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리폼의 명암②] 명품 리폼 플랫폼과 손잡은 대기업…상표권 vs 소유권 ‘딜레마’
명품 리폼·수선 플랫폼과 MOU 맺고 명품 관리 나선 롯데온 백세희 변호사 “리폼 행위, 상표법 위반서 자유로울 수 없어” 브랜드 정체성 vs 소비자 권리 충돌…‘정품’ 오인 피해 우려
경기불황 속에서도 명품의 인기는 여전한 가운데, 기존에 가지고 있던 명품 제품을 고쳐서 쓰는 리폼 행위 또한 주목받고 있다. 명품 리폼은 친환경 및 업사이클링이라는 긍정적인 측면과 제품에 완전히 새로운 개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각광받는다. 반면 필연적으로 브랜드 고유의 디자인을 해치는 행위인 만큼 상표권 침해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제품의 소유권이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라면 다행이지만 제 3자에게 유통될 경우 그 피해를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이에 본보는 명품 리폼을 둘러싼 여러 쟁점들을 살펴보는 한편, 환경을 위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짚어보기로 했다.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고품질과 희소성을 갖춘 명품은 자신만의 특별한 취향과 가치를 드러내고자 하는 소비자 욕망과 맞아떨어지면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특히 MZ세대(밀레니얼+Z세대)사이에서 유행하는 이른바 ‘플렉스(flex·과시형 소비)’ 문화로 인해 명품 소비층은 ‘어른들의 전유물’을 넘어 전 연령층으로 확대됐다.
삼정KPMG가 지난 5월 공개한 ‘럭셔리 시장을 이끄는 뉴럭셔리 비즈니스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명품시장 규모는 전년대비 29.6% 급증한 58억달러(한화 7조3000억원)에 달했다. 또 2년 후에는 70억달러(8조8888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온라인 명품 시장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 명품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7.2% 증가한 1조7475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2015년 1조455억원에서 5년 만에 38.2% 성장한 규모로, 올해는 2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이처럼 명품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가운데, 기존 명품을 수선하고 리폼해 주는 업체 또한 함께 주목받고 있다. 이런 업체들은 낡은 명품에 새 생명을 불어넣으며 소비자들 사이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기존 리폼 및 수선 분야는 오프라인 소규모에 그쳤던 업종이었지만 최근 플랫폼화되면서 대기업과 손잡고 투자를 받는 등 신뢰를 쌓으며 덩치를 키우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단순 수선을 넘어 디자인을 전면 바꾸는 리폼의 경우 브랜드 상표권 침해 등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 리폼업을 영위하는 특정 기업의 경우 대기업인 롯데와 협업하는 한편, 백화점 내에도 입점해 있다. 리폼의 인기로 리폼업은 대기업들이 군침을 흘릴 수 있는 영역이지만 아직까지는 상표권 위반 문제가 걸려있는 만큼 해결해야 할 쟁점이 많이 남아있는 상태다.
이처럼 소비자의 소유권과 제조사의 저작권의 문제가 첨예하게 걸려있는 리폼 시장은 뜨거운 감자다. 법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면 엄연히 진입이 어려운 영역이지만, 소비자의 권리가 강화되고 있는 만큼 리폼업이 어떻게 성장할지는 두고볼 일이다.
리폼·수선 업체와도 손잡은 대기업
‘명품’ 하면 반사적으로 백화점을 떠올리던 시대는 지났다. 최근 명품 구매층이 다양해지면서 자연스레 온라인 명품시장이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머스트잇과 발란, 트렌비 등 명품 커머스 플랫폼부터 크림 등 리셀(중고거래) 플랫폼까지 등장하며 명품에 대한 소비자 선택지는 너무나 다양해졌다.
명품 시장이 커지면서 오프라인 중심으로 이뤄진 리폼 시장이 온라인 시장까지 확장됐다. 럭셔리앤올과 LRHR, 레더몬스터, 월드리페어 등 새로운 명품 리폼 및 수선 플랫폼이 등장한 상태다.
이에 롯데와 신세계, 현대 등 기존 유통 공룡들도 명품 관리와 소비자 신뢰도 형성 등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롯데온의 행보가 유독 눈길을 끈다.
지난 1월부터 수선 서비스와 함께 제품 디자인을 전면 수정하는 리폼 서비스도 함께 진행하는 스타트업 ‘럭셔리앤올’과 협력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러한 롯데와 럭셔리앤올의 협업을 두고 대기업의 리폼 시장 진출과 연결짓는 시각도 있다.
