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싸움’ 논란 진실공방...‘김정은 풍산개’ 위탁관리 규정 놓고 신·구 권력 갈등
윤핵관 vs 친문 ‘풍산개 반납’ 두고 공방 與 “지원 안하니 파양...남북대화 쇼였나” 野 “좀스럽고 민망한 건 대통령실” 대립
【투데이신문 윤철순 기자】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선물 받은 ‘풍산개’를 대통령기록관에 반납하겠다고 하자 행정안전부 차관이 “사실상 파양”이라는 견해를 밝히는 등 정치권이 연일 시끄럽다.
국민의힘은 ‘관리비 지원이 중단되자 파양을 신청했다’며 문 전 대통령을 비판했고,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문 전 대통령 측은 이를 정쟁화 하려는 대통령실의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고 반발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은 “개들을 키우려면 시행령을 고쳐야 하는데 대통령실이 반대해 개정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대통령실은 “반대한 적 없고, 관련 부처들과 협의 중”이라며 문 전 대통령 측이 개정을 기다리지 않고 반환하는 것이라 반박한다.
‘사건’ 개요
지난 2018년 9월 3차 남북정상회담 뒤 문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으로부터 풍산개 한 쌍을 선물 받았다. 그동안 풍산개 한 쌍은 청와대에서 새끼 7마리를 낳았고, 6마리는 입양됐다.
국가 원수 자격으로 받은 선물인 만큼, 이 개들은 법률상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한다. 따라서 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어미 풍산개 한 쌍과 새끼 한 마리를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기록관은 동식물 관리시설 등이 갖춰져 있지 않은 데다, 반려동물의 특성을 고려해 지난 5월9일 문 전 대통령에게 세 마리를 맡기는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 내용에는 ‘사육 및 관리에 필요한 물품 및 비용을 예산의 범위 내에서 지급할 수 있다’는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 대통령기록관은 지난 6월부터 ‘동식물일 경우 키우던 전 대통령에게 관리 비용을 지원하고 맡길 수 있다’는 내용의 시행령을 만들어 추진하려 했으나 6개월 가까이 미뤄지며 국무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문 전 대통령 측 주장
이에 문 전 대통령 측이 정부에 풍산개들을 반환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 측은 “행정안전부는 6월 17일 시행령 개정을 입법 예고했으나, 이유를 알 수 없는 대통령실의 이의 제기로 국무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행안부는 일부 자구를 수정해 다시 입법예고 하겠다고 했으나, 퇴임 6개월이 되는 지금까지 진척이 없는 상황”이라며 “역시 대통령실의 반대가 원인인 듯하다”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쿨하게 처리하면 그만”이라며 “대통령기록물의 관리 위탁은 쌍방의 선의에 기초하므로 정부 측에서 싫거나 더 나은 관리방안을 마련할 경우 언제든지 위탁을 그만두면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최근의 언론보도를 보면 대통령실은 문제를 쿨하게 처리하려는 선의도 없는 듯하다”며 “책임을 문 전 대통령에게 미루고 싶은 것인지,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까지 드러내는 현 정부측의 악의를 보면 어이없게 느껴진다”고 했다.
문 대통령측은 “상황이 이렇다보니 원칙대로 대통령기록관에서 키우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가져가는 게 맞다는 입장으로 정리된 것”이라고 전했다.
문 전 대통령 측 주장과 관련, 행안부는 풍산개 위탁과 관련해 △사료값 35만원 △의료비 15만원 △관리 용역비 200만원 등 250만원 상당의 비용을 지원하는 내용으로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반박·정부 측 입장
대통령실은 즉각 반박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문 전 대통령 측이 풍산개를 맡아 키우기 위한 근거 규정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대통령실이 반대해 시행령이 개정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해당 시행령이 대통령기록관 소관으로, 관련 부처가 협의 중에 있을 뿐 시행령 개정이 완전히 무산된 건 아니라며 “시행령 입안 과정을 기다리지 않고 풍산개를 대통령기록관에 반환한 것은 전적으로 문 전 대통령 측 판단일 뿐, 대통령실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행안부는 이 문제를 위해 문 전 대통령 비서관실과 계속 소통해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문 전 대통령 측의 이번 반환 의사 입장에 대해 ‘사실상 파양’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행안부 한창섭 차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문 전 대통령 측이 풍산개 3마리를 국가에 반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사실상 파양 아니냐”는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 질의의 “예, 그렇게 보여진다”고 답했다.
