제도화 등을 목적으로 한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은 택배기사의 보호뿐만 아니라 택배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출발점”이라며 “택배기사의 과로 방지를 위해 제도를 개선하고 사회안전망을 확대해 택배기사의 작업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내달 중으로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택배기사 과로방지대책 협의회’(가칭)도 가동하기로 했다. 협의회에는 사업자·종사자 단체와 소비자 단체, 홈쇼핑 등 대형화주와 국회, 정부(고용부·국토부·공정위), 전문가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아울러 택배 상자 손잡이에 관련한 지침 또한 내달 중으로 마련해 배포한다는 계획이다. 택배 상자에 구멍을 뚫어 손잡이를 만들면 택배기사들의 체력소모를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