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면허 취소’ 의료법 개정안에 의협 총파업 예고…‘집단 이기주의’ 비판도
‘금고 이상 처벌 시 의사면허 취소’ 개정안 보건복지위 통과 코로나19 백신 접종 앞두고 혼란…“국민 생명 볼모로” 지적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금고형 이상의 범죄를 저지른 의사에 대한 면허를 취소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하면서 대한의사협회(의협)이 파업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19일 보건복지위는 강력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개정안은 실형을 선고받을 경우 출소 후 5년간, 집행유예의 경우 유예기간 종료 후 2년간 의사 면허를 취소하도록 한다. 다만 의료행위 중 발생한 과실은 제외된다. 이 개정안은 범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의협은 지난 18일 보도자료를 내고 “의료전문가의 자율성을 무시하고, 의사면허 취소와 재교부 금지를 강제한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를 통과한 것에 깊은 유감의 뜻을 밝힌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예컨대 의료인이 자동차 운전 중 과실로 사망사고를 일으켜 금고형과 집행유예 처분을 받더라도 수년간 의료행위를 할 수 없게 된다”면서 “한 순간의 교통사고만으로도 한 의료인이 평생을 바쳐 이룬 길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의료인에게 높은 윤리의식을 요구하고 그 면허를 엄격하게 관리하겠다는 개정안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이어 “중앙윤리위원회를 통한 자율징계, 보건복지부와 함께 시범사업 중인 전문가평가제, 대한의사협회의 면허관리원 설립 추진 등 의료인의 자율적인 면허관리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진행 중”이라며 “사실상 모든 범죄로 하여금 강제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의료인이 자율적으로 윤리의식을 제고하고 스스로 엄격하게 면허를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은 지난 20일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의결된다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진단과 치료 지원, 코로나19 백신접종 협력지원 등 국난극복의 최전선에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고 있는 대한의사협회 13만 회원들에게 극심한 반감을 일으켜 코로나19 대응에 큰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며 강도 높게 반발하고 있다.
의협 최대집 회장은 지난 21일 서울 중구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서 열린 제2차 코로나19 백신접종 의정공동위원회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료계의 심각성을 적극 말씀하셔서 불행한 파업적 사태로 가지 않도록 사전에 막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오는 26일 코로나19 백신 접종시작을 앞둔 상황에서 의료계의 역할이 중요함에도 파업을 언급한 최 회장의 발언은 생명을 볼모로 한 협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당대표는 2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의협이 의료법 개정에 반발하며 총파업과 함께 코로나19 백신 접종 협력 중단 가능성까지 언급했다”면서 “만약 불법적인 집단행동을 한다면 정부는 단호히 대처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의료법 개정안은 살인, 강도, 성폭행 등 금고 이상의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도록 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며 “변호사, 회계사 등 다른 전문직종도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자격을 박탈하거나 정지한다. 다른 직종과의 형평성과 공정성을 고려하고 의료의 특수성을 감안해 보건복지위가 오랜 기간 숙의하고 여야 합의를 거쳐 의료법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협이 이를 거부하고 특히 코로나19로 고통 받으시는 국민 앞에서 백신 접종 협력 거부를 말하는 것은 국민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며 “누구보다 높은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셔야 할 의사단체의 그런 태도는 국민께 큰 실망을 드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의당 강은미 비대위원장도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도를 넘고 있는 의협의 집단이기주의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강 비대위원장은 “국민의 생명을 도대체 얼마나 가벼이 보기에 매번 환자의 생명을 볼모 삼아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인가. 비뚤어진 엘리트 특권 의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위력을 내세워서 환자의 존엄, 생명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갑질 행위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미 의사처럼 국가 면허가 있어야 하는 변호사나 공인회계사, 법무사 등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면허가 취소된다”며 “형평성에 어긋나게 의사직에만 예외를 둬야할 그 어떠한 명분도 없다. 개정안은 의료 과정에서 발생한 업무상 과실치사상을 제외하는 등 의료 행위의 특수성을 충분히 감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료법 개정안은 국회가 충분히 논의해서 결정할 일”이라며 “생명을 볼모로 겁박하는 실력행사를 중단해 달라”고 강조했다.
의협은 의료법 개정안이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할 경우 총파업 등 전면적인 투쟁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로 국민의 건강이 위협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의료법 개정안을 두고 의협이 총파업을 예고하면서 백신 접종 등 코로나19 대응에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 이창준 보건의료정책관은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단 설명회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과정에서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으로 국민들이 걱정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소통을 통해 잘못된 정보가 확산되지 않도록 하고, 백신 접종 과정에서 의료계의 참여 거부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