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핵심기술 유출 잇달아…“국가차원 대책 마련해야”
현대모비스‧SK이노 등 기술 유출 사례 빈번 경찰청 국수본, 올해 집중점검 통해 23건 적발 홍석준 의원 지난 7일 관련법 개정안 대표발의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최근 국내 산업계 기술 유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처벌을 강화하는 등 국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모비스는 내부 직원의 자사 기술 유출 정황을 포착, 지난 4월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와 관련 <아주경제>는 서울지방경찰청이 해당 사건을 산업기밀 유출과 관련 있다고 판단했다며 현재 보안수사대에서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단독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기술유출이 자율주행과 연관성이 있고 피해 규모가 1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됐지만 현대모비스는 아직 구체적인 정황은 파악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지난 4월 경찰 고소를 진행했고 지금 수사를 진행하려는 단계다. 내부 보안 위반 사항을 인지한 후 수사를 의뢰했다”라며 “피해규모나 유출 경로 등은 수사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기술 유출 특별단속’ 96명 검거
국내 산업계의 기술 유출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바디프랜드의 전 임원이 안마의자기술을 유출한 의혹으로 검찰에 송치됐으며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의 전 연구원 등은 반도체 세정장비 기술을 중국에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밖에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올해 2월부터 진행한 ‘산업기술 유출 사범 특별단속’에서도 지난 5월 기준 23건이 적발, 96명이 검거되기도 했다.
국수본의 중간점검 결과에 따르면 전체 23건 중 영업비밀 유출이 16건(69.5%)으로 가장 많았고 산업기술 유출 4건(17.4%), 업무상배임 3건(13%) 순으로 이어졌다. 이 가운데는 국가핵심기술 유출 사건도 3건이 포함됐다.
세부적으로는 중소기업의 피해가 18건(78%)으로 대기업 5건(22%)에 비해 3배 이상 많아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들이 산업기술 유출 피해에 더욱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유출 사건 대부분은 임직원 등 내부인(21건)을 통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번 국수본이 검거한 96명 중 35명은 SK이노베이션 소속으로 밝혀져 더욱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앞서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현 LG에너지솔루션) 직원 100여명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전기차 배터리 관련 2차 전지 기술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논란이 불거진 이후 SK가 LG에 2조원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합의가 진행됐지만 산업기술 유출은 반의사 불벌죄에 해당돼 이번 국수본 조사에 따라 당사자들이 검찰에 송치됐다.
“처벌 강화 등 현행법 개선 필요”
산업통상자원부가 집계한 자료에서는 산업기술 해외유출과 국가 핵심기술 유출이 특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재판을 통해 실형을 선고 받는 경우는 미미해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홍석준 의원이 산업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올해 3월까지 적발된 산업기술 해외유출은 모두 126건이었으며 이 가운데 핵심기술이 43건이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연도별 적발 건수도 2016년 25건, 2017년 24건, 2018년 20건, 2019년 14건, 2020년 17건, 2021년 22건으로 매년 대동소이했다. 핵심기술 유출 역시 2016년 8건, 2017년 3건, 2018년 5건, 2019년 5건, 2020년 9건, 2021년 10건으로 계속 발생해왔다.
하지만 지난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진행된 법원의 1심 판결을 보면 총 62명 중 실형을 받은 사람은 4명에 불과했다. 이 기간 상당수인 27명은 집행유예로 풀려났으며 무죄판결 13명, 벌금형 9명 순으로 이어졌다.
홍 의원은 해외기술유출 범죄가 계속 발생하는 원인으로 솜방망이 처벌과 범죄 입증이 까다로운 현행법 등이 지목되고 있음을 꼬집었다.
특히 해외기술유출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외국에서 사용되게 할 목적’이 인정돼야 하는데 이를 입증하기가 까다로워 처벌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목적범으로 규정돼 있는 현행법을 고의범으로 개정해 외국에서 사용될 것임을 알면서 영업비밀을 유출한 경우에도 처벌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홍 의원은 이 같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지난 7일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과 ‘방위산업기술 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홍 의원은 “우리나라는 세계적 기술경쟁력이 있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조선 등의 주력업종이 해외기술유출의 주요 표적이 되는 상황”이라며 “솜방망이식 처벌이 범죄를 부추길 가능성이 있고 이마저도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산업기술 유출 사건이 점차 지능화되고 조직화되면서 국가 경제뿐 아니라 안보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만큼 국가와 기업의 생존과 미래 성장 동력을 좌우하는 첨단기술을 지키기 위해 국가적 차원의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