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개입 요청’ 화물연대 총파업 7일째…정부와 입장차 여전
지난 7일부터 파업 돌입…안전운임제·노동기본권 확대 등 요구 연대 측 “4차 교섭 최종 결렬…국민의힘, 잠정안 합의 번복” 국토부, “사실 무근…사업자 부담도 있어 일방 수용 불가” 반박 애로사항 접수 155건…경제·석유화학 등 산업계, 중단 촉구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이하 화물연대)가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 지 7일이 경과된 가운데, 이날 진행된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와 4차 교섭마저 결렬되며 파업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화물연대는 전날 오후 2시경부터 진행한 정부와의 4차 교섭이 최종 결렬됐다고 13일 밝혔다. 화물연대는 공식 입장문을 통해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에서 제안한 대로 국민의힘, 화주단체를 포함해 ‘안전운임제를 지속 추진하고 품목 확대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할 것을 약속한다’는 잠정안에 합의했다”며 “그러나 최종 타결 직전 국민의힘이 돌연 잠정 합의를 번복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파업 현장에는 전체 조합원 약 2만2000여명 가운데 30%에 해당하는 6600여명이 참여했다.
이어 “국토부는 이 사태를 해결할 의지가 없고, 국민의힘은 집권 여당으로서 책임질 의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앞으로 더 강력한 투쟁으로 무기한 총파업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공표했다.
타결을 앞둔 합의안이 여당 반대로 무산됐다는 주장에 대해 국토부는 “이는 사실이 아니다”며 화물연대가 합의를 이뤘다고 주장하는 내용은 실무 대화에서 논의된 것 중 하나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총파업 7일 차임에도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건설·자동차·유통 등 산업계 전방위로 물류운송 차질 등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파업 쟁점은 ‘안전운임제’
이번 파업의 주요 쟁점으로는 안전운임제가 꼽힌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운송 종사자의 근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화물차주와 운수 사업자가 지급받는 최소한의 운임을 공개하는 제도로, 오는 12월 31일 종료를 앞두고 있다.
화물연대는 지난 7일 윤석열 정부가 취임과 동시에 노골적으로 노동배제를 선언했고 친자본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최소한으로 보장돼야 하는 권리와 사회적 안전망마저도 ‘규제 완화’라는 프레임을 통해 하나씩 삭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가 전차종, 전품목으로 확대돼야 하고 현장의 질서로 자리 잡아야 한다며 총파업을 선언했다.
이에 발맞춰 민주노총은 지난 10일 정부가 화물연대의 결사의 자유 및 단체교섭권을 인정하지 않는 현 상황에 대해 국제노동기구(ILO)의 개입을 요청하는 서한을 발송하며 정부를 향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ILO는 지난 1919년 설립된 UN(국제연합) 산하 노동 분야 전문 국제기구로, 사회 정의 향상과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자 생활수준의 향상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현재 정부는 화물연대의 파업을 ‘집단 운송 거부’로 분류한 상황이다. 정부는 화물 기사가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이며, 화물연대를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현행 노동법상 파업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정부는 화물연대의 파업을 불법 행위로 전제하고 공권력을 배치했다”며 “ILO 87·98호 협약에 따른 노동조합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있어 ILO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ILO 협약 87호는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장’, 98호는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규정하고 있다.
화물연대는 정부가 ILO 회원국이자 두 협약의 비준국으로서 협약 준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화물차주에게 적정한 운임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에 동의해 국회 입법 논의 과정에서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안전운임제가 화주 등 사업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것을 고려해 화물연대의 주장만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파업 중단해야”…잇따른 중단 요구
총파업이 1주일 동안 이어지면서 산업계의 피해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이날 오전까지 유선 및 온라인을 통해 접수된 화물연대 파업 관련 애로 접수 현황에 화주들의 애로사항이 약 160여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그중 수입 관련 애로사항은 55건(34.2%)이었으며, 수출 관련 애로사항은 105건(65.8%)으로 원자재 조달 차질과 납품 지연, 위약금 발생 등이 주를 이뤘다.
물류운송 차질 등 피해가 잇따르자, 경제계는 전날 공동 입장문을 통해 즉각적인 파업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대한상공회의소·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 단체와 한국자동차산업협회·한국시멘트협회 등 관련 협회가 속한 경제단체협의회는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에 대한 경제계 공동입장’을 발표했다.
이들은 “화물연대는 국민들의 위기극복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집단운송거부를 즉각 중단하고 운송에 복귀해야 한다”며 “정부는 국민경제 전체에 미치는 막대한 파급효과를 조기 차단하기 위해서 업무개시 명령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더불어 화물연대의 운송방해, 폭력 등 불법행위가 발생할 시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처해 산업현장의 법치주의를 확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도 피해를 호소했다. 한국석유화학협회는 화물연대 집단 운송거부로 인해 울산·여수·대산 등 주요 석유화학단지의 출하 중단으로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제품 운송에 차질이 생겨 하루 평균 출하량 7.4만톤에 약 10%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정부가 대화를 통해 함께 상생의 길을 찾겠다고 밝히고 있는 만큼 화물연대는 파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외에도 포스코는 제품을 출하하지 못해 창고가 포화상태가 됐다고 토로했으며, 자동차 업계도 수출용 완성차를 운송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렇듯 화물연대와 정부가 안전운임제 등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파업이 장기화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이번 총파업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대규모 파업으로, 지난 7일부터 전국 16개 지역본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화물연대는 정부에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 △운송료 인상 △지입제 폐지 △화물운송산업 구조개혁 △안전운임제 전차종·전품목 확대 △노동기본권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