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지원사업 사각지대] 가구 소득기준·신청절차 등 걸림돌…“월경용품 지원은 여성인권 문제”

2021-02-20     강유선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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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강유선 인턴기자】 여성은 초경 이후 약 40년간 주기적으로 생리대를 사용한다. 여성에게 생리대는 생필품이지만, 높은 가격으로 인해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존재한다.

지난달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생리대 가격을 인하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학창시절 형편이 좋지 않아 정부에서 생리대 지원을 받았음에도 턱없이 부족했다”며 “청소년과 형편이 어려운 여성들을 위해 생리대 가격을 인하 해달라”고 호소했다.

이같이 생리대 가격을 인하해달라는 내용의 글은 청와대 청원 홈페이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생리대는 여성필수품임에도 비싸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19일 기준 한국소비자원 참가격 정보서비스에 등록된 생리대 4개 제품의 가격을 확인한 결과 평균가격은 △LG생활건강 바디피트 블록맞춤울트라중형(32개입) 7282원 △유한킴벌리 좋은느낌 좋은순면 울트라 날개 중형(36개입) 1만1379원 △유한킴벌리 울트라슬림 에어핏쿠션 날개 중형(36개입) 1만654원 △유한킴벌리 화이트 NEW시크릿홀 울트라 날개 중형(36개입) 1만126원이다. 이들 제품으로 생리대 1개당 평균가격을 산정하면 약 280원꼴로 판매되는 것이다.

여성환경연대에 따르면 여성의 하루 평균 생리대 사용 개수는 7개다. 생리대 1개당 280원, 월경 주기 30일, 월경 기간 7일로 가정하면 1년에 16만원 이상을 생리대 구입비용으로 사용하게 된다. 여성의 생리기간이 40년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이는 엄청난 비용이다.

또 유기농 생리대의 경우도 다른 생리대에 비해 가격이 더 비싸기 때문에 저소득층 청소년은 생리대 제품을 고를 때 선택지가 없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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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 놓인 청소년들

정부에서는 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해 ‘여성청소년 생리대 바우처 지원’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따른 생계·의료·주거·교육 급여 수급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법정차상위계층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른 지원대상자를 대상으로 만11세~만18세인 청소년에게 월 1만1500원의 생리대 구입비용을 지원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지원 사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들이 존재한다. 가정환경이 어려운데도 국가에서 인정하는 범위까지 들어가지 못하거나 양육자의 도움 없이 청소년 스스로 지원 받기에는 어렵기 때문이다.

장애여성(청소년) 및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생리대 지원사업을 진행하는 사단법인 희망씨의 박예나 청소년사업국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기초수급에 있지 않고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도 많다”며 “부모님 사정상 어려운데도 국가에서 산정하는 소득기준에 포함되지 않아서 기초수급 가정으로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생리대를 하루에 못해도 다섯 개 이상을 갈아야 위생적으로나 건강적으로 안전한데, 한두 개만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가정에 여성 청소년이 두 명 이상 있는 경우는 부모님이 굉장히 부담스럽다고 한다”고 전했다.

굿네이버스 좋은마음센터 경기안양 홍혜미 과장은 “정부와 민간단체에서 저소득 가정 아동에 대한 지원사업을 마련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많은 아동들이 생리대 구입 등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면서도 “그럼에도 여전히 생계라는 우선순위에 밀려 다른 친구들처럼 여유분을 사두지 못하고 생리대가 다 없어질 때쯤 구입하는 상황이 반복되거나, 학교에서 계속 친구들에게 빌리는 것이 어렵다보니 학교 복지실, 상담실에 요청해 그때마다 해결하는 아동도 있다”고 설명했다.

홍 과장은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한무보가정의 아동에게는 생리대를 지원받을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 있으나, 그 외 이를 지원받을 수 없는 복지 사각지대 아동이 발생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또 사업 지원대상에 해당하지만 신청절차의 어려움 등으로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는 청소년도 있다. 바우처 신청을 위해서는 복지로 누리집 또는 앱을 통해 신청하거나 주민센터 등에서 등을 방문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가정이 존재하는 것이다.

여성환경연대 안현진 활동가는 “한부모가정 중 양육자가 아버지나 할아버지 등 남성인 경우 동사무소에 가서 사업을 신청하기 어려워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을 제보 받은 바 있다”고 말했다.

장애 청소년들 역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박 국장은 “장애여성의 경우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일반적으로 쓰는 패드형 생리대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고 전했으며, 안 활동가 역시 “장애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생리대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사용에 어려움을 겪어 월경제품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러한 경우 더 추가적인 지원이 들어가야 하는데 저소득층 기초 대상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선택적 복지의 경우 도움이 필요해도 소득 여건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지원대상에 오르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존재한다”며 “소득 등 어떤 여건으로 차등을 두게 되면 사각지대가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9년 10월 22일 서울시 여성 청소년 생리대 보편지급 운동본부 회원들과 권수정 정의당 서울시의원이 서울시의회별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서울시의 청소년 생리대 보편지급 조례 제정을 촉구했다. ⓒ뉴시스

“월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돼야”

안 활동가는 결국 “월경용품 지원사업이 보편적 지원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해외의 경우 스코틀랜드에서는 지난해 생리대를 무상으로 지급하는 법안이 통과됐으며, 미국 뉴욕에서는 지난 2016년 노숙인 쉼터와 공립학교 및 교도소에서 생리대를 무료로 지급하는 법안이 통과돼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경기 여주시에서 이미 여성청소년에게 무상으로 생리대를 보편 지급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경기도에서는 올해 도내거주 모든 여성청소년을 대상으로 사업 시행을 앞두고 있다.

안 활동가는 “세계적으로도 많은 나라들이 단순히 생리대를 저소득층에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월경용품을 지원하는 것 자체가 여성 인권에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보편적 지원을 하고 있는 추세이고, 한국에서도 지자체들이 이를 시도하기 시작했다”며 “이미 시도한 선례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생리대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을 위해 어떤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월경의 문제는 생리대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월경에 대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에는 많은 부분이 생략 돼있고, 월경을 출산의 일부분이라고 인식하는 문화들이 존재 한다”며 “하지만 월경을 출산에만 연결 지어서 생각하게 된다면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긍정하지 못하고, 몸 안에서의 순환을 일으키는 등 월경의 긍정적인 역할은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월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생리대는 여성의 일생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용품인데도 불구하고, 높은 가격 때문에 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또 생리대 종류와 착용방법, 월경의 역할 등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월경’ 자체에 대한 인식과 교육이 부족한 상황이다. 더 이상 생리대가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없도록, 생리대에 대한 지급 방식 개선과 함께 월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