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방 춘추전국시대③] “유튜브판 홈쇼핑 ‘라방’ 진행자·플랫폼에 책임 부여해야”
[인터뷰] 한국TV홈쇼핑협회 황기섭 실장을 만나다 라방 매력은 ‘재미’…홈쇼핑도 적극 뛰어들고 있어 ‘판매자’인 홈쇼핑에 반해 라방 플랫폼은 ‘중개자’ 사고 나도 책임소재 불분명…최소 장치 마련돼야 라방·TV도 결국은 커머스…소비자 중심으로 가야
바야흐로 라이브커머스, 즉 라방의 시대다. 소비절벽 가운데서도 매출 잭팟을 터뜨리며 유통가 전 방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라방은 강자와 약자의 구분이 없는 혼전을 거듭하며 순위를 가릴 수 없다는 점에서 마치 춘추전국시대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소상공인부터 대기업까지 너나 할 것 없이 새로운 쇼핑의 매개체로서 활용되고 있지만, 형식이 자유롭고 규제가 전무하다시피 한 만큼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투데이신문>은 유통계 신흥 강자 ‘라방’의 현주소와 구조적 한계,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짚어보기로 했다.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지루한 글보다는 영상에, 일방 소통보다는 쌍방향 소통에 매력을 느끼는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유통가도 큰 변화를 겪고 있다. 4000억원이던 지난해 국내 라방 시장 규모는 올해 약 2조8000억원으로 7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점쳐지고, 오는 2023년에는 10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튜브와 틱톡 등 동영상이 일상 속으로 들어오면서, 미디어를 매개로 하던 유통 흐름도 모바일 중심의 라방으로 자연스레 이동했다. 라방은 비용이 적게 드는데다 판매자와 소비자의 접근성이 모두 뛰어나고 실시간 양방향 소통이 가능하다.
여기에 1995년 국내에 소개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원조’ 비대면 유통채널인 홈쇼핑 또한 라방에 적극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홈쇼핑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는 라방은 사실 홈쇼핑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된다. 전자상거래법, 표시광고법, 식품표시광고법, 상품소개 및 판매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 등 엄격한 심의를 적용받는 홈쇼핑에 비해 라방은 신생 채널인 만큼 아직 관련법이 마련돼 있지 않고 소비자보호제도에 있어 허술한 부분이 존재한다.
이에 본보는 TV홈쇼핑 산업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창립된 한국TV홈쇼핑협회(KOTA·Korea TV Homeshoping Association) 황기섭 실장을 만나 라방을 둘러싼 현실에 대해 짚어보고 이와 연계된 커머스의 향후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황 실장은 라방의 상승세와 미래 가치에는 공감하면서도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소비자 피해우려에 대해 지적했다. 특히 “라방 플랫폼은 판매 당사자가 아닌 중개자의 위치에 있다. 이에 소비자가 플랫폼을 믿고 구매하더라도 정작 문제가 발생했을 때 플랫폼은 책임에서 자유롭다는 함정이 있다”며 “라방에 방송 진행자의 교육 의무화 등 소비자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홈쇼핑에 대해서는 비본질적인 규제 완화와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조’ 비대면 사업자로도 볼 수 있는 홈쇼핑이 바라보는 라방은.
라방은 단순히 보면 유튜브판 홈쇼핑이라고 볼 수 있다. 즉 TV라는 기존 미디어가 아닌 여타 뉴미디어를 통한 홈쇼핑식 커머스라고 본다. 최근 소비자의 미디어 접근성과 양태 등이 TV가 아닌 모바일 등으로 옮겨 감에 따라 TV 기반의 홈쇼핑사들도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처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라방의 인기에 여러 홈쇼핑 업체도 본격적으로 모바일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데.
아시다시피 홈쇼핑은 TV 기반의 비즈니스를 하는 업체다. 기존 수요도 있지만 최근 유통의 흐름과 미디어 환경에 맞춰 차차 뉴미디어 기반으로 진화를 준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라방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는 바로 ‘재미’와 ‘양방향 소통’이다. 새로운 채널의 장점들은 받아들여 발전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무조건적으로 라방에 뛰어드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라방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언급하는 것인지.
라방과 관련해서는 예전 팟캐스트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팟캐스트가 처음 등장했을 때 라디오의 존폐 여부까지 거론될 정도로 기존 미디어에 위기가 도래했다고 여기던 시각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각각 고유의 가치로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이제 누구나 영상을 찍어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단지 유튜버라는 이유만으로 화려하게 주목을 받지는 않지 않나. 마찬가지로 라방 또한 새로운 방식의 영상 기반 판매로서 신기원을 이뤘다고 볼 수는 있으나, 단지 라방을 활용한다고 해서 저절로 매출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물건을 어떻게 파느냐가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로 인해 옥석이 가려지게 될 것으로 본다.
