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규 기자의 젠더 프리즘] ‘30대 여성 리스트’ 작성한 남성 공무원…여성은 도구가 아니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성남시청 인사 부서의 남성 직원이 결혼하지 않은 30대 여성 직원 리스트를 작성해 미혼인 시장 비서실 남성 직원에게 전달해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 경기 성남시 인사팀에서 근무하던 남성 6급 공무원 A씨는 미혼 남성인 시장 비서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결혼하지 않은 30대 여성 직원 150여명의 신상정보가 담긴 문건을 작성하고, 과장급 공무원 B씨를 통해 비서관에게 전달한 사실이 지난 25일 알려졌습니다.
이 문건에는 성남시 소속 31~37세 여성 공무원들의 이름과 나이, 사진, 소속, 직급 등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문건을 전달받은 해당 비서관이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를 하면서 알려지게 됐습니다. 해당 비서관은 “권력의 핵심 부서인 시장 비서실 비서관인 저에 대한 접대성 아부 문서”라고 밝혔습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성남시 공무원들은 분노를 나타내며 진상조사와 징계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성남시청공무원노동조합(노조)은 지난 26일 성명을 내고 “참담함과 함께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면서 “조합원들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방역 업무와 당면 시정업무에 매진하고 있으며, 업무 수행에서 나이를 막론하고 성별에 따른 역할 구분이나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발했습니다.
그러면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 공무원 명단 작성은 그 자체로 직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더구나 그 문건을 부적절하게 활용한 것은 우리 동료 인격을 모독하고 개인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무단으로 침해한 심각한 범죄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노조는 “문건을 작성해 보고한 자와 보고받은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진상을 낱낱이 밝혀 엄중한 법적 책임을 지게 하라”면서 “수사기관은 사안이 위중한 만큼 작성자와 유포자뿐 아니라 지시한 자와 활용한 자까지 수사 범위를 확대해 인권을 경시한 행위에 대해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이 사건은 자칫 시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을 뿐 아니라 공직사회에 불신을 초래하고 동료 간 서로 등을 돌리게 하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왜 이런 그릇된 자료가 만들어지고 악용됐는지 근본적으로 각성하고 수사기관은 철저한 수사와 법 집행을, 시 집행부는 피해자 보호와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성남시의회도 비판에 나섰습니다.
성남시의회 여성의원 전원은 27일 성남시의회 1층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건은 여성의 인격권과 개인정보권이 침해된 심각한 인권침해 사안이며 범죄행위”라며 성남시에 철저한 조사와 징계조치를 촉구했습니다.
그러면서 “성남시의회 여성의원 모두는 피해 직원들의 안전과 안정을 위해 필요한 모든 일에 적극 나설 것”이라며 “평등한 젠더의식 정착을 위한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은 이어졌습니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지난 26일 “징그럽다.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은 직장 동료이지, 간택 받으러 출근한 사람들이 아니다”라며 “여성 노동자를 동료 시민으로,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류 의원은 “직장 내 성차별 문화가 만연하다는 게 이런 것”이라며 “어린 시절부터 카톡방에서 여성의 외모에 순위를 매겨가며 품평하던 것이 나이를 먹고 이렇게 발현된다. 컴퓨터 잠깐 재생해 두면 끝나는 온라인 교육 같은 거 말고,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당 오현주 대변인도 같은 날 서울 영등포구 국회 소통관에서 “여성은 물건이 아니다. 해당 문건이 당사자들의 동의 없이 작성됐다면 이는 직장 내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 공무원들의 인격권과 개인정보권이 침해된 심각한 인권침해 사안”이라며 “(해당 문건이) 누구의 지시로 왜 작성됐으며 정보가 어떻게, 어디까지 활용됐는지 자세히 밝혀야 한다”며 엄중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누리꾼들은 공무원이 결혼하지 않은 여성 공무원 명단을 작성하고, 미혼 남성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를 전달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비난하고 있습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인사부서 공무원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성남시 전체가 이런 리스트가 막 돌아다닐 수 있는 느슨한 분위기인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다른 트위터 이용자는 “남자 직원들끼리 리스트 주면서 마음에 드는 사람 골라보라고 했다고 한다. 공공기관에서 여성을 뭘로 보는 거냐”라고 질타했습니다.
이 밖에도 “더럽고 역겹다”, “신부감 상납 리스트냐”라는 등 성남시를 비난하는 글을 다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남시는 사과와 함께 내부 조사를 통한 장계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5일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한 성남시는 인사문서 누출 전반에 대한 수사를 경찰에 의뢰했습니다. 아울러 현재 행정복지센터에 근무 중인 A씨를 직위해제 했습니다. B씨는 다른 건으로 직위해제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은수미 성남시장은 지난 26일 시 내부 전산망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곧바로 내부감사에 착수했으며,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한 상황이다. 경찰 수사와 별개로 내부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며 ”더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 피해자들께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를 드린다“고 사과했습니다.
은 시장은 수사와 별개로 내부조사를 통해 징계조치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공익 제보를 한 비서관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번 성남시 여성 공무원 리스트 작성은 여성을 도구화 한 사례입니다.
첫째로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부족한 것으로 보고 그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도구로 본 것입니다. 둘째로는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한 도구로 삼은 것입니다. 여성을 동료가 아닌 도구로 삼은 것은 모든 성차별은 물론 성폭력 범죄의 원인이 됩니다.
성남시가 이번 일에 대해 엄중히 조사하고 징계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해당 공무원을 철저히 조사하고 이 일에 관련된 공무원들을 엄중 징계해야 할 것입니다.
이 같은 문건이 작성될 수 있었던 성남시 내부의 문화를 돌아보고 유사한 사례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