한 차관은 이날 “풍산개 사육과 관련해서 대통령 기록관실에서 전직 대통령 비서관실과 계속 소통해왔고, 대통령 기록관실 내에서 구체적으로 필요한 예산을 검토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 공방
정치권은 진실 공방으로 번지고 있는 신·구 권력 간 ‘개싸움’에 편승해 비난전을 더 키우고 있다.
조수진 의원은 “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특수활동비를 줄이겠다면서 구체적인 방안으로 개와 고양이 사료값을 사비로 쓴다고 발표해 굉장히 화제가 됐다”며 “그런데 퇴임 후에는 월 250만원씩의 국가 예산을 지원하지 않으면 파양하겠다고 하는데 앞뒤가 좀 안 맞는 거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조 의원은 “풍산개 3마리도 맡지 못하겠다는 분이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을 책임진다고 했던 것”이라며 “재임 당시와 퇴임 이후 말이 다르기 때문에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같은 당 권성동 의원은 문 전 대통령과 대통령기록관이 맺은 협약을 ‘해괴한 협약서’라며 비난 대열에 가세했다.
권 의원은 “협약서를 토대로 사료비 등 250여만 원의 예산지원 계획이 수립됐다”며 “겉으로는 SNS에 반려동물 사진을 올려 관심을 끌더니, 속으로는 사료값이 아까웠나. 참으로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 소속 홍준표 대구시장은 “김정은에게 선물 받은 풍산개 세 마리가 이제는 쓸모가 없어졌나보다”면서 “김정은 보듯 애지중지 하더니 나라가 관리비 안준다고 하자, 이젠 못 키우겠다고 반납하려고 하는 것 보니 개 세 마리도 건사 못하면서 어떻게 대한민국을 5년이나 통치했는가”라고 꼬집었다.
같은 당 태영호 의원은 “문 전 대통령 측의 풍산개 반환 이유로 사육 및 관리비 지급과 관련해 윤석열 정부가 자신들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며 “결국 돈 때문에 못 키우겠다는 말”이라고 비꼬았다.
이에 문 전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는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치졸하고 천박한 여론 플레이”라고 반박했다. 윤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일하지 않아 생긴 법의 구멍으로 인한 문제를, 돈 때문인 듯 모욕적으로 뒤집어씌우는 것은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전 대통령이 풍산개를 키우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한 윤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문 대통령에게 ‘키우던 분이 데려가시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풍산개를) 평산으로 데려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호탕하게 ‘데려가서 키우라’고 해놓고, 속으로는 평산마을에서 키우는 행위를 합법화하는 일에 태클을 거는 것은 대통령실”이라며 “좀스럽고 민망한 일을 하는 것은 정부·여당”이라고 맞받아쳤다.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태원 참사 와중에 개싸움 거는 집권 세력이 제정신인가”라며 “나중에 위탁규정 없이 키웠다고 덮어씌울 사람들이다. 참 치졸하다”라고 SNS에 적었다.
그는 “지난달 14일 ‘법제처와의 협의 완료로 입법예고 후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행안부 공식 문건이 있다”면서 “지금까지 (시행령 개정을) 기다려왔는데, 석연치 않은 이유로 계속 안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법제처는 반대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내놨다. 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경남 양산 사저에서 기르는 풍산개를 정부 예산으로 지원하는 방안에 대해 법제처 안팎에서 반대 의견이 나왔다는 의혹을 반박한 것이다.