향후 라방에서 옥석이 가려진다면 그 기준은 무엇으로 보는지.
결국은 시청자의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기존 유명세를 가지고 있던 인플루언서나 연예인이 유리할 것이다. 백종원씨가 지상파에서 전복 등 농수산물 판매 촉진에 나선 이후 대형 유통사 라방에서 관련 상품 생물이나 밀키트를 판매하니 방송 시작 2분만에 2000명, 10분이 지나니 1만명이 들어오더라. 그런 곳은 오히려 홈쇼핑보다 낫다. 하루에 열 번 방송할 수 있다면 홈쇼핑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요즘 너도나도 라방에 뛰어들고 있지만 방송을 켜기만 하면 저절로 몇만명의 시청자가 유입되는 것이 아니다. 시청자 몇십명에 불과한 방송도 꽤 많다. 그리고 재미만 추구하기에는 진행자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위험이 있고, 지나치게 딱딱한 방송은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 등 여러 문제가 있다. 그렇기에 구매 소구점을 잘 찾을 수 있는 전문성을 가진 쇼호스트의 존재가 중요하다.
홈쇼핑과 라방에서의 쇼호스트 역할이 각각 다르다고 보는지.
요즘 홈쇼핑과 라방을 병행하는 쇼호스트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경우 채널의 성격에 따라 진행자 발언의 수위가 달라진다. 예전에는 수십만이 시청하는 방송의 영향력을 감안해 방송 자체가 존엄하고 책임이 막중한 것이라는 시각에 모두들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이제는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백종원씨가 각각 다른 채널에서 식품의 효능에 대해 과장해서 말한다고 가정해 보자. 공중파 방송에서는 촘촘한 제재를 거치겠지만 유튜브나 라방에서는 말 그대로 문제 삼지 않으면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공중파 방송이 아니라고 해서 파급력이 약하거나 시청 인원이 모자란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요즘은 몇십, 몇백만이 보는 것이 유튜브다.
사실 홈쇼핑에 비해 라방에는 별다른 규제가 없는 실정인데.
라방 시장은 갑자기 커졌지만 관련법이나 소비자 보호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홈쇼핑은 방송이므로 방송법에 따른 규제를 받고 있으나, 라방 운영자인 플랫폼은 부가통신사업자 지위로 사실상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다. 방송은 방송법에 따라 철저한 진행자 교육 및 사전 및 사후 심의를 하고 있지만 라방은 그러한 의무가 없다. 그렇기에 문제가 생겨도 라방 플랫폼에는 책임을 물을 수 없고, 판매자와 다퉈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온라인쇼핑몰 ‘오픈마켓’에서도 상품에 문제가 생기면 판매 쇼핑몰이 아닌 물건 판매자와 직접 연락해야 하지 않나. 이와 관련해 최소한의 규제라도 시행하려면 어떤 부처의 소관인지도 중요한 문제다. 일반적으로 유통하면 공정거래위원회, 식품이라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들여다보게 될 것이고 홈쇼핑은 방송으로 분류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심의를 받는다. 그런데 아직 라방은 소관 부처가 명확하지 않아 소비자 피해 우려가 있다.
구체적인 소비자 피해사례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물건 설명단계에서부터 소비자를 현혹하는 잘못된 표현으로 인해 구매하거나, 불량 제품을 구매했을 때 제대로 보상받기 어려울 수 있는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다. 허위·과장 표현과 소비자 보호 미흡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지자체와 함께하는 라방이 늘어나고 있는데 작년에 진행된 한 공공기관 주도 방송에서 유튜버와 개그우먼, 전문 쇼호스트가 함께 방송하면서 석류주스를 판매한 적이 있다. 그런데 출연한 개그우먼이 돌연 “석류 몸에 좋죠, 제가 사주를 봤는데 자궁에 물기운이 적어서..”라는 발언을 했다. 즉시 쇼호스트가 말리긴 했지만 홈쇼핑이었다면 미신과 개인적인 경험 이런 발언은 절대 안 된다. 공신력 있다고 자부하는 라방에서도 그런 사고가 나는데 개인이 하는 방송이라면 더욱 문제 소지가 있지 않겠나.
중개플랫폼의 역할이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있다면.
