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짓는 아재의 독서 일기⑪] 나부터 배려해야 남도 배려할 수 있다
▪11월 15일 월요일
안셀름 그륀의 『자기 자신 잘 대하기 Gut mit sich selbst umgehen』를 읽다.
안셀름 그륀은 가톨릭 수도자이자 신학자이며 영성가다. 가톨릭 전통에 깊이 뿌리박은 동시에 현대인에게 다가가는 감각 또한 탁월하다. 그만큼 대중의 인지도가 높아 일반 출판계를 통해서도 많이 소개되었다. 종교인, 즉 특정 종교 전통의 언어에 익숙한 성직자이면서 세속 사회를 살아가는 일반인들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모로 불교 진영의 간판 저자인 틱 낫 한 스님에 비견될 만하다.
현대와 소통하는 종교 작가
틱 낫 한과의 공통점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으로 국내 번역만 100여 종을 넘기는 다작가라는 점을 들 수 있다. 국내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는 저자라는 소리다. 또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간명한 언어로 글을 전개한다. 또한 한달음에 읽어치울 수 있을 정도로 얇은 책을 주로 낸다. 쉽게 쓰고, 얇게 내니 독자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끝으로 엄격한 훈련보다는 따스한 배려를 우선한다. 안셀름 그륀의 저서 제목만 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가령 그의 대표작이 『아래로부터의 영성 Spiritualitat von unten』(분도출판사)이고, 근래에 소개된 『당신은 이미 충분합니다 Vom Gluck der kleinen Dinge』(쌤앤파커스)도 그러하다(원서 제목 또한 “작은 것의 행복으로부터”이다).
오늘 읽은 『자기 자신에게 잘 대하기』도 그렇다. 일단 금방 읽을 수 있다. 184쪽이지만, 매 쪽 당 원고 분량이 작다. 그리고 제목이 명확히 보여주듯이 우리 시대 사람에게 명확히 와닿는다. 가톨릭 영성의 전통에 충실하고 현대 심리학의 통찰도 활용하는 저자다운 제목이다.
근본주의에 대한 성찰
이 소품은 무엇보다 근본주의, 특히 종교적 근본주의에 대한 성찰이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 생각해보자. 다른 것들도 대체로 그러하듯 근본주의도 자기 내면에서 출발한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기꺼이 고행을 받아들이며, 또한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엄격하며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배타적인 이들이 바로 근본주의자다. 자기에게 자비하지 못한 이들일수록 타인에게도 자비롭지 못하다. 달리 말하면 남에게 폭력적으로 대하는 이유는 먼저 나 자신에게 폭력적으로 대해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근본주의자를 긍휼히 여겨야 한다.
가톨릭 신학자인 안셀름 그륀이 보기에 근본주의는 반(反) 기독교적이다. 평화가 아니라 폭력으로 남과 나를 대해서다. 그는 『자기 자신 잘 대하기』를 통해 나를 잘 대하는 법에 대해 검토한다. 나를 잘 대하면, 남도 잘 대할 수 있다고 본다. 아마 한국의 많은 근본주의 신앙인들에게 필요한 가르침이 아닐까 싶다.
이는 기독교의 토대가 되는 예수님의 말씀에 부합한다. 그분은 구약의 모든 계명을 두 가지로 압축하셨다. 하나는 신을 사랑하라(수직적 차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을 사랑하라(수평적 차원)는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계명인 이웃 사랑에 제시되는 기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요구하신다(마태복음 22장 39절). 그러니까 기독교 전통도 알고 보면 자기에의 배려를 강조하는 셈이다. 물론 배려의 초점(이웃)이 더 중요하다지만, 출발점이 없다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저자는 이렇게 하나로 묶어서 이야기한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자신과 타인과 창조물을 공격적으로 대하지 말고 오히려 잘 대하라고 우리를 초대한다.”(83쪽)
종교의 오랜 가르침의 현대적 가치
하지만 안셀름 그륀은 그저 과거의 가르침에 갇히지 않고 현대적 맥락 속으로 신속하게 나아간다. 이에 대한 논의를 위해 그리스 신화나 러시아 문학 등에 비춰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현대 심리학으로 재조명하기도 한다. “심리학과 대화하면서 나는 예수님을 새로운 눈으로 […] 보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180쪽)
인간은 세우고 신은 허문다.
인간의 지식 탐구는 끝이 없는 수고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앎에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의 소박한 지적 탐구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또한 저자는 현대적 예시를 통해 가톨릭 전통의 유효성을 계속 점검한다. 이를 통해 자기에의 배려라고 하는 고대의 가르침이 현대의 상황에도 여전히 유용함을 그는 효과적으로 제시한다. 가령 설거지하는 태도를 논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릇을 다룰 때 볼 수 있는 난폭성은 전가된다. […] 자기 자신에 좀 더 신중을 기할 수 있기 위하여 사물을 신중하게 대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160쪽)
『자기 자신 잘 대하기』는 한 면으로 영성 서적이고, 다른 한 면으로 심리학 서적이다. 혹은 한 면으로 종교적인 책이고, 다른 한 면으로 현대적인 책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가톨릭 신자를 넘어서 현대인들에게 다가가고자 쓴 책이다. 출판인으로서만 아니라 독자로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여러분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책으로 다가오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