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경제 문제의 핵심은 인사(人事)

2022-09-13     이영민 편집인
△ 투데이신문 이영민 편집인

추석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12일 미국에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바이오산업에서 미국 내 생산을 유도하는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에 서명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반도체와 배터리에 이어 바이오 부문도 자국 내에서 공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겠다는 의미인데, 미래 먹거리 산업 전부를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미국의 ‘메이드 인 아메니카(Made In America)’ 정책은 자유무역을 통한 효율성 극대화로 자본주의를 고도화해 온 세계 무역질서를 뿌리째 흔드는 일대 전환을 의미한다.

사실 이 같은 미국의 행보는 자유무역을 근간으로 하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행위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한다며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를 줄곧 비판해왔던 스스로의 명분을 내팽개치는 행위다. 중국식 자본주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토대를 제공했던 미국이 이제는 그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는데 앞장서고 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기폭제가 되긴 했지만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쟁탈전은 예고된 구조적 재앙이다. 지금은 경제적 갈등 국면에서 샅바싸움이 치열하지만 종국엔 군사적 갈등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건 앞으로 중국의 부상에 따른 두 강대국 사이의 일전은 불가피하다. 국제 질서에서 힘의 논리가 통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던가. 두 강대국의 패권 경쟁이 언제 어느 수준에서 마무리되고 신(新))질서가 들어설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자유무역을 통한 효율 극대화의 자본주의가 더 이상 영속불변의 가치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졌다.

코로나가 촉발시킨 전 세계적 경제위기에 강대국의 패권 경쟁에 따른 구조적 위기까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는 앞으로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대한민국의 생존 전략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위기의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오로지 대체 불가능한 스스로의 경쟁력을 확보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미·중 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식의 애매한 대응전략은 자칫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자충수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확보하기 위해선 생산에 필요한 각 부문별 여건이 제도적으로 성숙돼, 종합적인 생산성 향상을 견인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노동·자본·설비·에너지 등 필수적 생산요소는 물론, 기술혁신을 통한 미래기술 확보에도 전력을 다해야 한다. 운명공동체로서 발전적 관계정립을 위한 노사문화의 혁신과 경영 선진화도 포기할 수 없는 과제다. 생산성 향상을 통해 거둔 열매를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은 더 없이 중요한 문제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공식을 세우는 것이 지속가능한 생산성 향상에 강한 버팀목이 돼 줄 것이기 때문이다.

관세청 집계로 9월초 기준(1일~10일) 우리나라의 무역수지가 24억43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왔다. 올해 무역수지는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다섯 달 연속 적자였고,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이달까지 6개월 연속 적자가 이어질 전망이다. 1300원 후반 대에서 등락하고 있는 환율도 조만간 1400원대를 뚫고, 1500원대를 위협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올 법한 상황이다. 변동성을 확대하고 있는 주식시장은 물론, 부동산 시장마저 급락장을 예고하는 암울한 전망까지 어느 하나 기댈 곳이 없다. 폭등하는 물가에다 두 배 넘게 뛰어버린 대출이자에 서민들은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고환율, 고물가, 고금리의 3중고를 넘을 정부와 정치권의 기민한 위기관리 능력을 기대하는 수밖에는 없다. 또한 변화하고 있는 세계 질서에 대응한 미래 청사진을 통해 희망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백척간두의 위기상황에서 우리 정치는 어떻게 작동하며,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 무기력하다고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우선, 정권이 바뀌고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는 국정철학과 미래비전이 무엇인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공정과 상식, 자유와 평화, 그리고 번영. 분명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할 소중한 가치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를 현실 속에서 구체화할 방안은 손에 잡히질 않는다. 생동감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문재인 정권이 ‘10년 주기 정권교체설’을 깨고 정권 연장에 실패한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현실에 뿌리를 두지 못한 이상(理想) 정치에 매몰됐기 때문이다. 국가는 이상이 아닌 현실이다.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들이 제시한 미래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나라였다. 플라톤이 세우고자 했던 ‘국가’도 현실의 잣대를 들이밀면 실현 불가능한 이상 세계에 가깝다. 수호자(위정자)의 인간적 욕망을 모두 차단하는 것에서 출발해 이상적인 철인(哲人)국가를 완성한다는 것인데, 토마스 모어의 소설 속 ‘유토피아’가 이와 흡사하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지 이제 넉 달 남짓이다. 출범 반년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정권의 평가를 입에 올리는 것은 섣부른 감이 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범 넉 달의 현 정권이 보여준 국정 운영의 피로감과 실망감은 위기 상황에서 우려를 자아내기 충분하다. ‘정치가 코미디’라는 대중의 비난은 이제 ‘웃기지도 않는다’는 정치 혐오로 옮겨가고 있다. 그리고 문제의 핵심에는 인사문제가 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은 어느 시대에나 통하는 금과옥조(金科玉條)다. 무릇 위정자가 사람을 쓰는데 있어 바른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이를 행하면, 모든 일은 순리대로 풀린다는 의미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 ‘검핵관(검찰 출신 핵심 관계자)’, ‘용핵관(용산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까지. 세간에 오르내리는 이 정체불명의 단어들은 새 정부의 인사 난맥상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조선조 실학자 안정복은 고을을 다스리는 수령은 세 부류의 관리를 멀리하라 했다. 권세를 업고 자신의 명리를 좇는 세리(勢吏), 윗사람을 능숙하게 섬기는 재주로 명예를 일삼는 능리(能吏), 백가지 계교(計巧)로 사익만을 추구하는 탐리(貪吏)가 그것이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그 내부에서의 권력 투쟁은 반드시 뒤따르는 통과의례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과 함께 여과 없이 터져 나온 권력 다툼은 리더십의 위기로밖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복합 위기의 시기에 밥그릇 쟁탈전이라니. 혈연이나 지연, 학연에 얽매인 정실주의(情實主義)를 극복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없다. 이제부터라도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시스템을 갖추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인사는 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