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삼수생’ 안철수가 던진 ‘중간평가’

정치권, “중간평가 실현 불가능” 비난 우상호, “출마병 도진 것...” 명분 없어

2021-11-02     윤철순 기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 1일 오전 국회 잔디광장에서 20대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을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윤철순 기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59)가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임기 내 ‘중간평가’를 통해 국민 과반 지지를 얻지 못하면 대통력 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정치권 등에선 ‘무책임한 발언’, ‘출마병이 도졌다’는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중간평가 공약은 ‘공약(空約)’

안 대표는 지난 1일 국회 잔디광장 분수대 앞에서 “정권교체 아닌 시대교체를 하겠다”며 20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안 대표는 “이제까지 대통령 당선만 되면 국민들에게 철석같이 지키겠다고 했던 약속은 사라졌다. 이런 거짓의 정치는 끝내야 한다”며 “당선된 후 임기 중반에 여야가 합의하는 조사 방법으로 국민의 신뢰를 50% 이상 받지 못하거나, 또는 22대 총선에서 제가 속한 소속 정당이 제1당이 못 되면 깨끗하게 물러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안 대표의 이번 대선 출마가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당시에 한 불출마 약속을 뒤집은 것이라는 비난과 함께 중간평가 공약을 실현 불가능한 ‘공약(空約)’이라며 평가절하 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2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안 대표의 대선 출마에 대해 “왜 (출마를) 하신대요? 이런 분을 대개 동네에서는 출마병이 도졌다고 한다”고 직격했다.

우 의원은 “(안 대표가) 지난 서울시장 선거 때 오세훈 당시 (국민의힘) 후보와 경선하면서 ‘대선에 나오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며 “정치 도의상 말을 너무 자주 바꾸고, 출마 명분이 없는데 출마를 선언하는 것은 국민께서 다시 평가를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안 대표가 국민의힘과) 통합을 거부하고 차일피일 미루더니 결국 또 딴 살림을 차리지 않나”라며 “사실 해도 해도 너무하신 것 아닌가. 출마가 직업인 분 같다”고 비난했다.

주요 언론들도 사설을 통해 안 대표의 중간평가 공약을 비판했다. 핵심 내용은 안 대표의 중간평가 공약이 여야 거대 정당 주자들과의 차별화 차원에서 나온 출마 명분일 뿐이고, 그동안의 안 대표 정치 행태를 놓고 볼 때 국민 동의를 받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시장 당선되면’ 해석은 말장난

그런데 이날 출마선언 기자회견에서 문제가 된 발언은 ‘대선 불출마 약속을 번복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당시엔)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던 것”이라고 답한 내용이다. 그는 “확인해보라. 저는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도중에 서울시장을 그만두고 대선에 나가는 일은 없다고 말씀드린 것”이라고 부연했다. 즉, 자신을 서울시장 후보로 뽑아주지 않았으니 자신도 국민들에게 한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정치권은 안 대표의 이 발언을 ‘유치한 말장난’이라 비판한다. 안 대표가 국민의힘과의 후보 단일화 등을 통한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해 국민을 상대로 말장난을 벌이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나경원 최고위원이 이명박 대통령 후보 중앙선대위 대변인 시절, 당시 논란이 됐던 ‘BBK 동영상’ 관련 논평을 하면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BBK라고 말한 것은 맞지만 (‘내가’라는) 주어가 없다”고 말해 ‘주어 경원’ 별명을 얻은 것과 같은 논리라는 주장이다.

안 대표에 대한 정치권의 이 같은 반응은 그동안의 정치활동을 통해 보여준 그의 행적과도 무관치 않다. 

안 대표의 대선 출마는 2012년, 2017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안 대표는 2012년 무소속으로 대선에 나섰다가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추진하던 중 하차했다. 이후 2017년에는 국민의당 후보로 완주해 3위(21.41%)를 기록했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는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대선을 포기하고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결심한 배경을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밝혔었다. 지난 2월 금태섭 전 의원과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단일화 토론회에선 “시장 출마 선언을 했을 때 대선을 포기하고 서울시장이 되겠다, 정권 교체 디딤돌의 교두보가 되겠다고 말씀드렸다”고 했었다.

당시 안 대표는 ‘서울시장에 당선 되면’이란 단서를 명확하게 전제한 적이 없다. 또한 당선됐을 경우 서울시장 임기가 1년 넘게 남았었고, 대선은 1년도 안 남은 상황에서 중도에 서울시장을 다시 사퇴한다는 건 어렵다고 봤기 때문에 정치권에선 누구나 안 대표가 대선 불출마라는 배수진을 친 것으로 해석했다.

법적으로나 ‘선례’로나 실현 가능성 제로

사실 중간평가는 안 대표의 ‘신상품’이 아니다. 지난 달 26일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7년 대선 4일을 앞두고 “88올림픽 이후 6·29 선언과 모든 선거공약의 이행 여부에 대해 국민 여러분으로부터 중간평가를 받도록 하겠다”고 선언했었다. 또 당시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의 중간평가는 당선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던진 승부수 차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초반 재신임 국민투표(중간평가)를 제안했었다. 노 대통령의 중간평가는 ‘대선자금’과 관련한 비자금 연루의혹 때문이었지만, 결국 노태우 노무현 두 대통령의 중간평가는 없었다. 

정치권에선 안 대표가 이런 경우를 염두에 두고 중간평가를 던졌을 것이라 보고 있다.

안 대표의 의도야 어떻든 대통령 중간평가는 사실상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게 각계의 중론이다. 중간평가를 통해 불신임을 받는다 해도 헌법이 정한 대통령 임기를 중단하려면 헌법과 법률을 고쳐야 하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란 지적이다.

의원내각제도 아닌 정치현실에서 가능성이 매우 낮은 약속을 공약으로 제시하는 안 대표의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정치권에선 안 대표가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켜 정치적 이익을 실현하려는 목적 이상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임기 중 대통령이 물러나는 경우가 생긴다면 엄청난 혼란이 불가피할 것임을 모르지 않을 그가 ‘말장난’ 소리까지 들으며 던진 중간평가 공약으로 얼마나 큰 정치적 이득을 취할지 의문이다. 어차피 실현 가능성도 없으니 거대 양당에 대한 반감에 편승한다 해서 손해 볼 게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이번 대선에서 안 대표는 또 어떤 선택으로 국민 평가를 받을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