홈쇼핑은 판매자인 반면, 라방의 판을 열어주는 플랫폼은 중개자다. 이미 유통업계에서 많은 플랫폼들이 중개자의 위치에 있는데, 부동산 중개업을 연상하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판매자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 후 수수료를 받는 것인데 사고가 발생한다고 해서 중개자가 책임져주지는 않는다. 이는 정말 무서운 점이다. 영상 안에서 친근하게 말하는 사람은 있지만, 잘못된 물건이 왔을 때 책임의 소재가 불분명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한 농가에서 식품을 만들어 라방으로 대량의 물건을 판매했다고 치자. 만약 그 제품에 문제가 생겨서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소송으로까지 이어진다면 영세업체가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라방을 중개한 플랫폼에서는 당연히 책임 의무가 없다. 홈쇼핑 업계는 2015년 백수오 사태를 겪었는데, 당시 홈쇼핑은 식약처에서 문제가 있다고 발표하지도 않았던 백수오에 대해 승인사업자로서의 책임을 가지고 구제에 나서 피해액 2700억원 중에 470억원을 배상한 바 있다. 이처럼 라방 또한 소비자 이슈가 한 번 터지고 나서 재정비가 되는 과정을 겪지 않을까 생각한다.
라방을 방송보다는 커머스로 보고 규제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는데.
올 3월 소비자원 500명 설문조사에서도 소비자의 80%가 라방이 홈쇼핑과 같다고 인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TV는 아니지만 영상을 통해서 물건 파는 것부터 보여지는 방식 등 방송 속성 자체도 유사하다. 규제가 많다는 것은 너무 운영자 위주의 생각이다. 지금 규제를 하자는 포인트는 방송을 어렵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표시광고법 가이드라인 정도는 준수하자는 얘기다. 인터넷쇼핑 허위과장광고는 식약처 사이버 조사단에서 모니터링을 해서 잡는다. 하지만 라방은 유튜브 처럼 동영상 스트리밍의 일종으로 분류되기에 욕설·음란·사기성 발언이 의심될 경우에 한해서만 사후제재를 하고 있다. 게다가 방송은 상품설명이 텍스트로 보기 쉽게 정리돼있지 않다 보니 소비자들이 증거자료를 가지고 구제받기에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
라방에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인지.
꼭 법을 만들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오프라인이나 일반 판매자들의 사례에서 의무 사항을 준용해 적용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모 플랫폼의 판매자 교육 과정을 배우고 있다. 하지만 플랫폼에서의 교육은 단순 권고 수준으로 강제성은 지니지 않는다. 이로 인해 부실한 방송 진행이 된다면 결국 진행자의 자질이나 교육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오프라인 판매와 비교해 보자.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려면 통신판매업 신고로만 끝나지 않는다. 위탁기관에서 정해진 교육을 받은 후에 이수증을 첨부해서 구청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어길 시 과태료를 내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은 이유는 최소한 먹거리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홈쇼핑의 경우에는 사실 사전, 사후에 까다로운 심의를 하는 데다 쇼호스트의 허들도 높기 때문에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보호장치가 없는 라방에서는 최소한 방송 진행자만이라도 방심위와 연계하거나 사업자 단체를 만드는 방식 등으로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이 소비자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플랫폼에서도 위생과 안전에 민감한 특정 상품군이나 영세 상인의 제품군 등에 대해서는 결제대행 수수료의 일부를 사회공헌 용도로 적립을 해둘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영세 판매자의 경우 개인의 책임으로만 부담이 돌아간다면 결국 이는 소비자의 피해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라방과 함께 나아갈 홈쇼핑의 미래는 어떻게 보는지.
1995년 첫 발을 뗀 홈쇼핑이 이뤄 온 성과와 가치는 라방이 단시간에 담아내기는 쉽지 않다. 물건을 팔 곳이 부족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팔리는 상품을 누가 발굴하고 파냐의 문제라고 본다. 무엇보다 라방을 하더라도 26년간 생방송을 전문적으로 해온 사업자가 만든 방송과, 그렇지 않은 주체가 만든 방송과는 질적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홈쇼핑의 유연한 반품과 교환 정책, CS제도 등은 홈쇼핑만의 경쟁력이라고 본다. 현재 시장은 기존 질서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시장이 등장하는 과도기적 상태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맞지 않는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라방에는 소비자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도 마련돼야 한다. 그리고 홈쇼핑에 대한 비본질적인 규제는 조금 완화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홈쇼핑이 5년마다 진행되는 재승인 심사를 받기 위해서는 거의 모든 지표에 대해 매년 평가를 받아야 한다. 또 경영 혁신과 관련된 투자·채용 등에 대해서도 촘촘한 규제를 받는다. 사실 홈쇼핑 규제의 본질은 중소기업 판로개척이나 방송으로서의 책임감 등 큰 덩어리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머지 부수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평가 주기를 완화한다던지 자율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규제 당국이 공정한 심판의 역할을 하고 평평한 운동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산업발전 및 소비자 후생 증대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소비자가 라방을 모바일 홈쇼핑으로 인식하는 만큼 소비자 관련 규제만큼은 라방에도 동등하게 적용돼야 외면 받지 않는 방송으로 성장 가능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