롯데 측은 온라인 상 롯데온을 통해 럭셔리앤올과 수선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으며, 롯데백화점 내 입점해 있는 럭셔리앤올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수선 및 리폼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또 실제 지난 5월 <디지털타임스>는 롯데가 명품 수선.리폼업체 월드리페어 인수를 추진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는 이번 협업이 더욱 관심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익명을 요구한 명품업체 한 관계자는 “리폼은 본 상품의 가치를 훼손하는 등의 상표권 침해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제조업체로서는 굉장히 예민한 문제”라며 “이번 롯데의 협업에 대해서도 업계가 주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롯데가 직접 리폼을 진행하지 않고 이를 판매하지도 않는 만큼 위법 소지는 없다. 그러나 롯데와 손잡고 롯데백화점 내 입점해 있는 업체가 리폼 서비스를 진행하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상표권 침해와 관련해 예민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롯데온 측은 “럭셔리앤올과는 리폼이 아닌 사후 관리 서비스에 대해서만 협약을 맺은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월드리페어 인수 또한 명확한 근거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롯데 관계자는 “해당 인수 건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으며 월드리페어 측 또한 “롯데 쪽에서 인수 제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럭셔리앤올 관계자는 “리폼 서비스는 고객이 맡긴 용역에 한하는 것이며 본 업체에서는 절대 리폼한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다”며 “실제 리폼으로 인한 상표법 위반의 경우 판례가 없다”고 일축했다.
법조계 “리폼 사업은 상표법 위반 소지 있어”
판매가 아니라 단순히 개인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소비자가 직접 리폼을 하는 행위는 타인의 브랜드 가치를 침범해 판매한 행위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명품 리폼 업체가 고객의 의뢰를 받아 디자인 변경을 진행하는 건에 대해서는 해석의 여지가 분분하다.
리폼된 제품이 추후 유통, 판매될 경우까지 감안하면 리폼 업체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권리소진의 원칙, 혹은 최초판매의 원칙이라는 개념에 따르면 물건이 판매된 이후부터는 상표권자가 해당 제품이 추가적으로 유통되는 것을 통제할 수 없다. 쉽게 말해 내가 산 물건에 대해서는 구매자의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명품을 단순히 중고로 판매하는 행위는 저작재산권이나 상표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중고 거래라도 최초 구매했던 제품이 아닌 디자인이 변형된 리폼 제품이 ‘유통’ 될 경우 명백한 상표법 위반에 해당된다.
명품은 중고거래가 활발한 특성을 가진 만큼 재판매될 시 구매자가 명품 정품으로 오인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는 얘기다. 이는 리폼 사업이 상표권 침해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백세희 변호사는 수선을 넘어선 리폼 사업은 명백히 상표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백 변호사는 “(명품 리폼 제품을) 중고로 판매하는 등 유통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상표권 침해의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며 “상표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은 상표에 화체된 업무상의 신용과 가치라는 무형적인 권리인데, 개인이 직접 만든 물건이 중고시장 등에서 유통되면 상표권자의 진정 상품으로 오인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판매 등에 의한 배포를 넘어 상표권자가 가진 브랜드의 인지도와 저명도, 대중에 의한 신뢰가 표상된 상표만을 똑 떼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는 보호받지 못한다”며 “단순 수선은 문제 되지 않지만, 원 제품과의 동일성을 상실하는 정도의 리폼 등을 사업영역에서 제외하지 않으면 합법적으로 사업을 키울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규모가 영세하고 산발적이며 리폼으로 인한 이득이 미미해서 브랜드 측에서 대응을 하지 않을 뿐이지 상표법 위반에서 자유로운 영역이 아니다”라며 “최근에는 실제 명품 브랜드들에서도 지적재산권 전담 팀을 구성해 상표권침해 제품의 판매자 및 수선업체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는 등 분명히 문제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리폼 제한 과한 처사…소비자 권리도 중요”
그렇다고 이러한 리폼 사업을 위법성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것 또한 시대착오라는 지적도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바라보면 구매한 물건에 대한 권리를 충분히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30대 중반 김가연씨는 “내 소유 물건의 리폼에 제한을 두는 것은 과한 처사 같다”며 “그렇다면 세탁소에서 내 마음대로 옷을 수선하는 것은 불법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20대 중반 이주희씨는 “비싼 돈 주고 산 명품이 장롱 속에 방치되는 것보다 리폼해 더 오래 쓴다면 환경 면에서도 훨씬 이익”이라며 “이미 판매된 물건을 리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브랜드 측의 입장만 고려한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 또한 상표법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는 소비자 소유권이 침해돼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인하대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구매한 순간 소유권이 넘어온 것이기에 리폼 자체가 제한되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다. 브랜드에서도 리폼 행위를 문제 삼으려면 판매가 아니라 리스나 렌트 형태로 진행했어야 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디자인을 변형한 제품이 타 판매 중인 제품과 지나치게 비슷하다면 이를 정품으로 오인하는 제2의 피해가 생길 수 있으니 지양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