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영의 더 리뷰(The Re:view)] 다시 시작된 유혹,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 10+1주년 공연
듣기만 해도 묘한 설렘을 주는 캐릭터가 무대를 장악했다. 누군가의 피로 삶을 이어가야만 하는 영원불멸의 존재. 이번에 소개할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 속 드라큘라 백작 이야기다. 저주받은 그에게 신이 허락한 선물은 누구든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이 전부였다. 이 때문일까. 관객들은 여전히 ‘마돈크’의 매력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르고 있다.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가 6연으로 돌아왔다. 지난 5월 27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개막했으며 오는 8월 22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2010년에 초연된 작품은 그동안 수많은 마니아층을 거느리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굳혀왔다. 그리고 어느덧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지난해 10주년 맞이 기념 공연을 계획했으나, 안타깝게도 코로나19 확산 시기와 맞물려 개막이 연기됨에 따라 올해 무대를 올리게 됐다. 그래서 2021년 공연은 특별히 ‘10+1주년’ 기념 공연이라는 타이틀과 함께다.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는 주연배우 2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이끄는 극이다. 두 배우가 100분간 쉼 없이 연기와 노래, 동선, 춤, 제스처로 가득 채우게 되는데, 와중에 약간의 빈틈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알차다. 여기에 공연장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레 무대도 달라졌다. 거대한 책 회오리를 연상시키는 나선형 3단 구조물은 무대를 전체적으로 둥글게 감싸 깊이감을 더했다. 또 이전보다 훨씬 다채로워진 조명이 환상적이면서도 새롭고, 극적인 느낌을 부각한다. 아마도 전부터 ‘마마, 돈 크라이’를 봐 왔던 관객이라면 이번 시즌 공연 만족도 역시 꽤 높으리라 예상해 본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으로 엮이게 된 두 남자, 프로페서V와 드라큘라 백작 이야기는 사랑받고 싶은 인간과 죽음을 꿈꾼 뱀파이어 스토리로 탄생해 호기심을 자극한다. 노벨상 수상 후보로 거론될 만큼 뛰어난 천재 물리학자 프로페서V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유능한 학자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연구에 몰입하느라 늘 가족에게 등을 보였던 아버지와, 이를 지켜보며 눈물짓던 어머니를 같이 보고 자란 탓에 자신 만큼은 그 눈물을 꼭 거둬 주리라 다짐한다. 일찍 가족을 이뤄 평범한 삶을 살게 된다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줄 알았으나, 사랑만큼은 학문으로 얻을 수 없어 안타깝게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 뿐이었다.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어온 첫사랑 메텔은 그에게 관심이 없고, 몸담은 학교에서는 엉뚱한 오해로 편치 않은 일상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던 중 고민에 잠긴 프로페서V의 곁에 ‘월간 뱀파이어’ 한 권이 홀연히 날아든다. 그땐 이 의미심장한 초대가 곧 그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결국 프로페서V는 풀리지 않던 의문의 열쇠를 쥔 드라큘라 백작을 만나기 위해 타임머신을 개발하고, 과거로 돌아가 그를 만나는 데 성공한다.
작품은 누구나 가질 법한 의문과 소망에 착안해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곁들여 탄생했다. 각자 다른 목적을 품고 서로에게 접근하는 두 인물이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하는 가운데 시공간을 넘나드는 전개가 무척 독특하다. 처음에는 전개나 구성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 법도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와 흐름에 익숙해지다 보면 금세 적응된다. 무엇보다도 좋은 넘버가 많아 공연장을 나선 뒤에도 한동안 귀에 맴돌 만큼 중독성이 있다.
오랜 기다림을 끝낸 배우들은 그동안 갈고 닦아 온 기량을 마음껏 펼쳤다. 지난 5월 29일 2시 공연에는 뮤지컬 배우 최민우와 노윤이 각각 프로페서V와 드라큘라 백작 역을 맡아 무대에 올랐다. 두 사람 모두 이 작품으론 처음 무대에 오르는 자리였다.
먼저 프로페서V 역 최민우는 귀엽고 천진한 청년과 끼가 넘치는 교수 캐릭터를 자유로이 오가며 카멜레온 같은 모습을 선보였다. 프로페서V는 공연이 시작된 뒤 약 27분 동안 오로지 혼자 무대를 이끌 중책을 맡은 역할이다. 또 다면적인 모습을 즉각적으로 내보여야 하는 캐릭터라 연습하면서도 많은 어려움이 따랐으리라 예상된다. 그만큼 부담감이 적지 않을 만도 한데, 최민우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안정된 모습으로 무대를 자유로이 누볐다. 혼란스러운 내면을 드러낼 땐 마치 철없는 아이처럼 보이다가도, 사랑을 위해 과감한 선택을 내린 순간 단호하고 강단 있게 전환하며 캐릭터가 가진 매력을 끌어올렸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 크리에이터
-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
- 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
-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드라큘라 백작 역 노윤 역시 ‘마마, 돈 크라이’ 첫 무대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여유롭게 분위기를 장악했다. 묵직하면서도 울림 가득한 음성, 절도 있는 걸음걸이, 시선을 사로잡는 동작이 상상 속 뱀파이어에 무한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작품 대표 넘버 중 하나인 ‘달의 사생아’를 부를 땐 극적인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켰으며, ‘나를 사랑한’을 부르는 대목에선 고혹적인 느낌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렇게 두 사람이 만들어 낸 조화는 오래도록 사랑받아온 작품에 새로운 에너지를 선사하며 재미를 주었다.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 10+1주년 기념 공연은 최민우와 노윤 포함 백형훈, 양지원, 박좌헌, 고영빈, 박영수, 장지후를 시작으로 송용진, 허규, 조형균, 김찬호, 고훈정, 이충주, 이승헌이 6월 중순부터 합류해 작품의 명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같은 작품인데도 페어에 따라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니, ‘마돈크’가 가진 묘미를 제대로 맛보고 싶다면 다양한 조합으로 관람해 보기를 추천한다.
덧없는 욕망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대가를 치르게 했지만, 이면에 숨겨진 가치는 여전히 희망을 그린다. 오랜 시간 외로움에 사무쳐 마지막을 꿈꾸는 인물의 모습이 이유는 달라도 어딘가 낯설지 않다. 서로에게 서로뿐인 현실 앞에서 끝내 맞잡은 두 손으로 함께 달려갈 미래가 궁금해진다. 지금 이 시기에 ‘마마, 돈 크라이’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